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평의 개평(槪評)] 일자리보다 일거리가 먼저다

입력 2017-11-1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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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사회부 차장

문재인 정부가 출범 후 가장 먼저 챙긴 것은 일자리 창출이다. 대통령은 집무실에 일자리 현황판을 걸어 놓고 매일 챙기고 있다. 하지만 취임 180일이 지나도 일은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문 정부의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의 주요 내용은 2020년까지 공공 부문에서만 81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현장민생공무원 17만4000명 신규 채용, 보육·요양 등 사회서비스 일자리 34만 명, 공공 부문 간접고용의 직접고용 전환 등의 방식을 통한 30만 명 확충 등을 통해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공무원을 17만4000명 채용하면 앞으로 30년간 근무할 경우 327조 원의 재원이 필요하다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정부는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근로시간 단축에도 나섰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5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주당 근로시간은 법정 근로 40시간, 연장근로 12시간 등 총 52시간이다. 그런데 고용노동부가 휴일근로를 예외로 해석해 토·일요일에 하루 8시간씩 더 근무할 수 있다고 봐 현재 주당 근로시간은 최대 68시간이다. 정부가 행정해석을 폐기하면 주당 근로시간은 52시간으로 줄어든다.

문 대통령은 이번 국회 회기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근로시간 단축을 막는 행정명령을 내년부터 즉시 폐기하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올인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지만, 정작 일거리를 만드는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일자리는 ‘일거리(일을 해 돈을 벌 거리)’가 있어야 생긴다. 일거리는 그대로인데, 공무원 수만 늘리는 것은 진정한 일자리 창출이 아니다. 일자리 정책을 일거리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고, 자리만 만들게 되면 결국 파이싸움을 하게 된다.

기업이 일거리를 새로 만들어 내야 일자리가 생기고, 나라 경제도 성장한다. 일거리 없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공무원 채용으로 경제는 살아나지 않는다. 오히려 공무원에게 들어가는 세금에 대한 부담만 늘어난다.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9월 말 기준 직원 수가 전 세계 54만1900명이라고 밝혔다. 1년간 23만5100명이 늘어난 것이다. 아마존은 내년 초 제2 본사를 지으면서 또다시 고용 유발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은 최근 1년간 직원 수를 12%(8147명),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은 43%(6163명) 늘렸다. 아마존·구글·페이스북은 혁신적인 사업을 잇달아 개척해 일거리를 만들어 매출을 늘리는 것은 물론 엄청난 숫자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 그려내는 시대는 그동안 접하지 못한 새로운 일거리가 계속 창출될 것이다. 미국의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지금의 초등학생들이 직업을 구해야 할 2030년에는 현존하는 직업의 47%가 사라진다고 전망했고, 세계경제포럼 보고서에 의하면 65%의 초등학생들이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일자리를 갖게 될 것이라고 한다.

정부는 창업 환경이나 기업 경영이 변화하는 시대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하지만, 그런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일거리보다 일자리 숫자에 연연하는 정부의 약속이 무엇보다 아쉬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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