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더 읽기] 뜨거운 감자 ‘근로시간 단축’ 논란, 쟁점은?

입력 2017-12-1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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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록 산업1부 차장

과로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임금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는 시간을 법으로 줄여 주겠다는 게 정부가 얘기하는 근로시간 단축의 핵심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다. 기본적으로 근로시간이 줄어도 생산 수준을 유지하려면 추가 고용이 필요하고, 결국 추가비용 부담이 불가피하다는 논리가 나온다. 최근 이와 관련해 정부와 국회, 재계, 중소업계, 노동계 등이 치열하게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쟁점은 뭘까.

궁금증① 그래서 근로시간을 얼마나 줄인다는 거야?

직장인 A 씨는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저녁 5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8시간을 근무한다. 하지만 최근 중요한 프로젝트가 생겨 매일 저녁 9시는 돼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하루 4시간씩 연장근무한 셈이다. 이렇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 동안 무려 60시간을 일했지만, 끝이 안 난다. 결국 토요일에도 출근해 8시간을 일하고 겨우 프로젝트를 마쳤다. 일주일 동안 68시간을 일한 셈이다. 지금까지는 이런 근무시간이 법적으로 허용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정하고 연장근로를 12시간으로 규정해 총 52시간까지만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일주일이 주 5일인지, 주 7일인지는 정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그동안 일주일을 휴일을 제외한 5일로 해석했다. 이에 따라 현재 주당 최대 근로시간이 주 40시간 + 평일 연장근로 12시간 + 휴일 근로 16시간으로 총 68시간까지 가능하다는 행정해석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행정해석이 ‘과로 사회를 당연시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도 주당 68시간 근로를 인정한 고용부의 행정해석 지침을 폐기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정부가 행정해석을 폐기하면 5인 이상 사업장까지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즉시 줄어든다. 이를 어기면 2년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궁금증② 반대하던 재계, 법안 처리 요청 왜?

최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국회를 찾아 근로시간 단축 잠정안이 담긴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피해가 우려된다던 재계가 왜 먼저 법안 통과를 요청했을까.

지난달 23일 여야 3당 간사는 현행 68시간인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되, 3단계로 나눠 순차 적용하는 방안에 잠정 합의했다. 하지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근로시간 단축 잠정안이 담긴 근로기준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휴일 근로 수당에 대한 견해가 엇갈린 탓이다.

그러자 재계는 정부의 행정해석 폐기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국회가 개정안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의 행정해석이 폐기되면 현재 52시간 이상 일을 시키는 사업장은 당장 불법 사업장이 된다. 박용만 회장이 7일 오전 국회 환노위를 찾아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얼마 남지 않았고, 행정해석 폐기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빨리 입법화해서 혼란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궁금증③ 휴일 연장근로 수당의 쟁점은 뭐지?

근로기준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된 건 휴일 연장근로 수당에 대한 견해가 엇갈려서다. 정부는 현재 휴일 근로를 연장근로로 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수당도 휴일 근로 할증률 50%만 적용해 기본급의 150%를 지급한다. 노동계는 그러나 휴일 근로는 연장근로(50%)이면서 휴일 근로(50%)이기 때문에 수당을 100% 할증해 200%를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서 여야 간사들은 휴일 근무 수당의 할증률을 현행 50%로 유지하는 내용의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과 정의당, 노동계가 휴일 근무 수당 100% 할증을 주장하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노동계는 휴일 수당 2배가 관철되지 않으면 강경 투쟁에 나서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대법원도 휴일 근무 수당을 통상임금의 2배로 계산할지, 1.5배로 계산할지를 놓고 14건의 소송을 심리 중이다. 대법원은 다음 달 18일 이와 관련한 공개변론을 연다.

궁금증④ 중소기업이 가장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근로자의 40%에 이르는 30인 미만 영세 중소기업은 지금도 사람을 더 뽑고 싶어도 뽑을 수가 없어서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해서 근로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이들 소기업에 대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문제점과 실태를 충분히 점검하고 추가 인력 공급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 12일 기자회견에서)

중소기업계는 영세 중소기업이 고사 위기에 처할 수 있다며 8시간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고 휴일 근로수당 할증률은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중복 할증이 적용되면 중소기업이 연간 8조6000억 원을 추가 부담해야 해 경영난으로 폐업하는 업체가 잇따를 것을 우려하고 있다. 세계 최장 수준인 근로시간을 줄여 근로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근로시간 단축이 영세 기업의 고충으로 이어지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궁금증⑤ 모든 근로자가 근로시간 단축을 원할까?

그렇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취지는 좋지만, 연장근로 축소로 평소 받던 수당 등이 줄면 임금 삭감의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3사 노조 및 마트노조가 12일 서울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에서 신세계그룹의 주 35시간 근무제 도입 결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연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전수찬 마트노조 이마트 위원장은 “마트는 일의 특성이 다르고, 일이 시간에 딱 맞춰 끝나지 않는다. 인력 충원이 없으면 영업시간을 단축해도 노동 강도는 줄어들지 않는다”며 인력 충원 없이 총임금을 깎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주 35시간 근무 체제에서 2020년 최저임금이 1만 원으로 오르면 주 35시간 근무 때 월급이 종전 주 40시간 근무할 때보다 26만 원 줄어든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노총 김주영 위원장은 신세계그룹이 내년부터 주 35시간 근로시간제를 도입키로 한 것과 관련 “그동안 이런 시도조차 못했었는데, 한 발짝 진일보한 결정”이라며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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