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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신(新)바람… '권위' 벗고 '실용' 입은 X세대 총수들
입력 2019-03-03 16:55
삼성 이재용·현대차 정의선·LG 구광모 등 자유로운 복장, 과감한 투자, 실리적 동맹 추구

▲'X세대' 총수들은 아버지 세대의 권위적인 모습을 버리고, 직원들과 편하게 소통하는 친근한 이미지를 추구한다. 양복 대신 청바지를 입고 공식 행사에 나서며, 구내 식당에서 젊은 직원과의 사진촬영에도 흔쾌히 응한다.
대한민국 재계가 급변하고 있다. 중심에는 이른바 1968년을 전후해서 태어난 ‘X세대’ 총수들이 있다.

경제적 풍요 속에서 성장하고, 새로운 문화를 경험해 개성 강한 신세대로 불렸던 X세대 특징이 이들 경영 방식에도 강하게 묻어나고 있다. 권위보다는 실용을 중시하고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혁신적인 기업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68년생),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70년생), 구광모 LG 회장(78년생),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70년생),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75년생), 허세홍 GS칼텍스 사장(69년생), 조현준 효성 회장(68년생),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68년생),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부회장(70년생),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72년생) 등이 주인공이다.

◇ 양복 벗고 청바지 입는다=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은 3월부터 오랜 관행을 깨고 전 직원의 ‘노타이·청바지’자율 복장을 허용키로 했다. 앞서 정 부회장은 2017년에도 코나 출시 행사장에 청바지를 입고 등장하기도 했다.

구광모 LG 회장도 자율적인 복장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주2회 실시하던 ‘캐주얼 데이’를 주5일로 확대했으며, 올 새해 모임에는 모든 임직원이 형식을 타파하고 캐주얼 복장으로 참석했다.

또 LG그룹은 매년 4차례 진행하던 분기별 임원 세미나를 월례포럼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재계 관계자는 “전문가 강연과 임원 토론을 통해 학습의 깊이를 더하자는 취지에 따른 것으로, 구 회장이 취임 후 보여온 소탈하고 실용적인 행보와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구 회장은 그룹 내에서 자신을 지칭하는 명칭을 ‘회장’이 아닌 ‘대표’로 해달라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하는가 하면 올해 시무식을 ‘LG사이언스파크’에서 개최하면서 임원뿐만 아니라 생산직, 연구직 등 다양한 직무의 직원 700여 명을 초청해 눈길을 끌었다.

◇ 업무효율 높이고 소통은 활발히=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효율적인 경영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해외사업을 직접 챙기며 회사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그 결과, 싱가포르·홍콩·마카오 등 공항에 면세점을 진출시키며 업계 최초로 해외 매출 1조 원 시대를 열었다.

조현준 효성 회장도 취임한 이후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조 회장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격식 없는 토론을 하는 것은 물론 사업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실무자의 의견을 듣는 것을 선호한다. SNS나 메신저를 통해서도 보고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도 유연한 조직 문화를 직원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임직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역시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 과거보단 훨씬 과감한 투자 결단= 기존에는 조심스러웠던 투자가 ‘통 큰 미래 투자’로 변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최근 향후 5년간 현대차의 연구·개발(R&D)과 미래 기술 분야에 총 45조3000억 원을 투자키로 했다.

이는 연 평균 9조 원에 달하는 규모로, 과거 5년 연평균 투자금(5조7000억 원) 대비 58% 이상 늘어난 수치다. 현대차가 구체적인 수익성 목표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올해 삼성전자 창립 50주년에 앞서 지난해 8월, 오는 2021년까지 18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공격적인 경영계획을 제시했다. ‘인공지능(AI), 5G(5세대 이동통신), 바이오, 등 미래 성장사업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현금 100조 원을 돌파하며 실탄을 충분히 확보한 이 부회장은 올해부터 인수합병(M&A)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큰 세계 3위 파운드리(칩 위탁생산) 업체인 미국 글로벌파운드리의 유력한 인수 후보도 삼성전자다.

한국타이어 역시 글로벌 M&A을 통해 그룹 성장동력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경영 전면에 나선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부회장과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이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진두지휘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독일 중남부 지역에서 44개의 매장을 운영 중인 타이어 전문 유통점 라이펜-뮬러를 인수한 게 주요 사례다. 이 밖에 정용진 부회장도 미국 현지 유통기업인 ‘굿푸드 홀딩스’를 약 3075억 원에 인수했다.

◇ 불편한 경쟁보단 실리적 동맹, 순혈주의도 타파= X세대 총수들은 그룹 간 협업에도 적극적이다. 특히 삼성과 현대차의 경우, 이재용·정의선 시대가 도래하면서 과거에 보기 힘들었던 협업 움직임도 보인다.

최근에는 자동차 시장에서 과거 앙금이 있던 현대차와 삼성 간 전기차용 배터리 등 협업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해에는 삼성전자와 기아차가 자율주행차 기술 제휴 마케팅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허세홍 GS칼텍스 사장은 취임 이후 기존 사업을 강화하면서도 4차 산업 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활발한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월 LG전자와 손잡고 전기차 시대를 대비한 ‘미래형 주유소’를 만들기로 했다. 또 롯데렌탈의 자회사인 카셰어링 그린카에는 총 350억 원의 전략적 투자를 하며 카셰어링 시장에서 새로운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그룹 정통을 따르기보단 인재를 우선시하는 것도 X세대 총수들의 변화한 모습이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말 사장단·임원 인사에서 과감한 세대교체를 감행했다.

특히 중국시장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20여 명에 달하는 임원을 대폭 물갈이했으며, 연구개발본부장 자리에 최초로 외국인 임원을 앉혔다.

구광모 회장 역시 작년 11월 초 미국의 혁신 기업 3M의 신학철 수석부회장을 LG화학 부회장으로 영입하는 등 그룹 순혈주의를 깨고 과감한 인재 영입에 나섰다.

재계 관계자는 “X세대의 특징은 기존의 가치나 관습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라며 “이들 세대가 그룹을 이끌면서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파격적인 행보와 실용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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