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바이오=미래 먹거리?…투자 없이 성장 없다

“몇 년째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가운데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까지 줄어들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란 속담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듯합니다.”

최근 기자를 만난 어느 바이오기업 대표의 말이다. 경영 상황이 아닌 R&D 현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이었다. 신약을 만들어 내려면 계속 돈이 들어가는데, 투자가 충분치 않으니 그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단 한탄의 목소리였다.

한국바이오협회가 제21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내 136개 바이오기업의 최고경영자와 임원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대상 기업의 74.3%가 자금사정이 원활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10곳 중 7곳은 어려움을 겪고 있단 의미다. 자금난으로 경영권 매각을 검토한 적이 있다고 답한 기업은 38.2%로 나타났으며, 제안을 받으면 회사를 팔 생각이 있다는 기업도 47.8%에 달했다. 바이오업계가 전반적으로 극심한 ‘돈맥경화’를 겪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결과다.

그럼에도 바이오기업을 창업한 것을 후회한다고 답변한 이들은 28.7%에 그쳤다. 인류 건강에 기여하는 보람, 기술력에 대한 확신, 미래 산업으로서의 성장 가능성 등 도전에 대한 자부심이 자금조달의 어려움 속에서도 기업을 지속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부심만으로 기업을 지속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업계 일각에는 그 한계가 얼마 남지 않았단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돌파하지 못하면 국내 바이오산업의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단 우려도 제기된다.

윤석열정부는 지난해 국가 R&D 예산으로 26조5000억 원을 편성했다. 2023년보다 4조6000억 원(14.7%) 감소한 규모다. R&D 예산이 전년 대비 줄어든 것은 1991년 이후 33년 만이라고 한다.

특히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주요사업비는 평균 25.2% 축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나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처럼 30% 안팎의 예산이 삭감된 사례도 있다.

탄핵을 겪은 올해는 R&D 예산이 29조7000억 원 규모로 11.8% 늘었지만, 여전히 2023년도에 미치지 못했다. 그마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에 먼저 돌아가면서 바이오업계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끝이 보이지 않는 보릿고개 속에서 대선을 맞이한 업계는 차기 정부에 희망을 걸고 있다. 업계는 가장 바라는 점으로 R&D 예산 확대(74.3%)를 꼽았다. 바이오 지원 펀드의 결성을 늘려달라는 요청이 뒤를 이었다. 각 부처의 지원을 확대하고 대규모 상업화 펀드를 가동하면 블록버스터 신약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이다. 또한, 초기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시리즈B 이하 모태 펀드를 확대해야 한단 의견도 제시됐다.

실제로 신약 개발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하나의 신약을 만들기 위해 평균 3조 원 이상을 투자한다. 일반적인 바이오기업은 꿈도 꿀 수 없는 금액이다. 국내 기업들이 개발을 완주하는 대신 기술수출에 의존하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하나같이 바이오를 미래 핵심산업으로 꼽으며 대통령 직속 기구 설치나 특별법 제정 등 경쟁적으로 공약을 내놨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당선 후 정책으로 업계에 자금이 흘러 들어가도록 뒷받침하지 않으면 ‘미래’나 ‘핵심’은 표를 끌어내기 위한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단 것만 입증하는 것이다. 새로운 정부에서 업계가 기나긴 갈증을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