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반달가슴곰과 ‘함께 살자’

입력 2018-07-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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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옥 환경부 차관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사회에서는 힘이 센 동물을 부족의 수호신으로 섬겼다. 고대 북유럽에서는 곰을 숲의 왕이자 인간과 신을 중재하는 존재로 여기며 숭배했다. 우리나라 단군신화에서도 환웅과 곰이 변신한 웅녀 사이에서 단군왕검이 태어난다. 단군왕검은 하늘의 배경과 곰의 힘을 가진 우월적 존재로 간주됐다.

하늘의 아들과 결혼한 소중한 존재여서일까. 우리나라에는 곰골(熊州, 공주)이나 곰재(熊嶺, 진안)처럼 곰이 등장하는 지명이 많다. 특히 지리산 인근인 구례, 남원, 함양 등지에는 곰실, 곰치재, 웅산 등 ‘곰’과 ‘웅’자가 포함된 지명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곰 중에서도 반달가슴곰은 올해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의 마스코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반달가슴곰은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한반도에 정착해 서식하던 동물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해로운 맹수를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대량 포획하면서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해방 후에는 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면서 서식지가 파괴됐고, 그릇된 보신 문화와 밀렵으로 많은 개체 수가 사라졌다. 결국 반달가슴곰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2001년부터는 ‘종 복원사업’의 상징적인 존재가 됐다.

현재 지리산에 서식하고 있는 반달가슴곰은 55마리다. 개체군 존속에 필요한 최소 조건인 50마리 목표를 웃도는 수준으로 늘어났으니 일단 복원사업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세계 최초로 인공수정을 통한 새끼 출산에도 성공해 유전적 다양성 증진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그럼에도 반달가슴곰 복원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맹수를 왜 복원해서 풀어 두냐는 것이다. 이런 항변은 일면 타당한 측면이 있다. 인간은 자신의 안전을 위협할 가능성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방어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반달가슴곰이 이동할 자유와 주민들이 안전하게 살 자유가 충돌할 경우 대다수 사람은 후자에 우선권을 줄 것이다.

하지만 윤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문제가 단순하지만은 않다. 지리산을 침범한 것은 과연 반달가슴곰이었을까. 인간이 정주하기 전까지 지리산의 주인은 반달가슴곰을 포함한 야생의 동식물이었을 것이다. 문명의 역사 속에서 안전하게 살 자유를 뺏긴 것은 지리산을 인간들에게 양보하고 떠났던 반달가슴곰이었다. 따라서 안전하게 살 권리에 관한 한 대자연의 재판관들은 인간보다는 반달가슴곰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

반달가슴곰을 복원하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질문은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어떤 가치관으로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로 연결된다. 우리는 인간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는 모든 동식물을 다시 자연에서 몰아낼 것인지, 아니면 지구의 구성원으로서 그들이 갖는 권리를 인정하고 공존을 추구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우리의 선택이 전자라면 반달가슴곰들을 붙잡아 동물원 울타리 안에 가둬야 할 것이다. 후자를 선택한다면 반달가슴곰과 주민들이 서로 해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최근 안전하게 살 자유를 위협받고 있는 것은 오히려 반달가슴곰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사고가 잇달아 발생했다. 5월에는 고속도로 분기점 부근에서 반달가슴곰 한 마리가 시속 100㎞로 달리던 관광버스에 들이받혀 왼쪽 앞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에는 지리산에서 백운산으로 이동했던 또 다른 반달가슴곰 한 마리가 이동형 올무에 걸려 바위 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환경부는 최근 지리산과 수도산 인근 17개 시·군, 반달곰친구들 등 시민단체, 전문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이 참여하는 ‘반달가슴곰과의 공존 협의체’를 구성했다. 반달가슴곰에게는 안전한 서식지를 제공하고 주민들에게는 피해를 막을 방안을 지원함으로써 곰과 사람의 ‘함께 살자’를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더불어 지리산, 덕유산, 속리산 등 중남부권역으로 이어지는 국가 생태축 단절 지역을 조사하고 2022년까지 훼손지 복원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폐도를 복원하고 생태 이동통로를 조성하는 등 생태계 연결사업도 병행하게 된다. 평창의 반다비들이 백두대간 곳곳에 깃들어 안전하게 살아가는 날, 우리는 비로소 자연과의 공존이 일상이 되는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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