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의 눈] 저출생 정책을 폐기하자

인구정책전문기자ㆍ정책학 박사

윤석열 정부 저출산 대응정책의 특징적인 점은 용어 변경이다. 정책 내용은 ‘혼인 페널티’로 불리던 신혼부부 청약·대출 불이익을 해소한 것을 제외하고 과거 정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나, 정부가 배포하는 대부분 자료에서 저출산 용어가 저출생으로 바뀌었다. 누군가는 단어 하나 바꾼 게 뭐 그리 큰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문제다. 그것도 큰 문제다.

먼저 저출산과 저출생은 단어의 의미가 다르다. 저출산은 출산율이 낮다는 의미로 기준이 명확하다. 합계출산율이 대체출산율인 2.1명보다 낮으면 저출산, 1.3명보다 낮으면 초저출산이다. 저출생은 출생률이 낮다는 의미인데, 기준이 모호하다. 일반적으로 출생률로 표현되는 조출생률은 가임여성을 모수로 한 합계출산율과 달리 총인구를 모수로 산출된다. 합계출산율과 무관하게 국가·지역 내 총인구에서 가임여성 비중에 비례한다. 지역별 상대적 출산력을 판단하는 지표로는 활용할 수 있지만, 인구 문제의 절대적 심각성을 판단하는 지표로 부적절하다.

더 큰 문제는 저출생에 내포된 메시지다. 저출산을 해결하는 방법은 명확하다. 합계출산율을 높이는 것이다. 저출산 관점에서 정부는 적극적인 재정·세제지원과 문화·인식 개선을 추진한다. 저출생은 해결할 방법이 없다. 출생은 출산의 결과다. 출산을 늘리지 않고 출생을 늘린다는 건 모순이다. 한 고위공무원은 저출산·저출생의 차이에 관해 “저출산이 극복의 의미라면, 저출생은 적응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저출생 관점에선 출생아 감소보다 경제활동인구 감소가 큰 문제다. 그래서 합계출산율 회복보단 경제활동인구 유지에 정책의 초점이 쏠린다.

윤석열 정부는 저출산 용어를 저출생으로 대체한 배경으로 ‘저출산이란 단어가 문제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한다’는 부정적 인식을 들었다. 이는 오랫동안 여성계에서 제기됐던 문제다. 다만, 출생아 100명 중 95명이 법률혼 관계인 부모로부터 태어나는 한국 사회에서 저출산이 ‘여성에 책임을 전가하는’ 용어라는 주장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생물학적 임신·출산은 여성의 몫이지만, 그 전에 임신·출산을 결정하는 주체는 부부이기 때문이다. 저출산은 ‘여성이’ 출산을 기피·포기하는 문제가 아니다. ‘청년이’ 결혼을 기피·포기하는 문제이고, ‘부부가’ 출산을 기피·포기하는 문제다. 무엇보다 이대남·이대녀 갈라치기를 선거 전략으로 활용하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추진한 정권이 내세우는 ‘젠더 감수성’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가 굳이 저출산을 저출산으로 변경한 데에는 다른 목적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중 하나는 재정 효율성이다. 저출산을 극복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주거로 대표되는 혼인·출산의 진입장벽을 낮춰야 하고, 혼인·출산이 기회비용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경제적 유인을 확대해야 한다. 반면, 저출생 대응에는 돈이 안 든다. 생산성 유지에 초점을 둔다면 미취업 여성과 고령층을 노동시장으로 이끌고, 그걸로 부족하면 외국인을 활용하면 된다. 비용이라고 해봐야 행정비용 정도다. 기업들 처지에서도 ‘생산성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전제로 매년 급여를 올려줘야 하는 청년을 고용하는 것보다 급여가 고정적인 고령층과 외국인을 고용하는 게 이익이다. 외국인력 정책 등 실제 추진된 정책들을 봐도 이런 의심을 떨치기 어렵다.

저출생이란 프레임에 갇혀 정책을 수립·집행하고, 사회가 저출산 극복이란 목적을 상실하면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회복 불가 수준으로 악화할 우려가 크다. 한국의 저출산은 ‘골든타임’이 얼마 안 남았다. 2차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세대인 에코붐 세대가 30대 후반, 40대에 진입하기 전에 확실한 합계출산율 회복 추세를 만들어야 한다. 그 출발은 저출생 폐기다. 적응이 필요한 문제는 과거 저출산에 따른 현재 생산연령인구 감소다. 미래에도 저출산이 계속될 것으로 가정하고 미래 생산연령인구 감소에 미리 적응하잔 건 극단적인 무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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