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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회장 타계] '23년 뚝심'으로 일궈낸 글로벌 LG…소탈ㆍ온화한 CEO
입력 2018-05-20 12:08   수정 2018-05-20 12:48

▲구본무 LG 회장이 5일 오후 LG사이언스파크 마무리 건설 현장을 점검했다. 사진은 연구동 연결 다리에서 연구 시설을 점검하는 모습(왼쪽 두번째부터 하현회 LG 사장, 구본무 LG 회장, 유진녕 LG화학 CTO 사장, 안승권 LG전자 CTO 사장, 구본준 LG 부회장) (사진제공=LG)

LG그룹 3세 구본무 회장이 20일 오전 9시 52분 향년 73세로 타계했다. 무려 23년 간 LG그룹의 '3세대 총수직'을 수행하며 구본무 회장이 강조했던 것은‘초우량 LG’였다.

그는 이를 위해 전자·화학·통신서비스를 3대 핵심사업으로 삼고 뚝심있게 육성했다. 또한 자동차부품 및 차세대 디스플레이, 에너지와 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도 발굴했다

그 결과 GS, LS, LIG, LF 등을 계열 분리하고도 매출은 30조 원대(1994년 말)에서 지난해 160조 원대로 5배 이상, 해외 매출은 약 10조 원에서 약 110조 원으로 10배 이상 신장시키는 등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그룹 관계자들은 구 회장 특유의 '끈기와 결단'의 리더십이 힘을 발휘한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실제 악조건 속에서도 LG디스플레이의 대형 올레드(OLED) 사업, LG화학의 이차전지 사업을 글로벌 1위로 이끌고, 최소 3년 걸릴 것이라던 LTE 투자를 9개월 만에 끝내고 이동통신 시장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

특히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럭키금성에서 'LG'로 CI를 변경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등 기업문화를 과감하게 바꿔 놓은 것도 고인의 역할이 컸다.

최근에는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 4조 원을 투자해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인 'LG사이언스파크'를 건립하며 LG의 미래를 이끌어 갈 첨단 연구개발(R&D)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인은 1975년 ㈜럭키에 입사하는 것으로 기업 활동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과장, 부장, 이사, 상무, 부사장 등의 직위를 차례로 거치면서 럭키와 금성사의 기획조정실 등 그룹 내 주요 회사의 영업, 심사, 수출, 기획업무 등을 두루 섭렵하며 다양한 실무경력을 쌓았다.

1985년 이후 그룹 기획조정실에서 전무와 부사장의 직책을 맡아 그룹경영 전반의 흐름을 익히는 기회를 가졌고, 1989년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경영 수업을 본격화했다.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20년만인 1995년 그룹의 회장직을 승계받았다. 부친인 구자경 회장보다는 5년 늦은 50세에 그룹경영을 맡았지만 전 회장이 건강한 상태에서 승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는 게 재계의 평가였다.

무엇보다 고인은 다양한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그룹 핵심 사업인 전기·전자와 화학 사업은 물론 통신서비스, 자동차부품,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 신성장 사업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거듭했다.

그는 경영 뿐만 아니라 야구에도 남다른 애정이 보였다. LG트윈스 구단주로 활동하면서 자율경영을 구단 운영에 접목해 '깨끗한 야구, 이기는 야구'를 표방, 창단 첫해인 1990년 시리즈에서 예상을 뒤엎고 우승하는 신화를 이뤄냈다.

지인들은 고인에 대해 소탈하고 사교적인 성격으로,인간미와 친근감이 느껴지는 인물이었다고 평가한다. 시간관념도 철저해 정해진 약속을 반드시 지키고 대화를 할 때 자신의 얘기보다는 남의 말을 잘 듣는 편이었다고 한다.

고인은 슬하에 아들과 딸 둘을 뒀으나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뒤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구광모 LG전자 B2B사업본부 정보디스플레이(ID) 사업부장을 2004년 양자로 입적해 경영 수업을 받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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