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군산의 夏②] GM·현대重 떠나자 매출 '뚝'…은행 대출마저 막혔다

입력 2019-07-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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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친 원청업체 의존에 발목…정부 지원도 제대로 못 받아

“도장공장 있지. 거기 지금 매물로 나와있거든? 사면 바로 납품 할 수 있어. 10억 만 좀 해줘봐.”

군산 국가산업단지 A사의 2층 사무실. 김모 부사장이 현장조사를 나온 은행 이모 팀장의 등을 툭툭 치며 말한다. 하루이틀 아니라는 듯 이 팀장은 한숨을 푹 쉰다. “저도 해주고야 싶죠. 근데 명분이 있어야지. 거래처 있다고 다 되나요. 얼마 빌려주면 얼마만큼 수익을 낼 수 있겠다, 이런 청사진을 보여줘야 되는데.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있어요?” 김모 부사장은 우물쭈물 답을 못한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이대로는 답이 없어.”

현대중공업과 한국GM의 갑작스러운 파산은 이 두 원청업체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돈을 벌어온 수많은 하청업체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게’ 된 협력사들은 거대 기업이 남긴 텅 빈 부지만을 바라보며 경영난에 빠졌다.

▲군산 국가산업단지의 텅 빈 부지. 녹슨 철책 뒤로 잡초가 무성하다.(군산 = 김벼리 기자 kimstar1215@)

◇ 원청 의존 높은 협력사, 이미 도산…“현대중공업 돌아와야” 기약없는 희망 뿐 = A사는 한국GM 군산공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10여 년 넘게 오로지 한국GM의 1차 부품사로서 공장을 운영했다. A사에서 생산하는 자동차 부품들은 100% 한국GM 군산 공장으로 들어갔다. 한마디로 한국GM은 A사의 “모든 것”이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한국GM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김 부사장은 “한국GM이 공장을 폐쇄한 건 작년이라도 조짐은 그 전부터 좋지 않았다”며 “2010년 이후 점점 가동률이 떨어지더니 2014년에는 생산라인이 절반밖에 안 돌아가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뒤늦게 A사는 한국GM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시작한다. 한국GM에 ‘올인’하던 납품을 타타대우상용차와 50대 50으로 나눈 것이다. 그 이후로 한국GM 공장의 가동률은 점점 더 떨어졌고, A사의 매출도 나날이 줄어들었다.

그나마 A사는 일찌감치 위기를 느끼고 대안을 찾은 경우다. 김 부사장은 “우리는 그나마 GM공장이 가동을 중단하기 전에 추가 납품처를 확보해 이정도라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GM 의존률이 70~100% 됐던 곳들은 이미 다 문을 닫은 상태”라고 했다.

▲오후 2시께 텅 빈 군산국가산업단지 도로. 업황이 한창 좋을 때는 이 도로가 화물차로 가득했다.(군산 = 김벼리 기자 kimstar1215@)

김 부사장은 정부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그는 “정부가 지원하는 걸 실제로 보면 답답할 노릇”이라며 “예를 들어 GM이랑 얼마나 오래, 깊이 거래해 왔는지 등을 따지지 않고 그저 거래한 내역서, 명세표만 갖고가면 지원해주기 십상이다. 업체에 직접 가보지도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지적했다.

현대중공업의 사외 협력업체였던 번영중공업과 사내협력사 B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08년 설립된 번영중공업은 2009년 2월 현대중공업의 절단·성형 1차 협력사로 등록된 뒤 10여년 간 현대중공업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군산조선소가 폐쇄된 이후 2년 반 동안 번영중공업이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받은 일감 수는 ‘0건’이었다.

박건정 번영중공업 고문은 “지금 군산에 있는 87개 협력사들의 업무는 전적으로 현대중공업에 의존했다”며 “(조선소 폐쇄 이후) 산업단지 내부나 목포나 울산이나 평택, 충청도 등 외부에서 하나둘씩 수주해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군산조선소의 가동률은 20~30% 수준이다. 직원 10명 중 8명은 공장을 떠났다. 2015~2016년 당시 80억 원 정도였던 연매출은 8억 원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김광중 번영중공업 대표가 건설사에 납품하는 제품을 제작하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군산 = 김보름 기자 fullmoon@)

B사는 군산조선소 안에 있던 사내협력사였다. 군산조선소가 문을 닫은 뒤 B사도 덩달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조선소 밖의 공장을 빌려 물건을 만들고 있다. B사의 김모 사장은 “조선소 폐쇄한 뒤 공장에 있던 사무용품만 갖고 나왔다”며 “지금은 밖의 공장을 임대해서 신재생에너지 관련 사업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한창 때 30억 원이었던 매출은 3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김 사장은 “작년까지는 그래도 좀 돌아갔는데 올해는 거의 못하고 있다”며 “은행 대출도 막혀있다”고 토로했다.

군산조선소의 부활은 힘들다는 것이 산단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그럼에도 협력사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좀처럼 놓지 못한다. 박 고문은 “(군산조선소의) 재가동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며 “시한은 얘기 안했지만 1조 원 들여 만든 군산조선소를 그냥 내버려 두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언젠가는 가동하지 않겠냐는 희망”을 품고 있다고 밝혔다.

▲번영중공업 내부 모습(군산 = 김보름 기자 fullmoon@)

◇ “설마 망하겠어”가 발목 잡아…기술개발, 거래처 다변화가 생존의 ‘열쇠’ = “기술력이 없으면 죽는다. 이게 현대중공업이나 한국GM 사태의 교훈입니다.” 10여 년간 군산 국가산업단지 업체들과 거래를 해온 한 은행 관계자의 말이다. 독자적 생존을 위한 노력 대신 원청업체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협력업체의 안일한 경영도 군산 사태의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다.

그는 “현대중공업이나 한국GM 협력사 모두 원청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독자적 기술을 개발하거나, 납품처를 다변화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라며 “‘설마 망하겠어’라는 태도가 협력사들의 발목을 잡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카라 공장 전경. “해보자! 하면 된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걸려있다.(군산 = 김벼리 기자 kimstar1215@)

“해보자! 하면 된다!” 자동차 부품 도장(페인트) 업체 카라 공장의 파란 외벽에는 이런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쌍용차와 한국GM을 중심으로 납품을 해온 카라 또한 한국GM 공장 폐쇄의 직격탄을 맞았다. 2017년 34억 원이었던 매출액이 1년 새 15억 원으로 반토막났다. 전광일 카라 사장은 “GM 폐쇄 이후 작년 12월까지 매출 확 줄었다”며 “이미 5년 전부터 GM이 안 좋아지면서 매출은 계속 악화해왔다”고 말했다. 혹독한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2017년 40명가량이었던 직원을 지난해 한국GM이 폐쇄된 5월 19명으로 줄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 분위기는 반전됐다. 지난해 12월 현대·기아자동차의 한국서비스품질우수기업(SQ)인증을 취득했기 때문이다. 이후 카라는 쌍용차에 더해 현대차, 기아차뿐만 아니라 러시아 업체까지 매출처를 다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윤이 별로 남지 않았던 사출(플라스틱 부품 제조) 부분은 과감히 접고 도장만 하기 시작한 것도 주효했다.

1억 원 중반대로 떨어졌던 월매출은 6월 현재 3억 원으로 올라섰다. 직원도 다시 40명까지 늘린 상태다. 전 사장은 “한국GM 공장에 전기차 생산 라인이 들어와도 문제는 없다”며 “원청 입장에서도 굳이 먼 곳에 도장작업을 맡기려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광일 카라 사장이 도장한 자동차 부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군산 = 김벼리 기자 kimstar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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