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오토 인사이드] 폭스바겐과 현대차의 평행이론

입력 2019-11-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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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 이후 VW 제품전략 쫓아…페이톤 실패가 에쿠스까지 영향

현대자동차는 글로벌 차 업계에서 대표적인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다.

설립 초기, 일본 자동차 회사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이들이 추구하는 전략을 모방했다. 그렇게 쌓아 올린 기술력이 모이면서 이제 글로벌 주요 자동차 기업들이 현대ㆍ기아차를 주목하며 경계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후발주자로서 시장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우리 것으로 만들어낸 덕이다.

1980년대 개척기를 거쳐 2000년대 커다란 도약을 발판으로 글로벌 5위 수준에 오른 배경에는 이런 제품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독일 폭스바겐이 존재한다. 이른바 ‘폭스바겐과 현대차의 평행이론’이다.

◇ 폭스바겐 TFSI와 현대차 T-GDi =폭스바겐과 현대차 모두 주력 분야가 소형차다.

2000년대 초까지 폭스바겐의 최고급 차는 파사트였을 정도다. 현대차 쏘나타 크기의 중형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폭스바겐은 작은 엔진을 만드는 기술이 출중했다. 직렬 4기통 2.0리터 엔진을 두루 써먹는 이유도 출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의 대표적인 엔진이 직분사 방식의 2.0 FSI(Fuel Stratified Injection)다. 간접분사가 아닌 연소실에 직접분사를 통해 출력과 연비를 끌어올렸다.

폭스바겐은 이 엔진을 바탕으로 과급기인 터보를 더해 TFSI 엔진까지 개발했다. 직렬 4기통 2.0 TFSI 엔진은 소형차 ‘골프’의 고성능 버전에 쓰였다.

최근에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출력을 더 끌어올렸다. 같은 엔진을 얹은 아우디 신형 A6 2.0 TFSI 엔진은 최고출력이 무려 252마력까지 상승했다.

같은 맥락에서 현대차 역시 세타 엔진을 바탕으로 직분사 방식인 세타2 GDi 엔진을 개발했다. 역시 폭스바겐과 마찬가지로 과급기인 터보를 더해 T-GDi까지 내놨다. 북미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현대차 쏘나타와 기아차 K5에 얹어 호평을 받았다. 현대차의 고성능 모델 벨로스터 N 의 엔진 역시 2.0 T-GDi다. 최고출력은 아우디를 크게 앞선 275마력에 달한다.

▲폭스바겐과 현대차 모두 소형차에 집중했던 만큼, 작은 엔진 만들기가 경지에 이르렀다. 왼쪽이 폭스바겐의 터보 직분사 엔진, 오른쪽이 현대차의 터보 직분사 엔진이다. (사진제공=뉴스프레스, 현대차글로벌미디어)

◇ 폭스바겐 DSG 겨냥한 현대차 DCT=변속기 개발 및 방식도 유사하다.

2000년대 중반, 폭스바겐은 다판식 클러치 방식의 변속기 DSG를 개발해 선보였다. 속을 뜯어보면 사실상 수동변속기에 가깝다. 당연히 제작원가는 수동변속기와 자동변속기의 중간쯤에 자리한다. 기능은 자동변속기와 다를 바 없지만, 출력 손실이 없고 직결감이 뛰어난 게 특징이다. 그만큼 수동변속기 수준의 연비를 뽑아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폭스바겐의 DSG를 보고서 화들짝 놀란 현대차 역시 같은 메커니즘을 담은 변속기 DCT를 개발했다.

▲폭스바겐 시로코(사진 위)는 어느 시대에서나 골프 윗급에 고성능 해치백으로 자리했다. 현대차 벨로스터(아래) 역시 시로코에서 영감을 얻어 초기 프로젝트가 추진됐다. (사진제공=뉴스프레스, 현대뉴스닷컴)

◇ 폭스바겐 시로코와 현대차 벨로스터=두 회사를 상징하는 아이코닉 모델도 유사하다.

시로코는 역사적으로 폭스바겐의 고성능과 스포티를 상징해 왔다. 소형 해치백의 교과서로 불리는 골프 플랫폼을 바탕으로 개발한 2도어 타입의 스포티 쿠페다. 차 너비를 마음껏 키우고 높이는 낮췄다. 여기에 2.0 터보 엔진은 물론 고성능 V6 엔진까지 얹을 수 있다. 어설픈 스포츠카를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는 기본기까지 갖춘 셈이다.

시로코에서 영감을 얻은 현대차도 고성능과 스포티 이미지를 담아 상징적 모델을 내놨다. 기본 플랫폼은 준중형차인 아반떼의 것을 이용하되 스타일과 서스펜션 등을 모조리 바꾼 벨로스터다. 출시 당시 좌우 1+2도어 구성이 큰 화제를 일으켰던 차다. 벨로스터 역시 2세대로 거듭나면서 본격적인 고성능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2.0 T-GDi 엔진을 얹고 폭스바겐 시로코처럼 고성능 반열에 올라섰다.

▲폭스바겐 페이톤(사진 위)는 북미 시장에 폭스바겐 브랜드로 진출했다 참패했다. 폭스바겐을 따라했던 현대차 에쿠스(아래)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사진제공=VW글로벌미디어, 현대뉴스닷컴)

◇ 폭스바겐 페이톤과 현대차 에쿠스= 두 회사 모두 초기 고급차 전략에는 실패했다.

폭스바겐은 2000년대 중반, 페이톤을 앞세워 본격적으로 고급차 시장에 진출했다. 생산도 독일 드레스덴에 자리한 투명유리 공장에서 했다. 이 공장은 겉면이 유리로 된, 웬만한 호텔 로비 수준의 정갈함을 자랑하는 폭스바겐의 자랑거리 공장이다. 이곳에서 초호화 세단 벤틀리와 폭스바겐 페이톤이 혼류 생산됐다. 폭스바겐은 페이톤을 일컬어 ‘명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북미시장에서 결과는 참패였다. 폭스바겐 그룹 내에 아우디와 벤틀리가 존재하지만, 폭스바겐 브랜드를 바탕으로 최고급 세단을 만들기로 했는데 이게 실패의 원인이었다. 품질은 뛰어났으나 대중차 브랜드 폭스바겐이 내놓은 최고급 대형 세단이 어색했기 때문이다.

현대차 역시 2세대 에쿠스를 앞세워 미국에 진출하면서 폭스바겐의 전략을 참고했다. 고급 브랜드가 아닌, 현대차 이름으로 차를 내놓았는데 폭스바겐의 전략을 참고한 경우다.

결과는 폭스바겐과 마찬가지로 참패였다. 일반 대중차 브랜드 현대차가 내놓은 최고급 세단에 대해 시장은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결국, 에쿠스의 실패는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의 출범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에쿠스의 미국 진출은 현대차가 폭스바겐을 따라 하다 겪게 된 대표적인 실패 케이스다. 폭스바겐과 현대차의 평행이론은 실패 사례까지 똑 닮아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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