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배, 기준금리 내린다는데 대출 갈아타는 게 맞겠죠?"
결혼과 동시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서울 은평구에 아파트를 마련했던 후배 기자가 올해 초 기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매달 이자만 100만 원 넘게 부담하는 상황에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소식은 그에게 적잖은 희망을 안겼다.
몇 달 뒤, 그 후배를 다시 만났다. 이자가 줄었는지 묻자 돌아온 말은 오히려 질문이었다.
"기준금리는 내렸다는데, 왜 제 대출 이자는 그대로죠?"
기준금리가 하향 사이클에 접어든 지 반년이 지났지만,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좀처럼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간 금융당국이 강조해 온 '시장 자율'이 유독 대출금리에서만큼은 작동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실제 금융당국은 대출에 대해 '자율관리'를 주문하지만, 이는 총량 관리에만 국한돼 있다. 현재 은행 입장에서 금리는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안전핀이 없는 폭탄과도 같다. 섣불리 금리를 인하했다가 대출 수요가 급증하기라도 하면, 가계부채 관리 실패의 책임은 은행에 고스란히 돌아간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우리라고 고객들의 불만을 왜 모르겠냐"면서 "하지만 금리를 조금만 낮춰도 수요가 쏠리기 때문에 총량 규제를 받는 은행 입장에서는 당국의 눈치가 너무 부담되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그 결과 예대금리차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벌어졌다. 예금금리는 시장 금리를 반영하며 빠르게 내려갔지만, 대출금리는 금융당국 간섭 탓에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이와 관련해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신규 대출이나 수신과 관련해서는 예대금리차가 조금 벌어지고 있지만, 잔액 기준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라고 책임을 유보했다.
하지만 수치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신규 취급 기준 예대금리차는 7개월 연속 확대됐고, 잔액 기준 역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또 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는 "월별 수치는 일시적일 수 있어 분기 단위로 봐야 한다"라는 발언도 내놓았다. 시장과 당국이 금리를 바라보는데 있어 분명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처럼 정책과 시장 간의 시각 차이가 누적되면, 소비자들은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이 와중에 정치권은 '예대금리차 공개법'을 꺼내들었다. 은행별 예대금리차를 공시하고, 격차가 과도할 경우 금융위원회가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표면적으로는 소비자 보호와 정보 투명성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금리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간섭에 가깝다.
그렇다고 은행권이 이런 비판들 사이에서 자유롭지만은 않다. 금융당국과 정치권의 간섭이 금리를 경직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은행 스스로도 금리 구조를 유연하게 만들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특히 소비자 불신의 상당 부분은 은행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시중은행들은 벌어진 예대금리차로 막대한 이자 수익을 내면서도, ‘이자장사’라는 비판에는 방어적 태도로 일관해왔다. 그러면서 정책 변화에 맞춰 신용평가 체계를 고도화하거나, 자영업자·중신용자 대상의 맞춤형 금융모델을 개발하는 등 혁신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던 것이 사실이다.
당국은 시장을 믿지 못하고, 은행은 책임을 피한다. 그 사이에서 소비자는 오늘도 "왜 내 금리는 그대로냐"라며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정책이 방향을 잃고 금융이 목적을 잊을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