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 지방 노후아파트] 녹물 '줄줄' 나오는데도… 재건축은 딴나라 이야기

입력 2020-01-28 06:48수정 2020-01-28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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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0-01-27 17:00)에 Channel5을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집값 뚝ㆍ빈집 속출… 수익성 낮아 재건축 엄두 못내

“버려진 아파트.” 박영근 관리사무소장은 태화아파트를 이렇게 불렀다. 1978년 입주한 경북 안동시 태화동 태화아파트는 안동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다. 5층 높이로 8개 동이 들어서 370가구가 입주했다.

그 후 42년, 박 소장 표현을 빌리면 아파트는 “낡을 대로 낡았다”. 태화아파트에선 겨울마다 수도관이 얼어 1층부터 5층까지 물난리가 난다. 겨울이 아니더라도 태화아파트의 수도꼭지를 열면 늘 녹물이 나온다. 난방도 엉망이다. 주변 아파트엔 일찌감치 도시가스관이 들어왔지만 태화아파트에선 태반이 중유 보일러를 땐다. 도시가스관을 들여올 비용을 부담할 수 없어서다. 매연이 심하고 난방비도 만만찮아도 주민들은 감내하고 있다.

상황을 바꾸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태화아파트 주민들은 1997년께 재건축을 추진했다. 얼마 안 가 닥친 외환위기 때문에 재건축 추진 작업이 고꾸라졌다. 2009년에도 재건축을 시도했지만 사업성이 없다는 판단 때문에 흐지부지됐다. 안동시 조례에 따르면 태화동에선 18층 이상 건물을 지을 수 없다. 박 소장은 “일반분양을 해야 재건축 수익을 거둘 수 있는데 지금 같은 규제가 바뀌지 않으면 아파트를 다시 지은들 주민들도 다 입주시킬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재건축 사업이 추진과 좌초를 되풀이하는 사이 태화아파트 상황은 점점 나빠졌다. 43살짜리 아파트는 이제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인과 외국인 근로자만 사는 아파트가 됐다. 2010년 3800만 원에 매매됐던 이 아파트 전용면적 35㎡형의 거래가격은 현재 2100만 원 언저리로 떨어졌다. 그나마도 90여 가구가 입주자를 찾지 못하고 빈집으로 남아있다. 특히 엘리베이터가 없어 노인이 오르내리기 힘든 5층은 절반 이상이 비어 있다.

안동 시내 다른 아파트 단지도 태화아파트와 다르지 않다. 안동시 아파트 3만2242가구 중 1만4793가구가 지은 지 20년이 넘은 노후 단지다. 10곳 중 4곳꼴이다. 이 가운데 재건축이 정식으로 추진되는 단지는 ‘송현주공1차아파트(420가구)’ 한 곳이다. 인근에서 공인중개사를 하는 김재현 대표는 재건축 성사 가능성을 묻자 “재건축 구역은 지정됐지만 사업성이 떨어지니 이끌어갈 사람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태화아파트처럼 애물단지 신세가 된 지방 노후 아파트가 늘고 있다. 허물고 새로 지으려 해도 재건축 추진 단계에서 엎어지는 곳이 수두룩하다. 새 아파트로 탈바꿈할 기대감에 몸값이 신축 아파트만큼 올라간 서울·수도권 단지들과는 다른 세계다.

지방 아파트가 낡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사업성 부족이다. 지방 부동산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재건축 수익성에 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방 아파트 매매가격은 2016년 12월 3.3㎡당 751만 원까지 올랐지만 지난해 연말엔 689만 원으로 8.2% 떨어졌다. 전남이나 경북에선 3.3㎡당 200만 원이 안 나가는 아파트도 늘고 있다. 집값이 맥을 못 추는 상황에서 재건축을 강행하다간 공사비 부담만 떠안을 수 있다는 게 지방 아파트의 걱정이다.

미분양 아파트 증가는 이런 걱정을 더욱 키우고 있다. 비(非) 수도권의 미분양 주택 수는 지난해 11월 기준 4만5246가구다. 지방 주택 경기가 한참 좋던 3년 전(2016년 11월 3만9347가구)보다 14.9% 늘었다. 인구는 줄고 지역 경제는 악화하는데 새 아파트가 계속 공급된 결과다. 특히 혁신도시나 시·도청 이전 지역을 중심으로 새 아파트가 집중 공급되면서 원도심이 직격탄을 맞았다. 사업성 검토 없이 무작정 아파트를 재건축하면 미분양 아파트가 돼 주민들이 그 부담을 지게 된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금융학과 교수는 “인구 밀집지역이나 도시 중심 지역 같은 경우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주도하는 공공 주도 재건축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사업성이 떨어지는 노후 아파트가 너무 많기 때문에 주요 단지를 정해서 선별적으로 시범사업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재건축이 어려운 지방 아파트에 대해선 리모델링 요건을 완화해 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LH도 이르면 다음 달 ‘지방 중소도시 노후 주거지 정비사업 공공 참여 확대 방안 연구 용역’을 시작한다. LH는 이번 연구에서 세제 혜택, 규제 완화 등 정비사업 방안을 연구하고 시범사업 후보지를 발굴할 계획이다.

▲경북 안동시 태화동 태화아파트 전경. 1978년 지어진 이 아파트는 두 차례 재건축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사업성 부족으로 무산됐다. 박종화 기자. pb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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