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화만이 살 길”… 미국車, 눈물겨운 안방사수 작전

입력 2018-06-1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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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션만 차별화했던 포드 ‘머큐리’ 실패 플랫폼 자체 바꾼 GM ‘캐딜락’은 안착 SUV 열풍에 크라이슬러 ‘지프’도 쌩쌩

▲캐딜락은 GM 산하 브랜드와 차별화된 플랫폼과 디자인 전략으로 고급차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다. 알파벳과 숫자로 점철된 브랜드 전략 속에서도 전통적인 이름을 고수하고 있는 에스컬레이드의 모습. 사진제공 미디어GM
▲포드는 중형 패밀리세단 파이브헌드레드(사진 위)를 바탕으로 옵션을 채워넣은 고급차 머큐리 세이블(아래)를 출시했다. 경쟁 브랜드가 새로운 플랫폼으로 고급차 시장에 뛰어든 것과 달리 포드는 ‘옵션 차별화’라는 안일함에 빠져 고급차 시장에서 외면 받았다. 결국 머큐리 세이블은 2009년 후속 모델 없이 단종됐다. 사진제공 뉴스 프레스

인류 역사상 두 차례 세계 대전을 치르는 동안 자동차 산업은 진일보했다. ‘전쟁’이라는 쓰라림을 겪는 사이 모든 산업 현장은 숨 가쁘게 전쟁 물자를 만들어냈고, 여기에서 얻은 노하우와 대량생산 체제는 훗날 급속한 산업화의 밑거름이 됐다.

물론 역효과도 불어닥쳤다. 전쟁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다 보니 공급량이 넘쳤고, 전쟁이 끝나자 수요가 사라지면서 경영난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자동차 공장들은 전후(戰後) 혹독한 시련과 함께 합종연횡에 나섰다. 살아남을 자동차 회사만 남긴 채, 나머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살아남은 대표적인 기업이 미국의 GM과 포드, 크라이슬러 등 이른바 빅3였다. 이들은 빠른 산업화로 경제 부흥기를 맞은 미국시장을 등에 업고 급성장했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 독일과 일본이라는 걸출한 경쟁자가 등장하기 이전이었다. 빅3가 미국의 표준이었고 상징이었다. 쉽게 차를 만들어도 불티나게 팔리던 시절이었다.

상황은 1960년대 말 틀어졌다. 일본차와 독일차가 속속 북미 시장에 뛰어들면서 상황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로 대변되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가 북미 고급차 시장에 파고들기 시작한 것. 당시는 아직 아우디가 프리미엄 브랜드에 합류하기 이전이었다. 독일 양대 고급차 브랜드는 미국 빅3의 대규모 생산능력과 전통적인 브랜드 충성도를 피하기 위해 고급차 시장을 노렸고 전략은 주효했다.

1980년대 이르러 일본 브랜드 역시 속속 고급차 브랜드를 앞세워 북미 시장을 노렸다. 토요타가 렉서스를 앞세웠고, 혼다는 어큐라, 닛산은 인피니티라는 고급차 브랜드를 차례로 내놨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 빅3는 몸집 키우기에 집중했다. 포드는 유럽을 겨냥한 유럽 포드를 세웠고 전 세계 곳곳에 자동차 회사나 공장을 인수해 이름을 포드로 바꿨다. 한때 한국의 기아산업의 1세대 프라이드를 OEM으로 수입해 판매(포드 페스티바)하면서 기아차의 지분을 요구하기도 했다. 소형차 개발 노하우가 없었던 그들에게 기아산업은 적절한 표적이기도 했다.

반면 GM은 인수합병에 집중했다. 쉐보레와 영국의 복스홀, 독일의 오펠, 호주 홀덴 등을 사들이며 GM 산하에 두었지만 브랜드 전통을 이어갔다. 크라이슬러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덩치를 키웠다.

덩치가 커진 빅3는 점차 고급차로 눈길을 돌렸다. 독일 고급차 브랜드는 한 대를 팔아도 남는 마진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이들보다 가격을 낮추고 옵션을 가득 채운 고급차를 만들어봤지만 경쟁차의 꼼꼼한 품질과 내구성에 가볍게 밀리고 말았다. 이미 고급차 시장을 바라보는 소비자의 눈이 높아졌고, 이를 만회할 기술 경쟁력이 빅3에는 없었다.

결국 브랜드 차별화로 전략을 바꿨다. 예컨대 포드는 대중차를 지향하면서 산하 브랜드 ‘머큐리’는 고급차를 지향했다. ‘포드 토러스’를 바탕으로 고급장비와 옵션을 가득 채워 ‘머큐리 세이블’이라는 이름으로 팔았다. 이른바 세미 프리미엄 전략이었다. 결국 이 전략은 실패했고 머큐리 세이블은 2009년 후속 모델 없이 단종됐다.

GM 역시 쉐보레를 대중차 브랜드로 정립했고 고급차 브랜드 캐딜락을 앞세웠다. 포드가 옵션 차별화에 그친 반면 GM는 플랫폼 차체를 차별화했다. 쉐보레는 앞바퀴굴림 중소형차에 집중하면서 캐딜락은 뒷바퀴굴림 고급차를 지향한 것.

이렇게 출발한 세미 프리미엄 시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큰 격차로 차이를 벌렸다. 예컨대 옵션만 차별화했던 포드의 고급차 전략은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현재는 수익성이 큰 픽업트럭에 집중하고 있다. 피아트 크라이슬러 그룹 역시 SUV 광풍에 힘입어 지프 브랜드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반면 캐딜락은 이들과 궤를 달리하며 마침내 독보적인 시장을 형성했다. 드빌과 스빌, 플리트우드 등 어려운 이름을 전부 걷어내고 알파벳과 숫자로 모델명을 통일했다. 전 세계 어느 언어권에서도 쉽게 부르고 기억할 수 있는 차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뒷바퀴굴림 고급차를 지향하면서 쉐보레, 매각한 오펠 등과 차별화를 추구한 게 주효했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고급차 시장에서의 성패가 이처럼 회사의 운명을 가르기도 한다.

이처럼 일반 양산차 브랜드가 대규모 설비경쟁을 벗어나 고급차를 지향하는 이유는 뚜렷하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데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고급차 시장이 확대된 까닭이다.

나아가 고급차 시장은 자동차 회사들의 수익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아우디의 영업이익률은 9% 안팎이다. BMW 영업이익은 두 자릿수를 기록하면서 글로벌 완성차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반면 일본의 토요타와 혼다, 닛산 등 양산 대중차 브랜드의 영업이익은 5%에 못 미치고 있다. 현대차가 미국시장에서 제값받기 전략을 앞세워 한때 두 자릿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이를 지속하는 데는 실패했다.

전통적인 독일 고급차 브랜드 역시 그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에 또 다른 고급차 시장을 노리고 있다. BMW는 롤스로이스 브랜드를 앞세워 이른바 ‘슈퍼 리치’를 겨냥하고 있다. 한때 마이바흐를 앞세워 롤스로이스와 경쟁했던 다임러그룹은 이제 메르세데스-벤츠의 최고급 모델에 마이바흐 버전을 앞세우고 있다. 아우디폭스바겐 그룹 역시 벤틀리를 정점으로 초호화 세단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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