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ㆍ영어테스트 없이 면접 직행...수상한 승무원 채용 과정

입력 2019-03-27 05:00수정 2019-03-2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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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하드항공 채용 과정에서 특정 학원 출신 응시자들 서류, 영어 테스트 면제 의혹

외항사 승무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유명 승무원 교육 학원과 채용 대행사 간 유착 의혹이 포착됐다. 외항사 채용 비리가 수면으로 드러나면서 채용 취소 논란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26일 이투데이의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승무원 학원인 ‘ANC승무원학원(이하 ANC)’이 외국계 채용 대행기관인 ‘멕티(Mectti)’와 결탁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에티하드항공 승무원 채용 응시자들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알려졌다. ANC의 수강생 20명가량이 서류, 영어 테스트를 건너뛰고 바로 면접을 봤다는 내용이다.

박모 ANC 부사장은 자사 수강생과 관계자들만 있는 단체 카톡방에서 “메일 받은 분들은 영어 테스트 없이 바로 면접을 보셔도 된다는 뜻”이라며 “누가 물어보면, 여러분 모두 영어 테스트를 본 것으로 말해 달라”고 했다. 이어 “20일 면접이 진행되고 합격, 불합격하는 분들이 생길 텐데, 안 좋은 결과를 받았다고 해서 채용 과정을 외부에 말하지 말아 달라”며 “저도 문제가 되겠지만, 합격한 분들까지 취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단체 카톡방에 있던 수강생 중 20여 명은 서류와 영어 테스트 없이 1차 면접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단체 카톡방에는 초대됐으나 20여 명 안에는 들지 못한 수강생 A 씨는 박 부사장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캡처해 23일 저녁 에티하드항공 승무원 지원자들이 모인 오픈 카톡방에 올렸다.

A 씨에 따르면 ANC는 학원 수강생 중 에티하드항공 지원자들을 모아 채용 대비 명목으로 금액을 받았다.

A 씨는 “서류 지원자는 7000명, 1차 면접은 1000명, 최종면접은 200명 가량”이라고 설명했다.

1000명이 모인 1차 면접은 20일 하루 동안 진행됐다. 응시자들은 1차 면접에 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1차 면접을 본 B 씨은 “1000명이 면접을 보는데 면접관은 한 명이었다”며 “이 때문에 마지막 조 시간이 원래 오후 6시 반으로 예정됐는데 실제 끝난 시간은 다음 날 새벽 1시 반이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면접관 1명, 암리치(발뒤꿈치를 들고 팔을 뻗어서 닿는 높이) 측정인 1명, 안내하는 사람 1명 총 3명이 1000명의 면접을 주관했다. 그런데 면접 전에 박 부사장은 25명이 있는 단체 카톡방에서 “멕티 쪽에서 오는 인원은 3명뿐”이라며 “한 명이 모든 면접을 주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면접 전에 이미 정보를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아랍에미리트(UAE) 국영 항공사인 에티하드항공의 한국인 승무원 채용은 지난달 외국계 채용 대행기관 멕티를 통해 시작됐다. 에티하드는 공고를 내면서 “승무원 채용은 그 어떤 사설 학원과도 연계돼 있지 않으며, 에티하드와 채용 대행사는 어떠한 금전적 요구도 하지 않음을 명심해 달라”고 공지했다. 채용은 크게 4단계로 서류, 온라인 영어 테스트, 1차 면접, 최종면접으로 구성돼 있다. 최종면접은 이틀에 걸쳐 서울 강남구 르메르디앙 호텔에서 진행됐다.

전날 최종면접장에서 만난 에티하드항공 관계자는 “ANC를 알지 못한다”고 답했고, 멕티 관계자 역시 ANC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멕티 관계자는 “면접이 한창 진행 중이어서 길게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며 “자세한 질문은 이메일로 해 달라”고 했다. 에티하드항공과 멕티에 모두 이메일로 답변을 요청했으나 이날까지 답을 받지 못했다. 멕티는 외국계 채용 대행사로 한국 지부는 없으며 아시아 지부는 태국 방콕에 있다.

ANC는 국내에서 5개 지점을 운영하는 유명 승무원 학원이다. 이 학원은 ‘30년 전통’을 강조하며 30년간 많은 합격자를 배출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박 부사장은 “국회의원, 경찰도 아닌 일개 학원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며 “우리는 오히려 ‘을’의 처지”라고 해명했다. 이어 “명예훼손, 영업방해, 허위사실 유포로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라 더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A 씨는 오픈 카톡방에서 “에티하드 면접에 온 1000명, 아니 서류지원자 7000명까지 모두가 학원생을 위한 들러리”라며 “합격자는 비밀리에 정해져 있었다”고 밝혔다.

오픈 카톡방에서 이 사실을 접한 한 응시자는 “일반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됐는데 1차 면접을 보려고 어렵게 연차를 써 지방에서 서울까지 올라왔다”며 “내부 고발자 말대로라면 합격자가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인데, 눈물만 난다”고 토로했다.

한편 이 같은 채용 유착 의혹이 사실이라면 형사법상 업무방해, 배임, 사기 등의 가능성이 있다.

쎈법률사무소의 노승휴 변호사는 “특정 학원 출신 응시자에게 서류, 영어 테스트를 면제하는 특혜를 줘 항공사의 승무원 채용 업무를 방해한 점에서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고, 특정 학원 출신 응시자에 특혜를 줘서 채용 대행사와 해당 학원이 금전적 이익을 얻었다면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조건 서류와 영어 테스트를 통과할 수 없음에도 이를 속여 수강생으로부터 금전을 받아낸 점에서 사기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채용 취소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채용 조건에 미달하는데 특혜로 채용됐다면 채용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며 “채용 조건에 해당하더라도, 응시자 본인이 부정한 방법으로 채용된 것을 인지했던 이상, 채용 취소가 법적으로 정당하다고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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