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_인터뷰] "올림픽 중계할 때 '감탄' 말고 '설명' 해주세요"

입력 2019-09-19 06:00

국내 최초 저시력인 화면해설작가…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 강내영 대표 인터뷰

▲강내영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 대표가 11일 서울 은평구 증산로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정부 지원 사업을 받기 위해 발표하러 가면 '시각장애인도 스마트폰 사용하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어요. 이 서비스가 왜 필요한지 모르는 사람이 많은 거죠. 그거 아세요? 시각장애인도 유튜브 많이 봐요."

'시각장애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개 '전맹(全盲)'을 떠올린다.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거라고 짐작하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은 크게 '전맹'과 '저시력'이 있다. '전맹'은 세상이 온통 검게 보이는 사람, 빛 혹은 움직임 정도는 느껴지는 사람으로 나뉘고, '저시력'은 병에 따라 보이는 정도가 개인마다 다르다.

'전맹'은 휴대전화에 보이스오버(voice-over:영화와 TV 등에서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 화자의 목소리 (내레이터의 서술 등)를 가진 표현 방식) 기능이 있어서 스마트폰 사용이 가능하고, '저시력'의 경우에는 잔존시력을 활용해 이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시각장애인도 스마트폰을 할 수 있느냐'와 같은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서울 은평구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에서 만난 강내영 대표는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전맹'과 '저시력인'이 어떻게 다른지 강의(?)를 펼쳤다. 자신은 '전맹'이 아닌 '저시력인'이라고 소개했다. "저는 자체 뽀샵(포토샵) 효과로 세상이 다 예뻐 보인다"면서.

"개그맨 이동우씨는 점점 시야가 좁아져서 중심만 보이다가 실명하게 되는 '망막색소변성증'을 앓았죠. 공에 맞거나 사고로 망막이 떨어져 나가 시야가 부분마다 안 보이는 분도 계세요. 주변 시야만 보이고 중심은 보이지 않는 사람, 위만 새까맣게 보이고 아래만 보이는 사람, 군데군데 벌레 먹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죠. 모두가 시각장애인이에요."

강 대표의 직업은 '작가'다. 국내 유일한 저시력인 화면해설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의 화면해설 대본 집필을 시작으로 지난 8년간 200여개의 작품, 총 1900여편의 화면해설 대본 집필 및 제작에 참여했다.

강 대표는 "화면해설과 자막의 차이를 아는 이들도 많지 않다"고 했다. 영상 속 화면해설 서비스는 자막 서비스와 확연히 다르다. 영화를 볼 때 배우들의 대사가 글자로 담기는 건 흔히 알고 있는 자막 서비스다. 청각장애인들은 주로 자막 서비스의 도움을 받는다. 시각장애인에겐 화면해설(음성해설, Audio Description) 서비스가 필요하다. 가령 남자 배우가 머리를 쓸어넘긴다거나, 한 여성이 남성과 싸워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으로 향해갈 때 보이는 행동을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서비스 말이다. 이 모든 행동을 설명하는 화면해설이 음성으로 나올 때 시각장애인도 영화를 귀로 '볼' 수 있다.

"현재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 N사의 영상을 작업하고 있어요. 주 작업이기도 하죠.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은 '킹덤'이에요. 우리나라는 사전제작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아 본방송이 아닌 재방송 때 화면해설이 제공되는데, N사에서는 사전제작이 되는 경우 화면해설도 같이 제작해 동시오픈을 합니다. '킹덤'도 그랬어요. 그래서 '배리어프리(Barrier-free)'가 가능했던 거죠."

강 대표가 운영하는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는 시각·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소통하며 만들어가는 온·오프라인 소리 복합 공간이다. 이곳에서 화면해설, 자막, 수어 등 배리어프리 콘텐츠를 기획·제작한다.

