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에 열리는 노다지 ‘카스피해’...연안 5국의 동상이몽

입력 2018-08-13 16:36수정 2018-08-14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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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해 동-서 가로지를 파이프라인 설치 가능성↑...러시아·이란은 유라시아 한가운데 꽉잡을 군사협력 보장

▲12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악타우에서 카스피해 연안 5개국 정상들이 만나 카스피해를 둘러싼 기본 협약에 합의하고 웃으며 취재진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악타우/타스연합뉴스
500억 배럴의 석유와 52조 배럴의 천연가스를 품은 노다지 ‘카스피해’를 둘러싼 연안 국가들이 최대한의 이권 확보를 향해 뛰기 위해 출발선 앞에 섰다. 각국 이해에 따라 호수냐 바다냐를 두고 30년 넘게 이견을 좁히지 못했던 카스피해의 법적 지위에 관한 협약에 연안 5개국이 12일(현지시간) 극적으로 합의하면서 이들은 저마다 정치적·경제적 이득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아제르바이잔, 이란, 카자흐스탄, 러시아, 투르크메니스탄 정상은 이날 카자흐스탄 서부 악타우에서 만나 5개국 정상회의를 열고 카스피해 법적 지위와 해저 자원 공유에 관한 기본 구상에 합의했다. 구체적인 협정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으나 카스피해 자원의 권리는 연안 5개국에만 귀속된다는 원칙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과거 소련과 이란은 카스피해를 호수로 인정하는 국제협약에 근거해 호수를 양분해 국경을 획정했다. 그러나 1991년 소련 붕괴로 독립한 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아제르바이잔이 새로운 국경선 획정을 요구하면서 카스피해는 분쟁에 휘말렸다. 신생 3국이 카스피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면서다.

문제는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이 신생 3국 연안에 몰려있다는 점이었다. 이 때문에 ‘호수냐 바다냐’ 논쟁이 30년 넘게 이어졌다. 둘 중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각국의 영유권 범위가 크게 달라진다. 이란과 러시아는 카스피해를 ‘호수’로 정의해 지하자원을 공평하게 나누고자 했고, 반면 아제르바이잔·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은 ‘바다’라고 주장해왔다.

이번 합의를 통해 카스피해는 호수도, 바다도 아닌 ‘별도의 법적 지위’를 가진 지역으로 정의됐다. 아직 합의가 최종 단계에 이르지 않았고 세부 내용이 정해진 게 아니라서 해저 경계 등 짚고 넘어갈 부분은 남았다. 그러나 이 협정으로 연안 5국은 경제적 수익성이 높은 해저 파이프라인부터 정치·경제적 전략까지 각자 이해에 따라 ‘노다지’ 활용법을 상상할 수 있게 됐다.

▲빨간 점선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카스피해 해저를 관통해 아제르바이잔으로 곧장 이어지는 파이프라인 예상도. 진한 빨간선은 현재 설치돼있는 파이프라인. 출처 파이낸셜타임스(FT)
우선 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 사이의 해저 파이프라인 설치가 가능해지면서 이들 국가의 대유럽 수출길이 짧아진다. 투르키메니스탄과 카자흐스탄은 카스피해 동쪽 연안에 있다. 지금까지 이들이 생산한 원유와 천연가스를 유럽에 수출하려면 러시아 땅을 거쳐야 했다. 러시아는 카스피해를 가로질러 아제르바이잔으로 곧장 통하는 파이프라인이 생기면 유럽 시장에서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대체할 경쟁자가 생길까 반대해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이 루트에 관심을 보여온 것도 러시아가 반대한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이날 “파이프라인이 특정한 환경 기준을 맞추면 허용되게 될 것”이라며 당사국 간에 합의가 이뤄졌음을 시사했다. 3국은 경제적 이득을 보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대신 러시아는 정치·경제적으로 새로운 무기를 얻었다. 러시아는 중국의 신실크로드 프로젝트 ‘일대일로’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카스피해 파이프라인이 뚫리지 않았을 때, 에너지 수출은 먼 서방보다 가까운 동쪽, 특히 중국을 향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활로를 찾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을 지나 인도까지 이어지는 TAPI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기도 했다. 중앙아시아의 교역은 멀리 있는 러시아가 아닌 이란이 주도했고, 이란 뒤에는 역시 또 중국이 존재했다. NYT는 러시아가 파이프라인 설치를 허용하고 중국의 손길을 차단하는 쪽을 택했다고 봤다.

러시아가 노리는 것은 또 있다. 연안 5개국 간 군사협력이다. 이들은 협정에 연안국을 제외한 어떤 나라도 카스피해에 군함을 배치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군이나 중국의 군사력을 물리치고 사실상 러시아가 이 지역을 군사적으로 독차지하겠다는 셈법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5년까지 카스피해 해저에 심해 항만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군사협력에 이란도 크게 환영했다. 미국이 이란핵합의(JCPOA) 폐기를 선언하고 포괄적 제재를 부활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인접한 4개국과의 협력은 이란에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이날 “카스피해 국가는 다자주의를 강조하고 일부 국가의 일방적인 행동을 반대한다”며 “카스피해 5국은 JCPOA를 국제 협약으로서 보호할 것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또 동부 연안국의 대유럽 에너지 수출이 늘면 이란에도 이득이다. 미국으로부터 원유 수출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5개국이 뭉친 카스피해 연합이 에너지와 관련해 유럽과 긴밀해지면 이란도 비빌 언덕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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