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세운상가 도시재생 시책요? 상인들은 뒷전이죠”

입력 2017-12-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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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된 공중보행교로 이어진 세운상가의 모습. 서지희 기자 jhsseo@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으로 생긴 긍정적 영향이요? 전혀 없다고 보면 됩니다.”(세운상가 3층 세입자 A씨)

전국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칼바람이 불던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를 찾았다. 야외에선 서울시 주최의 ‘도시재생 성과공유회’가 열렸다. 시가 그간 추진한 도시재생 사업을 시민들에게 알리려고 마련한 자리였다. 야외행사엔 관계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나 세운상가 내부는 겨울 찬바람이 그대로 스며든 듯 고요했다. 1층부터 4층까지 전자관련 부품, 완제품 등을 판매하는 업체 400여개가 빼곡했으나 이들을 찾는 고객, 거래처는 만나기 어려웠다.

도시재생사업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핵심 사업이다. 그 중 세운상가 도시재생사업은 사업비 974억 원을 책정한 주요 과제다. 낙후된 세운상가를 보행 중심축·창의제조산업 중심지로 되살린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특히 서울시는 보행로 개선에 역점을 두고 있다.

◇“현실적 대안 없어…비전자업 청년창업가 유입, 괴리감만 커져”

세운상가 세입자들은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이 상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보행로 설치, 화장실 개선은 시민을 위한 공간일 뿐 업체를 운영하는 상인에겐 필요하지 않은 조치라는 것이다. 청년창업가를 새로 유치해 세운상가를 재생하겠다는 서울시의 계획도 비(非)전자업종이 입주하면 기존 업체와 괴리감만 커질 뿐이라고 우려했다.

▲재고품이 쌓여있는 세운상가 내부 모습. 김정웅 기자 cogito@
세운상가 3층에서 전자부품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보행로를 만들고, 화장실도 수리해서 외관상 잘해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현장에는 아무런 이익이 없다. 사실 업체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보행로, 화장실 개선이)필요하지 않다”고 토로했다.

서울시가 상가재생을 추진한다고 했지만, 정작 세입자들 입장은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더군다나 도시재생사업 얘기가 나오면서 임대료만 더 올랐다고 토로했다.

A씨는 “도시재생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고, 성과 여부를 떠나 세입자들에겐 좋은 점이 전혀 없다”며 “임대료가 20만~30만 원 수준이었는데 도시재생 얘기가 나오고서 5만~10만 원 더 올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차라리 상가를 헐고 가든파이브 사례처럼 다른 곳으로 입점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하소연은 부품업체뿐만 아니라 완제품을 판매하는 상점에서도 나왔다.

세운상가에서 35년간 업체를 운영한 1층 세입자 B씨도 “상인들 의사와 관계없이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된 것은 사실”이라며 “도시재생사업이라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인 액션이라는 생각이 들고 (시책은) 현실에 몸담은 이들과 함께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B씨는 근본적으로 유통구조가 바뀐 시대 흐름 속에서 서울시가 내놓은 도시재생 사업으로 상가를 완전히 바꾸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터넷이 활성화된 만큼 세운상가를 찾는 발걸음이 예전만 못하다”면서 “서울시가 투자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인데 상가를 개선한다면 주차공간, 대중교통 노선 확보, 홍보가 먼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시 30년 넘게 세운상가에서 장사해 온 4층 세입자 C씨는 “보상금을 받고 가게를 정리하는 게 낫다”며 도시재생사업에 회의감을 토해냈다.

C씨는 “도시재생사업과 관련한 공사기간에 장사를 제대로 못 해 수천만 원 손해를 봤다”며 “공사가 끝났지만 별다른 효과를 못 보고 있다”고 말했다.

C씨 역시 인터넷 유통이 일상화된 만큼 세운상가의 전자·전기업 활성화는 어렵다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는 “세운상가를 찾는 고객들은 저소득층, 70·80대 고령층이 많다. 그런데 그분들도 인터넷에서 최저가를 찾아본 후에 가게를 방문하니 물건을 팔아도 남는 게 없다”며 “가든파이브처럼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안은 반대한다. 차라리 장사를 그만두는 게 해답이라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세운상가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는 밖에서도 들려왔다. 세운상가 인근에서 40년 넘게 공인중개업을 해온 김영준 대우부동산 대표는 “도시재생은 실패작으로 볼 수 있고, 재생사업한다는 소식 때문에 장사꾼들만 오가는 실정”이라며 “이미 업체 다수는 장지동, 용산전자상가 등으로 빠져나갔고 세운상가는 거의 비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성과 논하는 건 성급해…시·건물주·임차인, 5년간 임대료 인상 제한 협약”

▲한 중년 부부가 세운상가 내부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 서지희 기자 jhsseo@
세운상가 도시재생사업의 회의적인 시선에 대해 일각에선 성과를 지금 논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보행로 등 개선작업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만큼 효과를 보려면 1~2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원 세운상가상인협의회 사무국장은 “서울시는 상가에 사람을 모으는 게 1순위고, 상인들은 장사가 잘되는 게 1순위”라며 “도시재생사업은 이 두 가지 생각을 잘 조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건물 자체를 허물자는 의견에 동의하는 상인들도 있지만 이미 500억~600억 원이 개발비용으로 들어간 상황에 (의견이) 수용되는 것은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사무국장은 임대료 문제에 대해 서울시, 건물주와 과도한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협약을 맺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시가 도시재생사업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임대료를 올리지 말자는 내용을 담은 협약(2022년까지 유효)을 상가협의회, 건물관리회(임대인), 서울시가 맺었다”면서 “추후에 임대인 측이 임대료를 갑자기 많이 올린다면 임대 자체를 못하게 하는 등 단체행동을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 사무국장은 도시재생사업 성과를 속단하는 것보다 변화를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외부 보행로 주변에 새로운 상가들이 많이 들어올 것”이라며 “손님들 쉴 공간도 필요하고 의미있는 변화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서울시 측도 재생사업 효과는 장기간에 걸쳐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데크를 조성해 볼거리가 있어 사람들이 유입되고 있지만, 상인분들은 기대심리에 비해 매출이 늘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것 같다”며 “매출에 대해 정확한 실태조사를 거치진 못했지만 업종이나 상황에 따라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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