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깡패’ → ‘전국구 MZ조폭’…시대 따라 달라지는 조폭 변천사 [이슈크래커]

입력 2023-09-19 16:04수정 2023-10-1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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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검거된 2002년생 ‘MZ조폭’. (사진제공=충남경찰청)
전국 21개 폭력조직의 조직원들이 결성한 신흥 폭력조직 모임이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이 조직원들은 ‘전국구 조폭이 되자’는 목적으로 또래 모임을 결성했다는데요. 모두 2002년생입니다.

충남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18일 특수상해 및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단체등의구성활동) 등 혐의로 20대 조직원 66명을 붙잡고 8명을 구속했다고 밝혔습니다. 나머지 58명은 검찰에 불구속 송치됐습니다.

이들 중 2002년생으로 구성된, 이른바 ‘MZ조폭’ 34명은 지난해 12월 30일 경기도 안양에서 ‘전국구 깡패가 되려면 인맥이 넓어야 한다’는 목적으로 신흥 폭력조직 또래 모임인 ‘전국회’를 조직하고 지속적으로 회합한 혐의를 받습니다. 각자 지역 조폭에 몸담은 상황에서 전국 또래 조직원들끼리 SNS를 통해 연락 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죠. 새 조직에서는 앞서 습득한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 및 대포통장 유통 등의 범죄 수법 등을 공유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들은 첫 모임에서 술에 취해 지나가는 시민을 폭행하는가 하면, 충청지역 조직원과 경기지역 조직원이 서로 싸우고 주점 내 집기류를 파손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이 모임을 주도한 안양지역 조직원을 구속했습니다.

앞서 경찰은 인터넷 도박장을 운영하다 붙잡은 충남 논산시 A파 조직원의 압수품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전국회의 네트워크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A파가 운영하던 220억 원 규모의 온라인 도박 사이트에서 벌어들인 범죄수익금 5700만 원에 대해선 처분할 수 없도록 기소 전 몰수보전 조치를 취했죠.

온몸을 뒤덮은 문신을 과시·협박 수단으로 사용하거나, 무리를 지어 다니며 위협감을 조성하는 모습은 그리 신선(?)하진 않은데요. 조폭이 오랫동안 맥을 이어왔기 때문입니다. 이에 조폭을 소재로 한 드라마, 영화도 이젠 ‘식상하다’는 평을 듣곤 하죠. 다만 예전 미디어에서 접하던 조폭과 지금의 모습이 사뭇 다르긴 합니다.

▲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자료용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조선시대에도 조폭은 있었다…대대적 소탕에도 맥 이어와

조직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무리는 조선시대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숙종 때의 기록을 보면 당시 좌의정 민정중은 “한양 도심에서 불량배들이 조직을 만들어서 싸움 연습을 한다.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으니, 포도청에 수사를 의뢰해서 처벌하는 게 어떻겠냐”고 보고했다고 합니다.

이때 ‘검계’라고 불린 불량배들은 단순히 싸움 연습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재물을 훔치거나 강탈하고, 백성의 목숨을 해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숙종은 이 같은 보고를 받고 소탕을 내려 10여 명을 붙잡는데요. 이들 중 한 명이 포도청에 붙잡혀서 칼로 자해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조폭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일제 강점기 무렵입니다. 이 시기 조폭들은 이른바 ‘낭만파’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장군의 아들’ 김두한부터 ‘시라소니’ 이성순 등이 이 시기 대표적인 조폭으로 꼽힙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협객’으로 부르며 거리에서 주먹으로 맞붙었습니다. 특히 김두한은 우리나라 조폭의 원조(?)라는 평도 받는데요. 그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야인시대’는 큰 인기를 끎과 동시에 역사 왜곡·폭력 미화 등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조폭은 정치와 결부되기도 했습니다. 이화룡, 이정재 등은 ‘정치 깡패’로 불린 인물인데요. 이승만 정부를 배경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이들은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며 특수감시죄, 공갈죄 등으로 구속 기소됐습니다. 이후 박정희 정권에선 아예 사형당하거나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등 대대적으로 숙청됐죠.

