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대한 냉철한 이성이 필요하다

입력 2019-05-1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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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 한양대 디테크융합연구소 연구교수(前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정책위 부의장)

근래 뉴스의 가장 중심에 있었던 이슈들은 공통점이 있다. 18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참여한 ‘자유한국당 해산’ 사례와 같이 이슈들 모두가 청와대의 국민청원게시판에 등장한 청원이라는 점이다. 국민들의 의견을 직접 듣겠다는 취지에서 이번 정부가 도입한 국민청원게시판은 사회 각계의 다양한 요청들이 등록되면서 그동안 잘 몰랐던 내용들을 알게 되는 정보창의 역할과 더불어 사안에 따른 여론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얼마 전 동물국회 사태가 있은 후 여러 청원들이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새롭게 올라왔는데, 청원을 보면서 내용의 타당성이나 합리성 여부를 떠나 이번 국회에서 일어난 망동에 국민들이 얼마나 분노하고 실망했는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오죽했으면 국민들이 직접 저렇게 처벌을 요구할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들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청원의 당사자들인 국회의원 중 일부가 해당 청원에 대해 극렬하게 평가절하하는 태도를 보니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일에 대해서도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의 정서를 현명하게 읽을 줄 아는 지혜를 갖추기 바랄 뿐이다.

그런데 작금의 국민청원게시판에 나타나는 현상을 냉정하게 바라보면 적지 않은 우려가 생기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청원의 내용들이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법에 부합하지 않는 월권을 재촉하는 것들이어서 자칫 국민청원게시판이 희화화되거나 실효성에 대한 회의로 인해 본래 의미가 반감될 수 있을 것 같은 걱정이 들기 때문이다.

국가에 대한 청원은 분명히 헌법에서 부여한 국민의 기본권이다. 게다가 대통령이 직접 국민의 요청을 듣겠다고 천명까지 하고 나섰기에 청원이 갖는 특별한 의미는 더욱 남다르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법치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정상적인 삶이 모두 법에 위배되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청원 역시 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현역 국회의원에 대한 삭발을 촉구하거나 바르지 않은 언행을 한 전 야당 대표에게 형사 처분을 위한 조치를 취하라는 요구는 청와대에 대한 청원으로 적절하지 않다. 더욱이 청와대는 제1야당을 해산시킬 수 있는 권한도 없을뿐더러 해산을 위한 법리적 근거도 명확하지 않다. 만일 청와대가 이러한 사안을 처리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올린 청원이라면 국민이 정당하게 선출한 민주 정부인 문재인 정부가 마치 무소불위의 초법적 권력을 휘두르는 정권처럼 보일 수도 있으므로 더 문제다.

물론 이러한 우려는 기우일 가능성이 높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음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당사자들에게 보낸 것이고, 민의를 잘 살펴 새기라는 의미에서 청원을 제기한 것이다. 그렇지만 국민청원게시판의 무용론을 제기하는 일각의 주장을 상쇄시키고 국민청원게시판의 원래 의미가 더욱 빛을 발하게 하려면 청원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최대한 이성적 논리와 법리적 근거를 마련하여 청원을 제기해야 할 것이다. 또한 청와대 역시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청원 중 청와대의 업무 범주에 해당되지 않는 사안이나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청원에 대해서는 가능한 빠르게 답변하여 매듭을 짓고, 처리될 수 있는 일이라면 관련 부처로 신속히 인계해주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당연히 분노할 일이더라도 공식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움직여야 할 경우 그 정서적 분노를 최대한 가라앉힐 필요가 있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또한 감정의 표출은 절제된 이성이 근간이 될 때 보다 실효성을 가지며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 따라서 냉철한 판단과 사고에 입각하여 국민청원게시판을 활용함으로써 청원의 진의가 왜곡되지 않고 정부가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받들어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소한 몇 가지 논란거리를 가지고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지 않았으면 한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지 않는 것처럼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생생히 듣는 것보다 우선해야 할 일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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