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투’ 확산 놀랄 일 아니다

입력 2018-02-0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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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서 시작된 ‘미투’운동이 사회 여러 분야로 확산하고 있다. 직장에서 여성에 대한 성추행은 새삼스러운 것도 모르는 일도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여성들이 직접 간접으로 알리고 호소했지만, 남성 중심의 마초사회에서 무시당했을 뿐이다. 한 현직 여성 검사가 영향력 있는 방송에 출연하여 직접 공개하니, 여성에 대한 직장에서의 성폭력이 사회적 관심사항으로 변했을 뿐이다. 터질 것이 드디어 터져 나온 것뿐이다.

대한민국에서 직장 생활을 한 여성 중 성희롱,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묻고 싶다. 성추행, 성폭력 사건과 무관한 집단이 있을까도 묻고 싶다. 연예계, 언론계, 교육계, 법조계, 체육계, 의료계,경찰, 군대, 공직 사회, 일반 회사 중 어느 분야도 여성의 성폭력 사건에서 자유로운 곳은 없을 것이다.

남성 중심인 우리 사회의 문화가 여성의 강화된 사회 진출에도 변하지 않으면서 일으키는 현상이다. 피해자인 여성은 수치심과 자괴감에 고통받고 있을 때, 가해자인 남성 대부분은 가해자라는 인식조차 없고 별다른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모든 남성이 성추행자는 결코 아니고 대다수가 정상적이지만, 성추행하는 동료나 상사를 만류하기보다는 같이 웃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다. 공직생활을 했던 필자도 수많은 성희롱, 성추행 사건을 보고 듣고 경험했다. 성추행 사건의 온상은 직장의 회식 자리다. 여직원들 앞에서 온갖 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며 웃음을 강요하는 상사,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느끼한 눈으로 바라보는 상사, 블루스 춤을 강요하는 상사, 뒤에서 껴안으며 가슴을 만지는 상사, 회식 끝날 무렵 밥상 위에 올라가 바지를 벗어 내리고 ‘타잔 포즈’를 취하는 상사, 이 모두가 사실이다. 이에 항의하는 여직원은 분위기를 깨는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상한 사람이 된다.

해외공관에 근무할 때 서울에서 수없이 왔던 국회의원 등 고위직들의 관저 만찬 건배사에서 “여성의 스커트와 건배사는 짧을수록 좋다”는 언급에, 만찬에 초청된 현지 여성들의 일그러지는 쓴웃음을 보면서 한국 외교관임이 부끄러웠던 적도 있었다. 최근 장관 청문회에서 아직도 그런 구닥다리 건배사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듣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게걸스럽게 젊은 여직원들에게 추근대는 남성을 보며 “섹스 못해 죽은 귀신이 붙은 사람도 있나 보다”라고 동료에게 말한 적도 있다. 문제는 자신의 행동이 전혀 문제 되는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 있다.

오히려 남성이 가진 ‘권리’라고 생각하고 일단 시도해보고 상대방의 태도를 보는 것이다. 반항하거나 항의하면, “성희롱한 적 절대 없다”, “예뻐했더니 건방지다”, “직장에 적응 못하면 나가라” 등의 답변이 돌아올 뿐이었다.

지금 확산하고 있는 ‘미투’의 의미는 남성 중심 사회의 문화를 변화시키라는 것이다. 잠깐 지나가면 잊히는 깜짝 관심사항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제도적 변화와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여성들이 피해를 입었을 경우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신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성폭력이나 성폭행을 저지른 가해자들을 찾아내어 처벌받게 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중요한 경종이 될 것이다. 성추행 사건 발생의 중심이자 가정과 직장 병행, 나아가 출산 저하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단체행동을 강요하는 직장의 회식 문화는 변해야 한다. 최소한의 모임으로 당장 바꿔야 한다. 성추행의 기준은 ‘나의 딸, 여동생, 아내가 다른 남성으로부터 당한 행위가 문제가 된다면 나도 다른 여성에게 그러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이다.

성추행을 당한 여성들에게 그것은 결코 자신의 부주의나 잘못으로 발생한 일이 아니며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주위에 털어 놓으라고 말하고 싶다. ‘미투’운동이 성공하는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쾰른대학교 철학박사. 주 독일 대사관 공사, 주 세르비아 대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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