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손기웅 통일연구원장 “대북 제재는 유지하되 경제 분야에서 유연한 지원 전략 필요”

입력 2018-01-0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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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개성공단 재개 등 경협 요구할 경우 국제 제재가 허용하는 틀 안에서 가능

▲손기웅 통일연구원장은 4일 서울 반포대로 통일연구원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북한의 45배에 달하는데 뭐가 무서워서 대화를 피하는지, 외국에서 보면 이상하게 생각한다”며 “교류 협력이 퍼주기라며 북한에 도움을 준다고 하지만, 사실 개성공단은 우리에게 더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개성공단은 북한의 20만 명 근로자에게 잘사는 대한민국을 보여주는 쇼윈도”라며 “북한의 개혁을 통한 변화를 지속적으로 유도했다면 북한의 변화도 앞당길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아쉬워했다. 이동근 기자 foto@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권력을 잡고 나서 핵심과제로 ‘권력 안정’과 ‘북한 체제 안정’, 두 가지를 추진했다. 그동안 권력 안정용으로 핵 무력 완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경제난 극복을 위해 대남 창구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연초 멈췄던 남북 관계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면서 4일 급하게 찾은 통일연구원 내부도 자체 회의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날 만난 손기웅(59) 통일연구원 원장은 그동안 극단으로 치달았던 남북 관계가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 배경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그동안 북핵·미사일 문제로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로 치달았던 한반도의 긴장상태가 1일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우리 정부를 향한 적극적인 화해 제스처를 보내면서 남북 소통의 회복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신년사가 발표된 후 불과 이틀 만에 2년가량 단절됐던 연락채널이 복원됐다.

양측은 우선 북한 대표단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논의 등을 중심으로 대화채널을 가동할 전망이다. 선수단과 임원진으로 구성된 대표단이 군사분계선을 넘는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안고 육로로 내려올지, 아니면 항공편이나 선박을 이용할지 등에 대한 협의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이나 북한의 비핵화 등이 논의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손 원장은 이 같은 북한의 화해 제스처에 대해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북한의 정권 창건 70주년과 한국의 평창올림픽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기본적으로 경제난 극복을 위한 출구로 평화 공세를 펴고 있다”고 진단했다.

남북 당국 회담 진행 시 우리 정부의 협상 전략에 대해 손 원장은 “정부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중단이 북한의 도발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에 귀책사유를 분명히 밝히고 국제사회와 함께 대북 제재는 하되, 경제 분야에서 어느 정도 유연하게 지원하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손 원장은 우선 북한과 본격적인 대화의 물꼬가 이어지는 현 상황에 대해 “북한의 평화 공세는 김정은 정책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분석했다. 2011년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의 핵심과제가 ‘권력 안정’, ‘북한 체제 안정’ 두 가지였다. 또 핵심 키워드로 핵 무력 완성에 초점을 뒀다. 그는 “신년사에서 권력 안정과 체제 안정을 위한 하드웨어로 핵 무력 완성을 공식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남은 것은 경제건설인데, 이를 위해 경제난을 극복하고자 무언가 외부로부터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평창과 공화국 창건 70년 기점을 말한 것은 명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손 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북핵 동결이 전제돼야 대화하겠다는 기본원칙이 훼손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북한이 개성공단 재개 등 경협을 요구할 경우 국제 제재가 허용하는 한에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핵 문제의 핵심은 미국·중국·러시아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손 원장은 “이런 상황에서 이전 정부는 남북 관계를 등한시했다”며 “현 정부는 이를 병행하자는 것, 즉 국제사회와 더불어 국제 제재는 하되, 핵 없이도 공동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이런 원칙상에 핵무기와 남북대화가 등치된다면 어느 정도 유연하게 하자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그는 다만 “국제적으로 대북 제재가 작동한 상황에서 예전과 같이 북한에 현금 지원 등은 곤란하다”고 난색을 표했다.

