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모호한 ‘통상임금 신의칙’ 기준...하급심 혼란 가중될 듯

입력 2019-02-1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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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신중하고 엄격히 따져야"…5년간 순이익, 인건비 비중 고려 진일보 평가도

14일 대법원의 ‘시영운수 통상임금’ 판결은 여전히 ‘신의칙’(信義則)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른바 ‘통상임금 신의칙’은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갑을오토텍 사건을 통해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되 기업의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할 경우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을 달면서 등장했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게 되면 근로자는 수당이나 퇴직금 등이 늘어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다. 이 때문에 통상임금 신의칙은 이후 5년간 법조계는 물론 경영계와 노동계의 뜨거운 감자로 자리했다.

통상임금 소송은 전합 판결 이후 잇따라 제기됐다. 그러나 대법원이 애초에 통상임금 신의칙 개념을 판시한 이후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아 하급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특히 ‘기업의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할 경우’라는 조건에 대해 재판부가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어 혼란은 가중됐다.

시영운수 통상임금 상고심은 이러한 배경에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시영운수 버스 운전기사 박모 씨 등 22명은 2011년도 단체협약에서 정한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추가 법정수당을 지급하라며 2013년 3월 소송을 냈다.

대법은 이를 전합에 부쳐 3년 4개월간 심리한 끝에 최근 소부(小部·대법관 4명씩 구성된 재판부)로 돌려보내 선고하기로 했다. 이미 2013년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선고한 통상임금 범위에 대한 큰 틀을 유지하면서 이번 재판은 시영운수 개별 사건으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다.

따라서 재판에서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가 중요한 쟁점이 되지 않았다. 대신 통상임금 신의칙을 적용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었다.

1, 2심은 “회사가 예상치 못한 경영상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며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반면 대법원은 시영운수의 매출액과 인건비 비중, 이익잉여금, 영업이익 흐름 등을 평가해 박 씨 등이 청구한 금액을 지급하더라도 회사 경영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해 선고 결과를 뒤집었다. 추가 지급해야 할 법정수당은 원심이 산정한 7억8000여만 원 중 소멸시효가 완성된 부분을 제외하고 4억여 원만 인정했다. 그러면서 통상임금 신의칙을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할 것을 판시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통상임금 신의칙을 판단할 기준으로 일부 재무지표를 제시했으나 일반적인 통상임금 사건에서 활용하기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노동사건 전문 변호사는 “매출액과 인건비 등은 이미 하급심에서도 비교 판단하고 있다”면서 “문제는 통상임금 신의칙을 인정하기 위해 어떤 통일된 재무지표를 활용할 것인지, 어느 수준까지가 회사를 위태롭게 하는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변호사는 “신의칙은 법관의 자의적인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이미 여러 통상임금 사건에서 재판부마다 다른 판결을 하고 있다”며 “문제제기가 꾸준히 있어온 만큼 이번 판결에서 구체적인 원칙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으나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시영운수 통상임금 판결이 종래보다 진일보했다는 긍정적인 견해도 있다.

재경지법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통상임금 사건은) 사안마다 특수성이 있는 만큼 대법원에서 구체적인 기준을 정하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전제한 뒤 “이번 판결은 임금 채권이 발생한 2013년도의 이익잉여금과 영업이익 흐름, 회사의 경영 환경 등 여러 지표를 비교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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