배리어프리 콘텐츠 한 편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3개월가량이 소요된다. 방송의 경우 3일에서 일주일, 공연 및 전시는 한 달 정도의 제작기간이 필요하다. 통상 걸리는 시간이다. 화면해설 초고 작업을 거쳐 시각장애인이 사전모니터에 참여해 감수하면 녹음-믹싱-검수가 이뤄진다. 시각장애인도 사후모니터링에 참여한다. 시각장애인이 받는 서비스에 시각장애인의 욕구가 반영되려면 시각장애인이 제작에 참여해야 한다는 게 강 대표의 생각이다.

"시간이 주어지고 환경만 갖춰지면 가능한 일이에요. '빨리빨리' 문화만 없어진다면요."

다음은 강 대표와 일문일답

- 시각장애인 안에서도 '저시력'과 '전맹' 등 구분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중심 시야만 보이는 친구가 있어요. 잘 보이지 않으니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달라고 물었나 봐요. 그런데 진짜 안 보이는지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본다는 거예요. 겉으로 봐서는 멀쩡한데 안 보인다고 하니까요. 케인(시각장애인용 지팡이)을 짚으면서 가는데 도와주겠다고 잡아당기는 분들도 계시죠. 무턱대고 잡아당기면, 시각장애인은 자기 위치를 잃어버리게 돼요. 머릿속으로 공간을 그려가면서 가거든요.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해요.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먼저 물어봐야 해요."

▲강 대표는 '배리어프리' 콘텐츠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선천적 시각장애인은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다"라며 "배리어프리 콘텐츠가 대중화돼야 서로의 도움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라고 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 어릴 떄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나요?

"저는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아요. 왼쪽 눈은 가까이 있는 것만 보이고요. 어릴 때는 모두가 그런 줄 알았어요. 그냥 눈이 조금 나쁜 줄만 알았어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올라갈 때 신체검사를 했는데, 선생님이 보이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안보인다고 했더니 큰 병원에 가보면 좋겠다고 해서 가게 됐죠."

- 국내 최초 저시력인 화면해설작가입니다.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를 운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예전부터 몸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좀 없었죠.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 살아있는 느낌을 받아요. 저도 '진행'이에요. 눈이 점점 더 안좋아지고 있어요. 병원에서는 무리하지 말라고 하는데,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싶어요. 영상을 보거나 눈 쓰는 일 자체가 좋진 않거든요. 하지만 생계를 해야 하니까요. 지금은 '진행'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어요. 대본작업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거든요.

시각장애인이 '전문 모니터 요원'이나 성우, 사운드 편집자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싶어요. 시각장애인도 충분히 할 수 있거든요. 전맹인 친구가 대본 쓰고 녹음하고 믹싱도 해요. 지금은 비장애인이 거의 모든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데, 시각장애인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시각장애인이 직접 시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었으면 해요."

- 화면해설 작업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한 편의 배리어프리 영화가 만들어지는 데 평균 제작 기간은 3개월이에요. 비용은 1000~3000만원 투입됩니다. 한국 영화는 화면해설 대본을 작성하고 녹음하고 자막대본 작성하고 자막 들어가고 이런 식으로 이뤄진다면, 외화는 더빙 작업이 추가돼요."

-화면해설이 이뤄진 영화가 많지 않은 듯합니다.

"지난해 시각장애인용 영화 상영 비율은 전체 영화 643만회(회차 기준) 중 1280회밖에 되지 않아요. 0.02% 수준인 거죠. 만들어야겠다는 의지 문제 같아요. 법적으로 의무는 아니니까, 제작비를 추가로 들여서 하는 데가 많이 없는 거죠.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는 손익분기가 넘어서 배리어프리를 제작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여유가 없어요. 특히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는 제작 자체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 시각장애인은 항상 나중에 봐야 하네요.

"개봉에 맞춰서 나오는 건 한 달에 1~2편 정도니까요. 그것도 한국영화만요. 배리어프리 영화 위원회는 외화 위주로 많이 하려 하는 게, 시각·청각 장애인 모두 외화도 보고 싶어 하니까요. 배리어프리 영화를 만들려면 기본으로 '더빙'이 돼야 해요. 그래서 비용이 많이 드는 거죠. 제작할 때부터 2000~3000만원을 잡고 시작하면 좋은데, 추후에 하려고 하면 적은 돈이 아니니 비용적 부담이 느껴질 수밖에 없죠."

