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미숙의 참견] 저는 ‘분석화학자’입니다

건강한 삶, 수명 연장과 직결된 의료 분야에서는 환자의 혈액·소변 등의 시료 분석, 특수한 병에 걸린 환자의 혈액 및 소변 속 주요 성분 모니터링, 약품 대사물 분석, 환자 치료약의 순환 정도 확인을 임상분석자가 행하고 있다. 또한 소비자 및 환경 보호를 위한 식품 및 음료수 분석, 환경오염 조사 등을 위한 공공 분석 및 범죄 수사, 식품, 주류, 금 제품 등을 포함하는 수출·입물 분석, 흙 속의 영양분 분석, 동식물에 해를 끼치는 유해물질 수준 조사 등 생활 속 분석화학자들이 수행하는 업무는 매우 다양하고 중요하다.

2월까지 근무했던 정부출연연구소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했던 일은 ‘분석 커뮤니케이터’ 역할이었다. 분석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임무는 기업과 연구자들이 직접 행하기 어려운 물질 분석에 대하여 그 방법을 설명하고, 여러 가지 분석장비를 사용하여 시료에 대한 종합적인 특성 분석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해석하여 제공해 주는 것이다. 몸에 문제가 생기면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치료를 받듯이 대학 및 기업의 연구자들이 연구개발 수행 중 문제가 생길 때 이 일을 해결해 주는 의사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이를 통해 연구자들의 효율적인 연구 진행에 도움을 주었으며, 실제 기업의 제품생산 공정상 문제점이나 생산품 수출 시 제기되는 하자 원인 규명을 위하여 제품의 성분이나 불순물 등을 분석하고, 문헌 조사 등을 통해 해석된 결과를 제공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하였다. 물론, 직접 분석 및 그 결과를 제공할 수 없는 경우에는 분석이 가능한 전문기관을 연결시켜 준다. 실제 중소기업의 경우 고가 장비와 이를 운영할 수 있는 인력을 운용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이를 공공기관에서 지원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실감하기도 하였다.

분석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맡으면서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사례 중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일은 최근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미세플라스틱 분석 건이다. 필자는 화학 전공자로서 물질의 특성, 각 화학종의 확인 및 정량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는 분석화학자로 살아왔으나, 실제 환경오염 물질과 그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그리 예민하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우리 식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소금 중에 잔류하는 미세플라스틱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의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깊이 느끼게 되었으며, 일회용품의 사용 자제를 조금씩 실천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기업에서 수출한 바닥재의 하자 원인을 규명했던 일, 중소기업에서 제품 생산 시 발생한 부산물이 의외로 또 다른 목적에 사용될 수 있는 유용한 물질임을 화학분석을 통하여 밝혀낸 것도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기업의 만족도도 크게 증가함을 체험하였다.

생활에 수반되는 다양한 물질에 대한 정확하고 신속한 분석 결과 제공은 인간 삶의 질 제고뿐만 아니라 기업 경쟁력 강화와 업무 효율성 증대에도 대단히 중요하다. 정확한 분석 결과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고가의 성능 좋은 분석장비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분석장비·기계 등을 조작·운전하는 사람, 즉 오퍼레이터보다는 분석 결과를 잘 해석하여 정확한 데이터를 필요한 곳에 신속하게 제공해 줄 수 있는 분석전문가의 역할이 우선이다. 종합적인 화학 분석과 해석을 통하여 기업이나 수요자가 직접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기술과 연구·소통의 전문성을 고루 갖춘 분석 커뮤니케이터의 육성을 통해 보다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이 보장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