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오토인사이드] ‘8인승 SUV’ 팰리세이드 이전엔 왜 없었을까

입력 2018-12-03 19:25수정 2018-12-05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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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가 낳은 ‘7인승 천국’

▲글로벌 SUV 트렌드가 ‘소형과 대형’으로 양분되고 있다. 현대차 역시 국내 최초 8인승 SUV ‘팰리세이드’를 앞세워 대형 SUV 시장에 재진출한다. 정부 규제와 관계없이 시작부터 산업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한 북미 전략형 SUV다. 사진제공 현대차
국내 자동차 산업은 정부 규제를 피해가며 성장하고 있다. SUV의 경우 정부가 개발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금 제도를 바꾸고 배기가스 기준 등을 강화하면 자동차 회사도 발빠르게 새 모델을 출시했던 것.

자동차 문화가 발달하면서 다양한 차종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것이 아닌, 갖가지 규제를 피하기 위한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SUV 트렌드가 변화를 겪기도 했다. 대표적인 게 ‘7인승과 디젤’이라는 SUV의 굴레다.

◇공업 합리화 조치 해제 후 SUV 판매 증가 = 1980년대 초, 정부는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를 내렸다. 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군사정권의 서슬퍼런 칼날이 자동차 산업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 조치로 국내 자동차 회사는 분야별로 개발과 생산을 전담하게 됐다. 현대차는 소형차를 전담하게 됐고 대우차(현 한국GM)는 중형차를, 당시 기아산업(현 기아차)은 상용차 전담 메이커가 됐다. 이어 동아자동차(현 쌍용차)는 특장차, 훗날 기아산업으로 합병된 아시아자동차는 군용차를 전담했다. 당시 기아산업은 부도 직전까지 몰렸다가 이른바 ‘봉고차’로 불리는 원박스카를 개발하면서 회생하기도 했다.

▲공업합리화 조치 이후 완성차 회사들은 서둘러 5인승 SUV를 내놨다. 일본 마쓰다 기술을 바탕으로 1세대 프라이드를 생산해 재미를 본 기아산업은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담아 스포티지(1세대)를 선보인다. (사진제공=기아차)

공업 합리화 조치가 해제되면서 완성차 메이커는 차종 다양화에 나섰다. 현대차는 일본 미쓰비시 파제로를 바탕으로 갤로퍼를 내놨다. 1세대 프라이드를 내놓으며 부활한 기아산업은 냉큼 스포티지를 앞세워 SUV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쌍용차가 독점했던 SUV 시장이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한 때였다.

결국 1990년대 들어 SUV가 빠르게 증가하자 정부는 이들에게 세금 폭탄을 던졌다. 당시 SUV는 이른바 ‘전시동원차량’으로 분류됐다. 전쟁이 발발하면 네바퀴굴림 SUV를 고스란히 국가에 반납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 덕에 연간 세금은 1만 원 안팎이었다. 값싼 세금 혜택을 노리며 SUV가 증가하자 정부가 이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한 것. ‘전시동원차’ 제도를 폐지하고, SUV 세금을 승용차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당시 5인승이 대세였던 SUV는 승용차로 분류되면서 높은 세금을 물게 됐다. 반면 7인승은 승합차로 분류돼 배기량과 관계없이 연간 5만 원 안팎의 세금만 내면 됐다. 자동차 회사들은 서둘러 5인승 대신 7인승 SUV를 내놓기 시작했다. 따로 개발할 필요도 없었다. 5인승 SUV의 3열 짐공간에 2인승 좌석을 구겨 넣으면 간단하게 해결됐다.

예컨대 쌍용차 무쏘의 경우 5인승의 연간 세금은 100만 원에 육박했지만 똑같은 디자인의 7인승은 연간 세금이 5만 원 수준이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SUV는 물론 미니밴도 속속 7인승을 고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 북미에서도 7인승 SUV가 인기를 끌었지만 우리나라와 출발점은 엄연히 달랐던 셈이다.

다만 이들은 어디를 봐도 비정상이었다. 애초 개발 때부터 7인승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 세제 혜택을 얻기 위해 억지로 만든 7인승이었다. 앞뒤 무게 배분이 깨졌고, 전체적인 주행 감각도 엉망이었다.

▲정부 세제 기준이 변경되면서 쌍용차 무쏘는 5인승을 없애고 7인승을 내놓기도 했다. 100만 원에 육박했던 연간 세금은 단박에 5만 원대로 줄었다. (사진제공=쌍용차)
◇승차 정원과 엔진 종류 다양해진 SUV = 이렇게 7인승 차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정부는 다시 칼을 뺐다. 승용차 분류 기준을 5인승→7인승으로 변경하고, 승합차 기준도 9인승→11인승으로 강화했다. 9인승이 한계였던 현대차 미니밴 트라제가 단종된 것도 이때였다. 결국 경쟁력을 갖춘 기아차 카니발만 11~12인승을 내놓으며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더 이상 세금 폭탄을 피하기 어려웠던 자동차 메이커는 배기량을 낮추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엔진 배기량을 낮추는 이른바 ‘다운사이징’ 트렌드에도 부응할 수 있었다. 엔진 기술이 발달하면서 배기량을 낮췄지만 소음과 진동은 오히려 개선됐고 출력도 좋아졌다. 세금 제도를 피해다니던 자동차 회사들이 마침내 기술 개발로 이를 극복하기 시작한 셈이다.

▲팰리세이드는 애초부터 제대로 된 8인승을 염두에 둔만큼 3열 시트에 3명이 앉아도 넉넉한 공간을 갖췄다. (사진제공=현대차)
비슷한 무렵 ‘SUV=디젤’ 이라는 등식도 무너졌다. 가솔린 대비 80% 수준을 넘어선 경유 가격 탓에 가솔린 SUV도 속속 등장했다. 엔진 기술이 발달하면서 가솔린으로도 충분히 디젤의 저속 토크를 만회할 수 있게 됐다. 나아가 연비도 이전보다 크게 개선돼 덩치 큰 SUV를 끌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수입차를 중심으로 가솔린+전기모터 방식의 하이브리드도 SUV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최근 현대차가 8인승 대형 SUV 팰리세이드를 선보였다. 이제껏 7인승이 대부분이었고, 파생모델로 9인승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8인승 SUV는 팰리세이드가 국내 최초다. 규제와 관계없이 SUV 트렌드 변화에 발맞춰 개발한 새 모델이다. 한때 정부 세제에 쫓겨 어정쩡한 7인승 SUV를 내놓아야만 했던 우리 자동차 문화가 이제 본격적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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