
"한여름엔 잠잠하더니…"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선다는 절기 입추(立秋)와 말복이 지나면서 폭염이 한풀 꺾였습니다. 아침 최저 기온이 25도 아래로 떨어지면서 열대야도 나타나지 않은 지역도 숱했는데요. 괴물 폭염이 힘을 잃자마자 찾아온 불청객이 있습니다. 여름이면 열대야와 함께 숙면을 방해하는 '모기'가 그 주인공이죠.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에 시달리다 보니 모기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고요? 실로 올여름 모기 씨가 말랐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통상 모기는 초여름부터 나타나 7~8월에 정점을 찍곤 하는데요. 올여름은 모기 개체 수가 급감한 탓에 모기를 생각지도 못했다는 반응이 이어졌죠.
모기가 없어 평안한 나날이 계속될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최저 기온이 떨어지고 비교적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자마자 모기 언급량이 온라인상에서 늘어나고 있는데요. 가을 모기, 특히 물리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올여름 모기는 '씨가 말랐다'는 말이 나올 만큼 조용했습니다.
그도 그럴 게 모기가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기온은 15도에서 30도 사이입니다. 이에 6월부터 개체 수가 늘기 시작해 8월 중순쯤 정점을 찍는 게 일반적입니다.
35도를 넘기면 모기의 활동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40도에 육박하는 고온에서는 생존 자체가 힘들어지는데요. 6월 말~7월 초부터 한반도엔 아찔한 무더위가 이어졌습니다. 괴물 폭염은 모기의 산란지인 물웅덩이도 말려버리면서 알을 낳을 수 있는 장소 자체를 줄여버렸는데요. 여기에 짧고 국지적인 장마, 단기간 퍼붓는 폭우까지 겹치면서 이미 놓인 유충과 알마저 쓸려나가는 환경이 만들어졌죠.
줄어든 모기는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는 모기 발생 현황을 알기 쉽게 발생 단계별로 나눠 시민 행동요령을 알려주는 일일 모기 발생 예보 서비스 '오늘의 모기 예보'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0부터 100까지, 쾌적-관심-주의-불쾌 등 총 4가지 단계로 구분해 모기 발생지수를 안내합니다.
통상적으로 7월 중순이면 '주의' 혹은 '불쾌' 수준까지 오르곤 하는데요. 올여름 지수를 살펴보면 50을 넘은 지난달 말 이후 이달 들어선 40 정도에 머물며 '관심' 단계에 그쳤습니다. 모기활동지수는 '100'일 경우 야외에서 10분 동안 5번 이상 모기에 물릴 가능성을 뜻합니다. 그러나 지난 일주일간 평균 활동지수는 39.7 수준에 불과해 모기에 물릴 확률도 낮은 상황입니다.
문제는 이 '평온'이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에도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발생한 뒤 여름 모기가 줄고 9월 말부터 가을 모기가 기승을 부린 바 있는데요. 기온이 서서히 내려가고 습도가 유지되면 활동 조건이 맞춰져 가을 모기 개체 수가 급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문제는 모기를 매개로 하는 감염병이 세계 곳곳에서 확산하는 중이라는 겁니다. 모기 매개 감염병은 대개 치명률이 낮지만 일부 모기 종은 일본 뇌염, 말라리아, 뎅기열 등 중대한 감염병을 매개할 수 있어 공중보건상 중요한 위협 요인으로 간주되죠.
올해 전 세계에서는 모기가 옮기는 감염병이 동시다발적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남부 광둥성을 중심으로 확산 중인 치쿤구니야 열병은 치료제가 없어 대규모 유행 시 피해가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데요. 이 바이러스는 주로 이집트숲모기와 흰줄숲모기를 통해 전파되며, 수혈이나 혈액 접촉으로도 옮을 수 있습니다. 잠복기는 3~7일, 발열·발진·관절통 등이 주요 증상으로 나타나는데요. 일부 환자는 수주에서 수년간 관절 장애를 겪을 수도 있죠.
11일 AFP,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보건당국은 지난달 15일 첫 확진이 보고된 이후 이달 4일까지 광둥성 12개 도시에서 치쿤구니야 열병 확진자가 총 7938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했습니다. 발병 중심지인 포샨은 9일 연속 신규 환자가 감소했지만 여전히 하루 수백~수천 건의 발병이 보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죠.
