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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오토 인사이드] 디자인 고정관념 깬 ‘세그먼트 버스터’ 도로 누빈다
입력 2019-04-08 18:14

2010년 현대차 6세대 쏘나타(YF)가 등장했다. 당시 새 디자인을 공개한 직후부터 온라인에서는 거센 디자인 논란이 시작됐다.

5세대였던 전작(前作) NF쏘나타는 네모반듯한 균형미가 일품이었다. 남성과 여성, 젊은층과 장년층 등 누가 봐도 멋진 모습이었다. 여기에 글로벌 수준에 올라선 품질과 뛰어난 안전성, 그리고 오래 타도 잔고장이 없었던 내구성까지 여러 면에서 호평을 받았다.

반면 새로 등장했던 YF쏘나타는 디자인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렸었다. 날카롭게 그릴 자리를 파고든 전조등과 울룩불룩 솟구친 보디 옆라인 등 파격적인 디자인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괴상한 눈매와 앞 그릴을 두고 “마치 ‘벌레’를 닮았다”며 ‘버그 룩(Bug look)’이라는 폄훼도 이어졌다.

◇획기적 디자인 앞세운 히트작 YF쏘나타 =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사정은 달랐다. YF쏘나타는 사전계약 첫날 1만2000대를 돌파했다. 전작 NF쏘나타(7000여 대)보다 2배 가까이 많은 사전계약이었다.

이후에도 후속 쏘나타들은 이 기록은 깨지 못했다. 7세대 LF쏘나타는 너무 심심한 디자인 탓에 사전계약 1만 대 돌파까지 3일이나 걸렸다. 최근 등장한 8세대 쏘나타 역시 파격적인 디자인을 갖췄음에도 이 기록을 세우는 데 5일이 걸렸다.

최근 중형 세단 수요가 빠르게 준대형 세단으로 옮겨간 것도 이유다. 나아가 평범한 중형 세단보다 실용성이 높은 SUV를 찾는 고객이 많아졌다. 그만큼 중형 세단의 인기가 예전에 비해 감소했다는 뜻이다.

시대 상황을 감안해도 6세대 YF쏘나타의 디자인은 성공적이었다. 중형 세단의 보편타당한 범주를 벗어난, 당시 기준으로 꽤 과격한 디자인이 시장에서 주효했다는 뜻이다.

◇장르 파괴 트렌드 속에서 과격한 디자인 등장 = 이처럼 21세기 들어 자동차 디자인은 전통적인 영역을 벗어나 독창적인 디자인이 인기를 끌고 있다.

세단과 해치백, SUV 등으로 나뉘었던 단순한 자동차 디자인은 스포츠카를 닮은 SUV와 SUV 기능을 갖춘 껑충한 세단, 세단과 스포츠카를 한데 모은 스포츠 세단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 중이다.

이들은 2가지 이상의 장르를 하나의 자동차에 엮었다는 의미의 ‘장르 파괴자’, 이른바 세그먼트 버스터(segment buster)로 불린다.

이처럼 하나의 범주를 벗어난 다양한 디자인의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트렌드 변화도 시작됐다.남들과 비슷비슷한 디자인은 쉽게 묻혀 지나가기 일쑤였다. 반대로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디자인들이 속속 시장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시작점은 독일차였다. 독일차는 기능을 강조한 직선 기조를 앞세웠다. 이른바 ‘바우하우스’ 디자인이었다. 폭스바겐과 아우디 등이 대표적인데, 어디를 봐도 상자 같은 네모반듯한 디자인을 앞세워 잔고장 없는, 철옹성 같은 품질을 제일주의로 내세웠다.반면 2004년 아우디가 내세운 ‘싱글 프레임 그릴’은 범퍼까지 영역을 넓힌 그릴 디자인 유행을 끌어냈다.

글로벌 주요 자동차 메이커들도 하나둘 과격한 모습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풍조가 그로테스크(grotesque)다.

◇과격하고 공격적인 디자인이 시장서 주효 = 그로테스크는 사전적 의미로 ‘괴기한 것, 극도로 부자연한 것, 흉측하고 우스꽝스러운 것’ 등을 뜻한다.

애초 그로테스코(grotesco)란 이태리어에서 파생된 말인데, 보통의 그림에는 어울리지 않는 장소를 장식하기 위한 색다른 의장(意匠)을 가리킨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괴기한 것, 극도로 부자연한 것, 흉측하고 우스꽝스러운 것’ 등을 형용하는 말로 사용된다.

이처럼 과격한 디자인의 그로테스크 디자인은 일반 양산차 브랜드가 쉽게 도전할 수 없는 분야다. 한 번 디자인을 내놓으면 짧게는 5년, 적어도 7년은 같은 디자인을 유지해야 한다. 자칫 디자인 하나가 실패하면 회사가 휘청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서둘러 부분변경 모델을 내놓아 만회에 나서야 한다.

◇성난 디자인 팰리세이드, 과격한 얼굴의 새 모하비 = 2000년대 초반까지 국산차 디자인은 늘 폄훼됐다. 세련미가 넘치고 균형미가 도드라진 유럽차와 비교당하기 일쑤였다.

자동차 디자이너(요즘은 스타일러라고 부른다)들은 분통이 터졌다. 마음만 먹으면 하늘을 날아가는 듯한 멋진 디자인을 선보일 수 있고, 충분히 그럴 만한 재능도 갖췄다.

그런데 이들은 ‘끼’를 짓눌러야 하는 사명도 지녔다. 이들에게 주어진 최대의 숙제는 ‘멋진 차’를 디자인하는 게 아닌, ‘잘 팔릴 차’를 디자인하는 일이다.

이후 해외에서 디자인 공부를 마친 인재들이 속속 우리나라 메이커에 입사하면서 국산차 디자인도 글로벌 수준으로 빠르게 진보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른바 과격한 디자인을 앞세운 차는 개성을 담은 소수의 시장을 노린 니치(niche) 브랜드에서 가능한 일이다.

자동차 디자인을 평가할 때에는 지극히 주관적인 취향이 반영된다. 수많은 평론가들이 디자인을 폄훼해도 “내 마음에 든다”면 그 디자인은 백점만점이다.

최근 등장한 현대차 팰리세이드는 초기 우려를 씻어내고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반기에 등장할, 서울모터쇼에 공개된 기아차의 대형 SUV 모하비 신형 디자인도 낯설지만 호감을 끌고 있다.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서는 3% 법칙이 존재한다. 100명의 평가단 가운데 3%만 호평한다면 일단 ‘대성공’이다. 한 해 9000만 대의 자동차가 팔리는 것을 감안하면 무려 270만 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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