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33일간의 안식월이 나에게 준 것

입력 2017-08-1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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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이슬 대학내일 마케팅 커뮤니케이션3팀 책임매니저

지난달 5일까지 33일간 ‘안식월’을 보냈다. 안식월은 회사에서 만 3년간 끈덕지게 일한 자에게 주어지는 달콤한 상이다.

5년 차인 지금에서야 안식월이란 카드를 꺼냈다. 그간 일도 열심히 했고 30살도 되었고 하니, 이쯤에서 날 위한 선물을 줘야겠다는 생각에서 혼자 유럽여행을 떠났다.

스페인, 포르투갈, 크로아티아를 누비며 말은 쉽지만 한국에서는 어려웠던 ‘아메바’ 같은 1차원적인 삶에 충실한 나날을 보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낸 와중에도 귀한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유럽 사람들의 ‘나 중심의 사고’였다. 이 깨달음은 우연히 만난 한국인 여행자로부터 시작됐다.

세비야에서 한 여행객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그는 “나는 개미처럼 나와도 좋으니 이 웅장하고 아름다운 스페인 광장이 잘 담기도록 해 달라”며 신신당부했다. 촬영 후 결과에 만족한 그는 “여기 사람들은 사진을 잘 못 찍더라고요. 내가 이 장소에 온 것이 중요한데, 배경을 다 날리고 얼굴을 크게 잡아서 다 망쳐 놔요”라고 말했다.

맞다. 보통 우리는 외국인이 찍어 주는 사진에 실망한다. 필자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언젠가 스페인에서 만난 아주머니의 말이 내 뒤통수를 쳤다. 한국인들은 이곳에서의 행복한 순간보다 SNS에 인증하고 자랑하기 위해 배경이 잘 나온 사진을 고집한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배경보단 행복해하는 내 모습을 기록하는 것인데 말이다. 그들은 사진을 못 찍는 게 아니라 진짜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길을 잃었을 때 “여기가 어디예요?”라고 묻는데, 외국인들은 “Where am I?”이라고 묻는다고 한다. 내가 어딘가에 있음으로써 나의 존재를 입증하지 않아도 ‘나는 나’인 것을 늘 상기하며 사는 것이다.

특정 배경과 상황 속에서의 내가 아니라 언제 어디에 있든 내 감정에 충실할 것, 그날의 내 감정과 생각을 담아 내는 것을 제일 소중하게 생각할 것, 그리고 여행지가 아니라 치열한 일상 속으로 돌아왔더라도 그렇게 할 것. 언제나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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