대만 보건당국은 대만 중부 거주 40대 여성이 지난달 광둥성 포샨과 선전을 방문한 뒤 귀국 하루 만에 발열 증상을 보였고, 곧 발진과 관절통이 나타나 검사 결과 치쿤구니야 열병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는데요. 대만 당국에 따르면 이는 중국 본토와 직접 관련된 첫 유입 사례였습니다.
대만을 넘어 전 세계로도 확산 중이라 우려를 자아냅니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에 따르면 올해 들어 현재까지 16개국에서 약 24만 건의 감염과 90건의 사망이 보고됐는데요. 치쿤구니야 열병은 치사율이 1% 미만이지만 아직 승인된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습니다. 해열·진통제, 수분 보충, 충분한 휴식 등 대증 치료만 가능할 뿐이죠. 세계보건기구(WHO)는 "치사율은 낮지만 수백만 건의 감염이 발생하면 수천 명의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며 각국에 조기 대응을 촉구했습니다.
치쿤구니야 열병 외에도 동남아와 남미에서는 뎅기열, 말라리아, 지카 바이러스, 일본 뇌염 등 모기 매개 질환이 동시에 유행 중입니다. 질병관리청도 지난달 말 치쿤구니야 열병 유행 상황과 대응 체계를 점검, 공·항만 검역구역 내 해외 유입 매개 모기 감시도 확대했습니다.
또 1일에는 전국에 일본뇌염 경보를 발령했습니다. 일본뇌염 경보는 △1일 평균 채집된 작은빨간집모기가 500마리 이상이면서 전체 모기 밀도의 50% 이상일 때 △채집된 모기에서 일본뇌염 바이러스가 검출됐을 때 △해당 바이러스 유전자가 확인됐을 때 △환자가 실제로 발생했을 때 등 네 가지 조건 중 하나 이상이 충족되면 발령되죠. 지난달 30일(제31주차) 전남 완도군에서 채집된 모기 중 일본뇌염 매개 모기인 작은빨간집모기가 전체 모기의 60.1%(1053마리 중 633마리)를 차지한 데 따른 겁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경보 발령 시점이 1주일가량 늦어졌는데요. 폭염과 장마 등 기상 영향으로 모기 개체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었죠.
일본뇌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주로 발열 및 두통 등 가벼운 증상이 나타나지만, 드물게 뇌염으로 진행될 시 고열·발작·목 경직·착란·경련·마비 등 심각한 증상을 보입니다. 이 중 20~30%는 사망할 수 있죠. 특히 뇌염으로 진행될 경우 증상이 회복돼도 환자의 30~50%는 손상 부위에 따라 다양한 신경계 합병증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주의할 점은 이 같은 모기 매개 감염병들이 예방 백신이나 치료제에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이에 전문가들은 백신이 있는 경우 접종 일정에 맞춰 백신을 접종하고, 최선은 모기에 물리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하죠.
모기 물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야간 외출 시 밝은색 긴 옷을 입고, 노출된 피부나 옷, 신발과 양말 등에 모기 기피제를 3~4시간 간격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향수나 화장품 사용은 자제하고 특히 가정에서는 방충망을 점검, 집 주변의 고인 물을 없애는 게 도움이 됩니다.
또 여름 휴가철인 만큼 해외여행을 떠날 때는 해당 국가의 감염병 발생 현황과 주의사항을 확인해야 하는데요. 질병청에서 서비스하는 해외감염병NOW에 국가를 검색하면 주요 감염병 유행 현황을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또 여행 후 입국 시 발열, 관절통, 근육통 증상이 있으면 Q-CODE를 통해 13개소 공항만 국립검역소 검역관에게 신고하고, 가까운 의료기관에 방문해 진단검사 및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요. 지역사회 전파를 예방하기 위해 귀국 후 2주 이내 증상 발생 시에도 반드시 의료기관에 방문해 의사에게 해외 여행력을 알리고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기온이 내려가는 늦여름, 가을 모기의 계절은 이제 시작일 수 있습니다. 모기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예방 수칙을 생활화하면 위험은 크게 줄일 수 있는데요. '모기에 물리지 않는 것'이 가장 확실한 예방법이라는 사실도 기억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