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배의 금융의 창] ‘제도권 서민금융’ 움직여야 민생이 산다

정책평가연구원 비상근연구위원ㆍ금융의 창 대표

새 정부가 출범했다. 민생 회복은 그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명목 기준금리는 하향 조정됐지만, 실질금리와 환율 불안은 여전히 서민의 삶을 압박하고 있다. 물가 상승률은 2%대로 진정됐으나 생활비 부담은 줄지 않고, 고환율은 수입 물가를 자극한다. 체감 경기는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없다.

정부는 부동산 공급 확대, 금리 부담 완화,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주요 민생 대책으로 내놓았지만, 여전히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사각지대가 있다. 관건은 민간 제도권 금융기관이 서민금융 기능을 회복하는 데 있다.

물론 정부는 햇살론, 부채 감면 등 정책성 금융을 지속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수단에 머물 수 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민간 제도권 금융이 서민을 위한 기능을 다시 수행하는 것이다. 민간 금융이 살아야 정책금융도 실효성을 얻는다.

중하위권 계층은 은행 문턱도 못넘어

서민금융은 담보 여력이 부족하고 신용이 낮은 저소득층에게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접근 가능한 자금을 제공해, 재산을 형성하거나 일시적인 자금난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보통 신용점수 700점 이하, 중하위권 계층이 주요 대상이지만, 이들은 대다수 은행 문턱조차 넘지 못한다. 정책금융 역시 한정된 재원과 까다로운 심사로 인해 실질적 접근이 쉽지 않다. 햇살론, 새희망홀씨 등 일부 제도가 있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한때 민간 서민금융은 활발했다. 하지만 2003년 카드대란 이후 은행은 리스크 회피를 최우선으로 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서민 대상 신용대출은 사실상 사라졌다. 담보 위주의 대출 관행 속에서 은행은 주택담보대출 등 ‘안정 영역’에 집중했고, 저축은행과 상호금융도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몰입하며 본래 기능을 상실했다. 최근에는 그마저도 부실 여파로 흔들리고 있다.

이 공백을 일정 부분 메운 것은 대부업이었다. 카드사와 은행이 외면한 저신용자에게 단기 자금을 공급하며 ‘최후의 금융망’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부정적 인식, 규제 강화, 금리 상한 인하 등이 겹치며 중소 대부업체는 줄줄이 폐업했고, 대형 업체조차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승인율은 급락했고, 그 틈을 타 불법사금융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제도권도, 비제도권도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서민금융 생태계는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민생 회복의 구호가 공허하지 않기 위해서는, 가장 낮은 곳에서 작동하는 금융부터 복원해야 한다. 민간 서민금융의 선순환 회복이 그 출발점이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무엇보다 은행은 상환 능력을 갖춘 서민을 선별·지원할 수 있는 기술과 체계를 갖춰야 한다. 자체 신용대출이 어렵다면, 자회사나 특화 플랫폼을 통해 별도 운영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금융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구조적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저축은행은 본래대로, 지역 중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한 금융기관으로 돌아가야 한다. 부동산 PF 의존도를 낮추고, 틈새 시장을 겨냥한 상품 개발과 유연한 심사 체계를 갖춰야 한다.

신협·새마을금고 등 협동조합은 조합원 중심 원칙을 회복하고, 중앙회 차원의 리스크 관리와 시스템 고도화를 통해 서민금융의 한 축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특히 유동성 위기를 겪은 새마을금고는 이번 사태를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

대부업, 불법사금융 막는 최후의 보루

또한, 대부업에 대한 일률적 부정 인식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일정 요건을 충족한 업체에는 자본시장 접근 기회를 열어줘 금리 경쟁력을 높이고, 합법적 대부업체가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이는 불법사금융 확산을 막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로부터 정책을 설계하겠다”고 밝혔다. 그 현장에는 ‘이자 한 푼에 울고 웃는’ 서민들이 있고, ‘신용회복만 기다리는’ 청년들이 있다. 정책금융만으로는 부족하다. 민간 제도권 금융기관이 움직일 수 있도록 구조와 유인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민간 서민금융이 살아야 민생이 산다. 그리고 민생 회복이야말로 한국 경제 재도약의 출발점이다. 경제는 결국 사람이 사는 문제이고, 그 삶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금융이 가장 낮은 곳까지 닿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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