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분할 늘지만 주주가치 훼손 우려
기업들 대체 자금조달 전략 마련 고심
"IPO 대신 자산 매각 등 선회 늘어"

상법 개정안 통과로 자본시장 내 투자은행(IB) 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대주주에 유리한 중복상장이나 합병 계획은 밀려나고,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 시장에서도 주주친화 전략으로 선회하는 모습이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최근 SK엔무브 상장 추진을 철회했다. SK엔무브는 연내 IPO를 목표로 했으나, 한국거래소가 모회사와의 사업 중복성을 문제 삼고 ‘중복상장’ 비판 여론이 커지면서 전략을 수정했다. SK이노베이션은 재무적 투자자(FI)인 IMM크레딧솔루션이 보유한 SK엔무브 지분 30%를 약 8600억 원에 장외 매입해 100% 자회사로 편입하기로 결정했다.
바이오벤처 오스코텍도 자회사 제노스코의 코스닥 상장을 추진했으나, 4월 중복상장 문제로 인해 거래소로부터 상장 미승인을 통보받았다. 거래소가 모회사 소액주주와의 사전 소통 여부 등을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가 무분별한 물적분할을 통한 상장에 강경한 입장을 수차례 보이고, 이날 소액주주 보호를 핵심으로 하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기업들도 긴장하는 모습이다. 그간 자회사 상장을 명목으로 투자금을 유치했던 기업들은 대체 자금조달 전략 마련에 고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업 지배구조 개편을 돕는 증권사 투자은행(IB) 업계와 회계법인, 로펌에서도 상법 개정안을 반영해 자문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주주가치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자금을 조달하도록 지배구조를 변경하는 방향이다. IPO 과정에서는 주관 단계에서부터 중복상장 논란 여부, 주주친화 정책 여부 등을 점검하고 있다. 증권사 IB 담당 임원은 “상법 개정안 통과로 IPO 준비 과정에서부터 모회사·자회사 간 의결권 구조나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을 살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차라리 IPO 대신 자산 매각, 지분 매각 등 비상장 엑시트 전략으로 선회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오너기업 등 지배주주가 있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물적분할을 통한 자회사 상장은 거의 추진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실제로 작년 하반기부터 분할 후 상장 구조를 준비 중인 기업들로부터 소액주주 보호 장치의 법적 정당성 확보, 주주가치 훼손 논란 최소화 방안에 대한 자문 요청이 증가하고 있다”며 “국내외 자산운용사나 국민연금이 사전 검토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이미 기업 IR 및 법무팀이 주도적으로 상법 개정과 자본시장 규제 방향을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물적분할보다 인적분할로 방향을 트는 경우도 생겼다. 증권사 IB 담당자는 “쪼개기 상장이나 중복상장 논란으로 물적분할에 대한 반발이 크다 보니 차라리 기존 주주들이 신설회사의 상장 효익을 누릴 수 있는 인적분할을 고민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며 “다만 인적분할도 단기간 주가 하락 사태 등으로 주주가치 훼손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 주주환원에 대한 추가적인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2개월간 삼양홀딩스 등 상장회사 4곳이 인적분할 관련 결정을 공시했다. 그간 대주주에 유리했던 합병 비율 문제도 점차 줄어들 전망이다. IB 업계에서는 합병비율 논란으로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 합병 계획이 지연된 이후, 공정가액 산정과 충분한 사전 설명을 필수 조건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대기업 계열사 간 합병에서 기업가치를 산정할 때, 대주주와 기존 주주 간 공정성을 어떻게 담보할지가 핵심 안건이 됐다”며 “과거에는 합병 비율이 법에 정해진 산식에 따라 결정되면 괜찮았지만, 이젠 산식에 따라 결정하더라도 전체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두고 더 많은 논의와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상장회사의 경우 올해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으로 이미 합병 관련 강화된 규제를 적용받고 있지만, 비상장회사의 경우 일정한 합병·분할 등의 거래를 진행하는 것이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위반에 해당할 수 있어 더 포괄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