손 원장은 유엔 안보리 제재의 큰 틀 안에서 가동할 수 있는 개성공단 재개는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새롭게 경협이 재조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개성공단 중단 등은 북한 도발에 따른 결과다. 북한의 귀책이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큰돈을 요구하는 것은 할 수 없다. 큰돈이 가지 않고 예를 들면, 돈 대신 현물을 놓고 현물리스트에서 국제 제재에서 통용될 수 있는 지원, 대북문화지원이라든지 이런 것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대북 제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우리 지원이 북한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는 우려를 미국이 하고 있는데, 이를 불식하면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예전과 같은 경협은 없다. 평화 속에서 남북 교류를 위해 어떤 분야도 원한다고 원칙을 밝히되, 그 내용과 방법은 과거와 같을 수 없다. 그래야 국제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 원장은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로 인한 기대 효과에 대해서는 “한국이 차려놓은 무대에 평화 마케팅을 하겠다는 논리가 담겨 있다”며 “김정은이 올림픽 참가에 따른 득실을 고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이 참가하지 않더라도 중국, 러시아가 참가하니까 올림픽에 무력 도발은 힘들다”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은 몇 종목 참가보다는 참가 자체에 의의를 둘 것이다. 또 대표단에 여러 인물을 보여줌으로써 올림픽이라는 평화 이미지, 신년사에서 밝혔다시피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일 것이다. 또 남남 갈등도 유발하는 효과가 있다. 북한은 대남과의 관계에서 과감한 출구가 필요하다면서도 여야, 민간교류 차원 등 다양하게 얘기했다. 이런 다양한 공세는 평창 이후에도 진행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손 원장은 앞으로 정부가 남북 협상 과정에서 김정은이 평화 공세만 계속하진 않을 것이고, 여러 가지 리액션을 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대화가 왜 필요한 것인가 인식의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대북 제재는 남과 북이 다른 정치 체제라는 전제하의 제재”라며 “우리 정부는 우리만의 국가 이익이 필요하다. 지난해에 북한에 손을 내밀었는데 안 잡았다고 비판할 게 아니라, 국가적인 이익에 따라 대화를 지속하면 북핵 문제 등 남북 관계의 개선이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손 원장은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국민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한데, 쉽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여야 간에 허심탄회하게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손 원장은 “미국도 마찬가지인데, 보수라 하더라도 원하는 게 핵 폐기가 아니고 어떻게 북한이 자유롭고 민주주의 사회로 가느냐가 중요하다”며 “이게 보수의 가치”라고 풀이했다.

‘평화 공세를 어떻게 봐야 하느냐’ ‘전술핵 배치를 어떻게 하느냐’ 이런 감정적인 대처가 아니라, ‘한반도 전체에 자유민주주의와 인권과 복지가 실현되려면 제재만 하느냐’ ‘오히려 북한과 대화를 하는 게 맞지 않나’ 이런 여야 간의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과도 이러한 원칙을 강조해야 하고, 북한 정권의 생명연장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전파하는 통로로 봐야 한다”며 “헌법적인 가치를 보면 여야가 있을 수 없다. 독일도 진보 정부인 빌리 브란트 총리 때 동서의 물꼬를 텄지만, 보수 정부인 헬무트 콜 총리일 때 더 강화됐다”고 강조했다.

손 원장은 이번 북한의 대화 제스처가 한·미 동맹을 흔들려는 의도가 있다는 점도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이를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손 원장은 “문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 당시 경험과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를 보면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는 사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는 등 호감이 없었지만, 당선 이후 사드 배치를 확정한 것은 미국을 의식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이에 대한 화답으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오고, 북핵에 대한 철저한 검증 가능한 폐기를 공언했다”며 “현 정부는 기본적으로 남북 관계는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북한의 이간질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손 원장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의 역할이 중요하다. 독일도 통일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이 대화하면서 동서의 입장이 풀렸다”며 “우리도 그렇게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부연했다.

◇손기웅 통일연구원장은… 베를린 장벽 붕괴 현장서 체험

손기웅(59) 통일연구원장은 영남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정치학 석사,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통일연구원에 몸을 담은 뒤 기획조정실 실장, 북한인권연구센터 소장, 부원장 등을 맡았고 지난해 3월 원장에 임명됐다.

한국DMZ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를 현장에서 체험한 사람 가운데 통일 문제를 전업으로 연구하는 유일한 학자로 꼽힌다. ‘통일, 가지 않은 길로 가야만 하는 길’, ‘독일 통일: 쟁점과 과제 1·2’, ‘환경군국주의’ 등 15권의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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