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전쟁, 향후 5년이 승부처…민관 역량 집중 투입해야"

▲반도체 칩 위에 중국 국기가 놓여 있다. (오픈AI 달리)

정부와 기업이 향후 5년 동안 반도체 수요·기술·지정학 지형 변화에 선제 대응하지 않으면, ‘메모리 초격차’와 ‘파운드리 도약’ 모두 좌초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특히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폭증에 따라 선단공정 위탁개발생산(파운드리) 부문이 초과수요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산업연구원은 9일 발표한 ‘반도체 글로벌 지형 변화 전망과 정책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지금이야말로 민관이 총력전을 펼쳐야 할 결정적 시점"이라며 향후 5년(2026~2030년)을 '승부의 기간'으로 규정했다.

보고서는 △AI·데이터센터 수요 급증 △중국의 메모리·파운드리 추격 △미국의 감세법(OBBBA) 통과에 따른 글로벌 기업 비용구조 변화 등 세 가지 요인을 구조 전환기의 핵심 촉진 요인으로 제시했다.

특히 모바일 중심 수요가 AI·데이터센터로 옮겨가는 변화가 시장 판도를 바꿔놓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희권 산업연 연구위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장기간 수주 가뭄을 버티다 코로나19 백신 품귀 상황에서 기회의 창을 잡았듯, 지금은 우리 파운드리 산업에 짧지만 강력한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는 상황일 수 있다”며 “적기 공급 역량 확보가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반도체 수요 중심 이동 추이 : 모바일 ‣ AI ‧ 데이터센터 / 2016 – 2029 기간 반도체 수요 부문별 배출 비중 전망 (%) (자료제공=산업연구원)

중국의 추격 속도도 심상치 않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양쯔메모리(YMTC)는 2021년 2.7%에 불과했던 낸드(NAND) 시장 점유율을 2024년 9% 가까이 끌어올렸고, 같은 기간 매출은 160% 이상 증가했다.

이준 산업연 경영부원장은 “중국 파운드리 기업 SMIC의 시설투자 비율은 매출의 98%에 달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20~40% 수준과 비교하면 상식을 초월하는 수치”라며 “우리의 ‘선제적 대규모 투자→이익회수→재투자’라는 성공방정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추격은 입법이라는 강수로 이뤄지고 있다. 7월 4일 통과된 ‘One Big Beautiful Bill Act(OBBBA)’는 반도체 연구개발비·시설투자에 대해 당해 연도 100% 즉시 비용처리를 가능케 하고, CHIPS Act 세액공제율도 10%포인트 상향됐다. 이에 따라 인텔과 마이크론의 비용 구조가 급진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경 연구위원은 “OBBBA 통과로 연구개발비 즉시 비용처리가 영구화되었고, 2022~2024년 지출에 대해서도 가속 상각이 가능해졌다”며 “인텔은 이 기간 96조 원 규모의 연구개발 지출을 기록한 바 있어, 향후 막대한 세액공제 혜택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산업연은 정부 대응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이 부원장은 “AI 반도체 수요 급증은 TSMC 독점 구도에 균열을 만들 수 있는 기회이며, 지금이야말로 파운드리 입지를 확보할 결정적 시점”이라고 말했다.

궁극적 시험대에 오른 K-반도체 전략과 관련해, 경 연구위원은 “기회는 길지 않다”며 “반도체특별법 통과와 함께 토지‧전력‧용수 등 인프라의 적시 공급 체계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부원장은 “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 활용과 함께, AI 정책자금을 우리 반도체 기업에 직접 조달하는 형태로 투입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며 “지금은 정부와 기업이 ‘21세기의 도약’을 위해 중지를 모아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