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더 읽기] 전자투표제 첫발 내디딘 SK, 7년째 검토중인 삼성

입력 2017-11-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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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이 지난 1일 이사회를 열고 내년 상반기 정기 주주총회부터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 LG그룹, 롯데그룹 등 5대 그룹 계열사 가운데 최초다. SK그룹을 대표하는 SK이노베이션이 전자투표제를 전격 도입함에 따라 다른 SK 계열사로도 퍼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삼성과 현대차, LG 등 다른 대기업들의 움직임에도 관심이 쏠린다.

전자투표제는 지난 2010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제도다. 하지만 7년이 지나서야 SK이노베이션이 주요 대기업 가운데 첫발을 내디뎠다. 삼성전자는 7년째 검토 중이다. 현재 발의된 상법 개정안에는 전자투표제 의무화도 포함돼 있다. 전자투표제는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대기업들은 전자투표제 도입을 왜 미루고 있을까. 전자투표제를 둘러싼 숨은 사정을 들여다본다.

궁금증① 전자투표제가 뭐길래

전자투표제는 회사가 전자투표시스템에 주주명부, 주주총회 의안 등을 등록하면 주주가 주주총회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서도 전자적인 방법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2010년 처음 도입된 이 제도는 소수 주주도 주총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해 주주가치 제고 차원에서 정부는 물론 시장에서도 적극 권장하는 추세다. 아직 의무사항은 아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이번 전자투표제 도입과 관련 “모든 주주는 실질적인 의결권을 행사하는 데 보다 높은 편의성을 보장 받게 될 것”이라며 “주주의 권익 강화를 통한 실질적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전자투표제의 선제적인 도입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SK이노베이션은 중간 배당을 도입키로 하는 등 주주 친화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궁금증② 전자투표제 도입한 기업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국내 시가총액 30위권 기업 중에 시장형 공기업인 한국전력만이 유일하게 전자투표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100위 이내 기업으로 넓혀도 전자투표제 도입 기업은 15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달 초 SK이노베이션이 5대 그룹(삼성ㆍ현대차ㆍSKㆍLGㆍ롯데)의 계열사 가운데 첫 포문을 열었다. 주요 그룹 가운데에는 한화그룹이 전자투표제에 적극적이다. 한화는 상장사 7곳 중 (주)한화, 한화케미칼, 한화투자증권, 한화케미칼 4곳이 가입하면서 절반 이상이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30위권 밖 민간 기업으로는 카카오 등이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상태다. 두산그룹에선 중공업과 밥캣이 지난 3월 전자투표제를 시행했다.

궁금증③ 전자투표제 도입을 미루는 기업은

현재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전자투표제 도입에 소극적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0년 전자투표제가 시행된 후 도입을 검토했지만, 7년이 지난 지금도 검토는 현재진행형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전자투표를 포함해서 주주의결권 행사가 보다 용이하게 이뤄질 수 있는 방안은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와 LG이노텍, LG디스플레이 등 LG그룹 계열사는 전자투표제 관련 논의 조차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그룹, 포스코, 대한항공, 현대중공업, 동국제강 등도 역시 마찬가지로 전자투표제 검토에 착수하지 않고 있다.

궁금증④ 전자투표제가 왜 필요할까

전자투표제가 필요한 이유는 소수주주들의 발언권 확대에 있다. 기업들이 특정일에 집중적으로 정기주주총회를 여는 ‘슈퍼주총데이’가 매년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주총회에 직접 참석하기 어려워 소수주주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얘기다. 국내 상장사 대부분이 3월 셋째 혹은 넷째 주 금요일에 집중적으로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하고, 주총장소도 전국적으로 분산돼 있다. 주주감시 기능은 무력화될 수밖에 없고 대부분의 주총에서는 오너일가와 친기업 주주들만의 잔치가 돼 사측 안건이 속전속결로 무사통과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따라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면 주주들의 참여율이 올라가는 만큼 소수의견이 반영돼 대주주 전횡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김한표 자유한국당 의원은 “전자투표제를 우리나라 대표 그룹사들이 외면하는 것은 재벌 오너들이 소액주주의 주총 참여를 불편하게 여겨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 가능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궁금증⑤ 전자투표제 부작용은?

현 전자투표제도는 온라인상 질의, 응답, 토론 등이 허용되지 않고 단순히 주주의 의사결정을 찬성, 반대, 기권 등의 형식으로 표시만이 가능하다. 현장 주주총회와 같은 원활한 토론이나 질문이 어려워 전자투표가 풍문이나 소문에 영향을 받아 비합리적으로 행사될 수 있다. 의안에 대한 수정제안 등이 주총에서 발생한 경우 사전에 이뤄진 전자투표는 이에 대응할 수 없어 수정동의에서는 기권으로 취급되는 등 기술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는 점도 풀어야할 숙제다. 특히 기업들은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에 대한 불안감도 갖고 있다. 경영권 유지에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해킹이나 바이러스 감염 등에 의해 전자시스템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IT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노약자, 저학력층 등 일부 주주는 오히려 의결권 행사에서 배제되는 탓에 투표기회의 평등원칙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같은 이유로 전자투표제 의무화는 성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진희 한국경제연구원 변호사 연구원은 지난 7월 ‘전자투표제 의무화 도입에 관한 비판적 검토’란 보고서를 통해 “전자투표제를 의무화한 나라는 대만 터키 인도밖에 없으며, 이 역시도 외국인 투자자가 70%를 차지하는 터키와 같은 각국의 특수한 기업지배구조를 고려해 도입한 것으로 세계적으로 이례적인 입법”이라며 “우리 나라 환경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성급하게 의무화를 도입하는 것은 이후 발생할 폐해에 대해 기업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영록 산업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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