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증하는 가계대출을 잡으려는 당국의 ‘속도전’이 옳을 수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대책을 사전고지하면 엄청나게 수요가 몰린다”고 설명한 것도 일리가 있다. 실제로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시행을 앞둔 지난달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만 7조 원에 달하는 대출 수요가 몰렸다.
그러나 속도전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그만큼의 준비가 필요하다. 빠르게 움직이되 정교하고 촘촘한 사전설계가 따라붙어야 한다.
세부 가이드라인과 유권해석 없이 규제만 발표된 이번 조치는 현장에 혼선만 불러왔다. 상품별 예외 사항, 상황별 지침 등 핵심 내용이 빠졌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금융소비자들에게 전가됐다.
이미 기존 주택을 매도하고 가계약까지 마친 이들은 하루아침에 대출이 막히며 수천만 원의 계약금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피가 마르는 상황에서도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금융위는 이달 3일 뒤늦게 실무지침서를 금융사들에 배포했지만 일선 영업점에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예외 적용 기준이 모호해 사례별 판단이 어렵고 금융사마다 해석이 엇갈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불과 10개월 전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지난해 9월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억제를 주문하자 은행들은 일제히 대출 문턱을 높였다. 이후 ‘실수요자를 보호하라’는 당국 지침이 내려오자 각 은행은 앞다퉈 예외 규정을 신설했다. 문제는 은행마다 기준이 달라 소비자들이 여러 곳을 전전해야 했고 매일 바뀌는 창구 대응에 은행 직원들도 혼란을 겪었다.
대출은 ‘해석’ 하나로 가부가 결정된다. 그 차이가 수만 명의 계약과 생계를 좌우한다. 속도전이 필요할수록 그에 앞선 준비는 더 철저해야 한다. 시장 파급효과가 큰 정책일수록 더욱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