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주의 컷] 세월호 유가족이 카메라를 든 이유…'바람의 세월'

입력 2024-03-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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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 어땠어?" 영화관을 나오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다. 전반적으로 괜찮은데 특별히 할 말이 없는 영화가 있고, 흠이 있지만 특정한 장면이 뇌리에 남는 영화가 있다. 전자가 평범한 영화라면, 후자는 매력적인 영화일 것이다. 결국 좋은 영화란 장면이 기억에 남는 영화다. 한 편의 영화를 하나의 장면을 통해 알아보자.

그게 소설이든 시든, 어떤 젊은이가 갑자기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쓰기 시작한다면, 지금 그의 내면에서 불길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불은 결코 홀로 타오르는 법이 없다. 그러니 그 불은 바깥 어딘가에서 그의 내면으로 번졌으리라.

▲영화 '바람의 세월' 스틸컷 (시네마달)

김연수 작가는 책 '작가란 무엇인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 작가는 주체를 '젊은이'로 상정했지만, 사실 무언가를 쓰고자 하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기자가 만났던 작가들은 대개 말을 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고 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말을 붙잡고 싶어서 글을 쓴다. 감정을 눈으로 확인하고,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이미지를 붙잡아 은막 위에 새기는 예술이다. 관객들은 극장에서 감독이 붙잡은 이미지를 누군가와 함께 본다. 그런 점에서 감독도 작가다. 작가가 펜을 들듯이, 감독은 카메라를 든다. 영화평론가 알렉상드르 아스트뤽은 이를 '카메라 만년필설(Camera-stylo)'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영화 '바람의 세월'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의 아버지 문종택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참사 이후 10년간 여러 세월호 소재 영화들이 만들어졌지만, 유가족이 직접 만든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미디어 활동가 김환태 감독의 도움을 받아 이번 영화를 완성했다.

▲영화 '바람의 세월' 스틸컷 (시네마달)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배가 좌우로 흔들리며 항해하듯이, 카메라가 좌우로 흔들리며 피사체를 포착하는 장면에 있다. 카메라는 좌우로 흔들거리며 한 희생자의 방을 포착한다. 이어 인양된 세월호의 안과 밖을 같은 움직임으로 포착한다. 카메라는 왜 이렇게 움직일까.

이 같은 움직임의 정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밝혀진다. 바로 세월호가 가라앉은 사고 지점을 표시한 '노란 부표'의 움직임을 카메라가 체화한 것. 이 노란 부표는 파도로 인해 끊임없이 흔들리지만, 절대로 가라앉지 않는다.

어쩌면 '바람의 세월'은 모진 풍파에 끊임없이 흔들릴지언정 절대로 가라앉지 않겠다는 유가족들의 의지가 투영된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이 같은 움직임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와중에도 지속한다.

언젠가 아이들을 만나는 날, 진실을 밝히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열심을 다했노라 말할 수 있기를. 그래서 다시 한번 그 손을 잡아줄 수 있기를.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바라고 또 바라봅니다. - 영화 '바람의 세월' 中.

다시 김 작가의 말을 빌려보자. 평범했던 아버지가 직접 카메라를 들었다면, 지금 그의 내면에서 불길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불은 결코 홀로 타오르는 법이 없다. 그러니 그 불은 바깥 어딘가에서 그의 내면으로 번졌으리라.

아버지의 내면에 불길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불은 왜 아버지의 내면으로 번졌을까. 참사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이런 가운데 세월호 참사 10주기 위원회는 27일 진상 규명을 위한 상설 독립 조사 기구를 꾸릴 수 있는 법 제정을 호소했다.

모든 게 불투명하지만,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게 몇 가지 있다. 삶의 전부라 여겼던 것이 사라져도 세상은 지속한다는 것. 흔들릴지언정 절대로 가라앉지 않겠다는 생의 의지는 숭고하다는 것. 결국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위로받는다는 것.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바람의 세월'은 내달 3일 국내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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