- 화면해설의 중요성 혹은 필요성이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할 것 같습니다. 일반인들은 모르는 정보가 정말 많아요.

"'그냥 보이는 대로 쓰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고 쉽게 접근하는 분들이 많아요. 시각장애인은 영상을 소리로 들어요. 화면해설 없어도 들을 수 있어요. 하지만 영화를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이해력을 좀 더 높이기 위해 화면해설이 보조서비스로 제공되어야 해요. 소리로 들어서 알 수 없는 정보를 최우선으로 제시해주는 겁니다."

- 화면해설을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나요?

"'선해설'은 지양해야 돼요. 가족이나 친구 등 비장애인과 함께 즐기려면 선해설이 되어선 안되죠. 함께 즐길 수 없으니까요. 누리꾼들이 포털사이트에 화면해설 어떻게 끄냐고 물어보는 이유가 '거슬려서'예요. 만약 영상에 맞고, 흐름에 맞는다면 거부감이 없는데 선해설이 돼버리니 '뭐야,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벌써 알려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죠."

- 어떤 마음으로 화면해설작가로 활동하세요?

"화면해설작가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직업이에요. 시각장애인이 없으면 이 직업도 없어지겠죠.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해는 물론, 사명감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시각장애인도 비장애인이 알고 있는 걸 똑같이 알게 해주고 싶어요. 소외되지 않고,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는 만큼 어울릴 수 있어요. 시각장애인들도 시각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요. 시각장애인도 유튜브 많이 봐요.

지금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입교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소셜 미디어 기반 화면해설 콘텐츠 제작 솔루션을 만들고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을 가져와서 화면해설을 제작할 수 있는 플랫폼이에요. 시각장애인이 원하는 유튜브 영상에 화면해설로 제작해 제공해줄 수 있어서 기대됩니다."

▲강 대표는 최근 정보사각지대에 있는 시각장애 여성을 대상으로 '나에게 맞는 월경컵 찾기'를 진행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배리어프리 콘텐츠가 대중화되어야 할 텐데요.

"대중화되면 서로 불편함 없이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잖아요. 도움이 때로는 '부담'이 되기도 해요. 중도실명자는 더더욱 그렇고요. 중도실명자는 그전엔 보였던 게 보이지 않아 도움을 요청할 때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어요. 유통기한이 점자로 찍혀 있거나 음성으로 알 수 있는 무언가 있다면, 그런 환경이 마련되고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있어서 시각장애인을 대하는 행동이 자연스러워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선천적 시각장애인은 10%도 되지 않아요. 나머지는 병이나 사고로 시각장애인이 됩니다. 시각장애인이 활동하는 모습이 더 많이 드러나야 하고 더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비장애인들이 시각장애인의 존재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거든요. 스포츠 중계를 할 때도 해설위원이든 캐스터든 평소 하던 것에서 조금만 더해서 그림 그려지듯 설명해주실 테니까요.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중계 때 감탄만 연발하고 누가 어떻게 했다는 건 설명해주지 않아서 아쉬웠거든요. 설명만 보태도 화면해설을 따로 제작할 필요가 없어져요."

- 최근 시각장애 여성을 대상으로 '나에게 맞는 월경컵 찾기' 행사를 진행하셨죠.

"시각장애인은 정보사각지대에 있습니다. 월경용품 사용에 있어서 시각장애 여성의 경우 정보 습득의 어려움이 있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특히 '전맹'은 더욱 얻기 힘든 정보들이라 '전맹'인 여성분들이 많이 신청해주셨어요. 작년에 이어 올해 총 세 차례 진행됐어요. 1:1로 자원활동가도 모집해 함께 했어요. 기존 복지관 프로그램은 무료인 것들이 많았는데, 저희는 참가비(5000원)를 받았어요. 공짜에 길들어 있는 장애인 문화를 없애고 싶은 욕심에서요. 단 얼마라도 지불하면 장애인도 수혜자가 아닌 소비자로서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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