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현의 경제 왈가왈부①] 1000원이 1원으로…리디노미네이션 논란, 뭐길래

입력 2019-04-29 05:00수정 2019-04-2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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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 총재 언급에 촉발, 내달 13일 국회토론회도..경제상황 엄중 지금 논할때인가 비판도

“분명히 저희들은 리디노미네이션을 그야말로 논의를 한번 할 때가 됐다고 생각은 합니다.”

지난달 2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한국은행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주열 한은 총재의 이 한마디가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화폐 단위 절하) 논란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한은 국정감사 등 기회가 될 만한 자리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은 그야말로 단골메뉴로 나오던 질문이었다. 그때마다 한은 총재는 원론적 답변에 그치면서 잠시 스치는 이슈 정도에 불과했었다.

이같은 답변을 이끌어낸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내친김에 국회 토론회까지 준비 중이다. 다음달 13일로 예정된 토론회에서 찬반양론 의견을 청취한 후 향후 계획을 세우겠다는 입장이다.

◇리디노미네이션 장단점은 = 리디노미네이션은 한마디로 1000원을 1원(혹은 환)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이 경우 10만 원은 100원이, 100만 원은 1000원이, 1억 원은 10만 원이 된다.

한은은 리디노미네이션의 장점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우선 거래 기장상 편의를 도모할 수 있다. 단위가 커지게 되면 숫자 ‘0’을 붙이는 일이 많아져 번거로움은 물론, 자칫 실수가 발생할 수 있다.

26일 현재 1달러당 원화환율은 1161.0원으로 표기 중이다. 이같은 네 자릿수 환율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단위수가 큰 편이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달러 표기에 1000단위가 넘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환율은 경제성장과 인플레를 반영하는 수치다. 한은도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통화단위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밖에도 1300원 하는 새우깡이 1.3원이 된다면 단위당 구매력이 커지는 효과도 있다.

반면 단점도 많다. 당장 새로운 단위에 적응하려면 불편함이 크다. 변화를 감당하기 어렵다. 또, 갑자기 값이 싸게 보일 수 있다. 5억 원하던 아파트값이 50만 원이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가치를 끌어올려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 즉, 5억 원짜리가 5억5000만 원이 되는 것보다 50만 원짜리가 55만원이 되면 저항이 덜하기 때문이다. 한은은 이를 화폐환상 내지 화폐착시라 부른다.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한 나라는 2005년 이후 아홉 국가가 있다. 다만 경제 선진국보다는 후진국이 많다. 그나마 2005년 터키 사례가 모범 사례로 꼽힌다. 시행과정과 시행 후 각종 거시경제지표가 안정세를 보이는 등 금융·경제상 별다른 혼란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은은 그 배경으로 전 국민적 합의와 이를 바탕으로 중앙은행을 비롯해 범 국가적으로 일관되고 강력하게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경제상황 엄중,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을까 = 비판도 만만치 않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전 국민경제자문위원회 부의장)은 이달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화폐개혁? 이런 헛소리가 왜 나오나”라며 일갈했다. 그는 “화폐개혁의 보편적 목적은 숨어있는 자금 찾기와 인플레를 잡기 위한 것”이라며 “그러나 그 과정에서 금융시장의 혼란과 경제적 불확실성 증대에 따른 실물시장의 위축, 부동산·귀금속·외환 등으로의 자금이동 등 부작용이 발생한다. 현재 우리 경제상황을 볼 때 화폐개혁은 얻을 것은 별로 없고 잃을 것은 너무 많은 발상이다. 정치적으로는 이슈 블랙홀이 될 수 있고, 경제적으로는 경제위기 초래의 Black Elephant(검은 코끼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꼬집었다.

‘검은 코끼리’란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창안한 조어로 ‘검은 백조(Black Swan)’와 ‘방 안의 코끼리’를 합성한 말이다. 검은 백조란 백조가 검은색이 될 확률처럼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일이 실제 벌어져 큰 충격을 주는 사건을, 방 안의 코끼리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크고 무거운 문제를 비유하는 말이다. 즉, 검은 코끼리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사건이란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해 해결하지 않는 문제를 가리킨다.

1분기(1~3월)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 경제상황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리디노미네이션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분위기다. 논란이 확산하자 이주열 총재도 사실상 리디노미네이션 추진을 없었던 일로 돌려세웠다.

이 총재는 18일 4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리디노미네이션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고, 또 가까운 시일 내에 추진할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대효과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부작용도 많다. 때문에 그야말로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한은 입장에서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매우 엄중한 상황이다 라고 보고 있다. 이렇게 엄중한 경제현실을 고려할 때 지금은 리디노미네이션보다 우리 경제의 활력과 생산성 제고를 위해 집중해야 할 일이 훨씬 많고 중요한 때”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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