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록의 이슈노트]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

입력 2018-05-0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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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1부 차장

“횡단보도로 잘 건넜는데, 갑자기 횡단보도를 지우고 옆에 다시 그리더니 무단횡단했다고 하는 꼴 아닌가요?” 삼성 계열사 관계자가 털어놓은 속내다. 그만큼 답답하다는 얘기다.

최근 전방위적으로 벌어지는 ‘삼성 때리기’는 도가 지나칠 정도다. 종전에는 적법하다고 했던 정책들이 정권이 바뀐 후 불법으로 뒤집히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논란을 비롯해 신규 순환출자 금지 가이드라인 번복, 이건희 회장 차명재산에 대한 차등 과세 번복 등 사례는 많다.

물론 삼성이 달라져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정권의 압박을 수용하다 잘못된 경우가 많았지만, 어쨌든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다 보니 삼성은 글로벌 기업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수많은 곤욕을 치렀다. 이재용 부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소송비 대납 사건 등도 현재 진행형이다.

문제는 유행처럼 번지는 ‘삼성 때리기’가 감정적으로 치우쳐 있다는 느낌이 크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삼성이 유리한 위치에서 저지른 불법과 탈법에 대해서는 엄중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잘못을 바로잡더라도 일정한 원칙은 지켜야 한다. ‘삼성전자가 잘못되면 우리 경제가 어려워진다’, ‘삼성전자가 그동안 우리 경제에 이바지한 공을 생각하자’ 등의 얘기는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만 봐도 그렇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전날 홈페이지 게시글을 통해 “금융감독원이 민감한 사안의 정보를 무분별하게 공개·노출하고 있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현재 진행 중인 감리 절차와 관련해 1일 금감원으로부터 조치 사전통지서를 전달받았으며, 그에 대한 ‘보안에 유의하라’는 내용도 함께 통보받아 언급을 자제해 왔다”며 “이어 3일에는 ‘조치 사전통지서 내용을 사전 협의 없이 언론 등 외부에 공개해선 안 된다’는 공문을 추가로 받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가운데 금감원이 통지서 발송을 언론에 사전공개하고, 금감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고의적인 분식회계로 결론 내렸다거나 실제 통지서에 게재된 ‘조치 내용’ 등이 확인 절차 없이 금감원 취재 등을 바탕으로 기사화되고 있다”며 “시장과 투자자의 불안을 가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회사에는 관련 내용을 함구하라고 요구해 놓고, 금감원이 언론에 정보를 노출하고 있다는 취지의 반발이다.

최근 만난 한 기업인은 이렇게 말한다. “진보나 보수나 기업을 괴롭히는 건 방법만 다를 뿐 다 똑같다. 이 나라에서는 정치꾼들 때문에 진짜 기업 못해 먹겠다”고.

실제로 정권이 바뀌는 5년마다 각종 포퓰리즘 정책이 쏟아진다. 이번에는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으로 많은 기업가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 힘겹게 일궈 놓은 기업을 팔고, 그 돈으로 건물을 사서 여생을 편하게 지내겠다고 마음먹는 기업인들도 많다.

휠라코리아 윤윤수 회장은 지난해 서울대 강연에서 기업가 정신의 세 가지 요소로 실패와 경험, 도전정신을 꼽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실패와 도전정신을 내세우다간 온갖 규제에 가로막히기 십상이다. 기업이 정치에 휘둘린다면 제대로 된 기업가 정신을 갖춘 기업가는 나오기 어렵다.

1995년 4월 이건희 삼성 회장은 베이징에서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했다. 23년이 지난 지금에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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