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제2회 과학미디어아카데미 개최…성별 특성 반영한 제도·연구 현황 소개
“남자처럼 아픈 환자만 진짜 아픈 것이고, 남자에게서 보이는 검사 결과가 나오는 환자만 진단이 된다.”
옌틀 신드롬(Yentle syndrome)은 심장 질환에 대한 연구자료가 남성 환자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어, 남성과 다른 양상을 보이는 여성의 진단·치료에 한계가 발생하는 현상이다. 최근 국내 의료계에서는 이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와 진료에 ‘성차의학’을 도입하려는 논의가 한창이다.
국립보건연구원과 한국과학기자협회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HJ비즈니스센터에서 ‘성차를 고려한 연구가 건강을 바꾼다: 성차의학’을 주제로 2025년 제2회 과학미디어아카데미를 개최했다. 이날 박현영 국립보건연구원장과 박성미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성차의학의 중요성과 연구 사례를 소개했다.

성차의학은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문화적 성(gender)의 차이가 인간의 건강, 질병, 예방, 진단, 치료, 예후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는 학문 분야다. 같은 질병이라도 성별의 차이에 따라 다른 특성을 보인다는 점을 고려해, 환자에게 더욱 적합한 의료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미국에서는 일찍이 1990년대부터 생명공학, 의학 분야의 연구와 실험에 성차의학적 관점을 도입했다. 미국국립보건원(NIH)은 재활성화 법(Revitalization Act)에 따라 연방 자금이 지원되는 모든 임상연구에 여성과 소수 인종을 포함하도록 의무화했다. 2016년에는 SABV(Sex as a Biological Variable) 정책을 도입해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에 남녀를 모두 포함하고, 결과 보고서에 성별에 따른 차이를 기술하도록 권고했다.
한국은 최근 들어 법률에 성차의학 관점을 도입하고 있다. 2021년 개정된 과학기술기본법은 과학기술기본계획, 기술영향평가, 각종 과학기술통계 작성 시 성별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2022년에는 국가연구개발사업 등의 성과평가 및 성과관리에 관한 법률(연구성과평가법)을 개정해 연구개발사업의 평가지표로 성별 특성 반영 여부를 추가했다.
박현영 원장은 “성차의학은 남녀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별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고, 그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방법을 찾는 연구다”라며 “기존 의료의 성중립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건강 불평등을 완화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성차의학의 중요성이 두드러지는 대표적인 분야는 순환기내과다. 심장 질환은 남성 환자가 많은 질병으로 알려져, 여성 환자가 빨리 발견되기 어렵다. 병원을 찾은 중년 남성이 가슴 통증을 호소하면 의료진은 곧바로 심장을 검사하지만 비슷한 증상의 중년 여성은 소화불량과 같은 다른 원인을 의심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여성 환자 진단의 사각지대는 국내 의료현장에서 활용되는 진료 가이드라인에도 드러난다. 현행 안정형 협심증 표준진료권고안은 허혈성 심장질환을 진단하는 데 필요한 ‘특별상황에서의 관동맥 조영술’에 대해 ‘여자는 시행 비율이 낮은데, 이는 임상적으로 여자의 관상동맥질환 가능성이 남자에 비해 낮기 때문에 적절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박성미 교수는 성별 차이를 고려한 한국형 심장혈관질환 진단 및 치료 표준 마련을 목표로 국립보건연구원 연구용역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연구를 위해 고려대 안암병원을 총괄 주관연구기관으로 연세대·전남대·서울대병원이 참여하는 ‘K-STAR Project’ 컨소시엄이 구성됐다.
박성미 교수는 “의료행위는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해 이뤄지는데 근거 자체가 남성 환자를 대상으로 만들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라며 “소아는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은 남성의 축소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남성을 대표적인 전형(typical)으로 보는 기존 관점에서 나아가 여성과 남성 각각의 특성을 고려하는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