그러나 조폭의 맥은 끊기지 않았습니다. 네임드(?) 조폭들이 새롭게 등장한 겁니다. 신상현의 신상사파, 호남파로 분류되는 조양은의 양은이파, 김태촌의 서방파, 이동재의 OB파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여러 차례 부딪치면서 세력 다툼을 벌였고, 결국 양은이파가 서울을 제패한 듯했습니다.

하지만 군사 정권은 ‘사회악 일소 특별 조치’와 함께 계엄포고령 제19호를 발령, 대대적인 조폭 소탕에 나섰습니다. 이때 등장한 게 삼청교육대입니다. 양은이파 두목인 조양은이 구속되면서 격변의 시기도 저무는 듯했죠.

▲2022년 12월 열린 전국 조폭 모임의 모습. (사진제공=서울중앙지검)

‘기업형 조폭’에 ‘MZ 조폭’까지 등장…SNS 통해 접촉·세력 과시

그러나 조폭은 새로운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사회 정화’를 내세운 삼청교육대도 조폭을 근절하지 못한 건데요. 전두환 정권 당시 ‘3S(Screen(영화)·Sport(스포츠)·Sex(섹스) 정책’과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을 계기로 향락·도박산업이 크게 발전했는데, 조폭들이 이를 활동 자금으로 삼으며 세력을 뻗친 겁니다.

과거 조폭들이 유흥업소·상가 관리와 갈취를 통해 자금을 마련했다면, 합법화된 법인 활동에 나서며 적극적으로 돈벌이에 나서기도 했는데요. 건축 시행사, 아파트 분양 시장에도 진출하면서 2000년대 중반부턴 기업형 조폭이 활개를 쳤죠. 상장회사를 운영하면서 직접 분식회계나 주가 띄우기에도 나서는 등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모습도 발견됐습니다.

최근에는 이른바 ‘MZ 조폭’ 관련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경찰이 집중 수사 방침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특이점은 서로 다른 조직에 속한, 또래 조폭들끼리 만든 변종 폭력 모임이라는 점, ‘두목’이란 명칭 대신 ‘회장’이란 명칭을 사용한다는 점, 20~30대가 주축이라는 점, 평소에는 소속된 조직에서 활동하다가 모임 자리에서 각자 익힌 범죄 수법을 공유하며 세를 확장했다는 점 등이 꼽힙니다.

실로 이들은 인스타그램 등 SNS에 전국 또래 조폭들이 모여 단합하는 모습이나 전국의 폭력조직 이름이 담긴 사진 등을 게재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로 다른 조직끼리 날을 세우고 대규모 패싸움까지 벌이던, 기존과는 다른 변종 폭력 모임이 등장한 건데요. 예전처럼 계파별로 정면 승부를 해버리면 양쪽 조직이 와해된다는 것을 알고, 여러 사업을 연대하면서 상호 ‘윈윈’(win-win) 효과를 얻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에 이들의 세력이 더 커지기 전에 신속하고 전국적인 단속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오죠.

하얏트호텔에서 난동을 부린 수노아파 조직원 39명을 무더기로 기소한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의 신준호 부장검사는 조폭 세계를 두고 “배신과 음해가 난무하는 치졸한 세계”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7월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요즘 MZ 조폭에 대해 “트렌드가 많이 바뀌어서 디지털 포렌식 같은 (수사) 방식에 치중하고 있다. 전화나 메신저 내용이나, 압수수색만 잘하면 그 안에 자료가 풍부하게 남아 있어서 오히려 수사하기 수월한 면도 있다”며 “(SNS를 통한 세력 과시는) 일종의 자기 과시다. 내면이 허약한 친구들이 많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폭의 여러 형태는 진화(?)하고 있지만, 위협감을 조성하고 폭력 범죄를 저지르는 등 ‘추태’는 불변의 요소인 듯한데요. 경찰은 전국회에 가입한 21개의 폭력 조직과 배후 조직까지 철저히 수사해 폭력조직을 해체하는 등 엄정하게 대응할 방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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