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반도체 매각 이제 겨우 시작...아직 갈 길 멀다

입력 2017-06-2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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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연합, 도시바메모리 우선 협상대상자 선정...그러나 WD 반격 방어 등 과제 산적

경영난에 따른 자금 마련을 위해 핵심 자산들을 팔아치우고 있는 도시바. 21일(현지시간) 우여곡절 끝에 반도체 자회사 ‘도시바메모리’ 매각 우선 협상 대상자를 선정했지만 상황이 나아진 건 없다. 우선 협상 대상자 선정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결정이었고, 도시바메모리 매각에 거세게 반대하는 협력업체 미국 웨스턴디지털(WD)과의 갈등은 여전히 평행선이기 때문이다. 이달 28일 정기 주주총회 전까지는 정식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지만 WD의 반발은 잦아들 기미가 없다. 다음날 중순에 있을 미국 법원의 결정에 따라선 도시바메모리 매각이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PA연합뉴스

◇막판 신의 한 수?=도시바는 21일 열린 이사회에서 일본산업혁신기구와 일본정책투자은행, 미국 투자펀드 베인캐피털, 한국 SK하이닉스로 구성된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원래 유력 우선협상 후보는 한·미·일 컨소시엄이 아닌 미국 브로드컴이었다. 그러나 WD의 계속되는 태클에 브로드컴이 인수 의지를 꺾자 일본 정부가 도시바가 보유한 핵심 반도체 기술의 해외 유출과 매각 후 인력 구조조정 등을 감안해 막판 반전극을 일으킨 것이다. 단, 도시바는 “구속력 있는 서류에 서명한 것은 아니다”라며 안전장치를 마련해뒀다. 우선 협상권 부여 계약은 협상 결렬 시 위약금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우선 협상권 부여 계약은 체결하지 않고, ‘약속’한 형태를 대외에 발표한 것이다. 도시바가 한·미·일 컨소시엄을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건 최대 현안을 덮어둔 채 도박을 한 셈이다.

◇칼자루 쥔 WD=도시바가 이처럼 법적 구속력도 없는 결정을 서둘러 내린 배경에는 WD 리스크가 있다. WD는 일본 미에 현의 욧카이치공장을 도시바와 합작 운영하고 있다. 그러다가 도시바가 반도체 사업을 분사해 매각한다고 하자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에 중재 요청을 하고, 지난 15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고등법원에도 도시바 반도체 사업 매각중단 명령을 요청했다. 미국 법원의 첫 심리는 내달 14일에 열린다. WD는 도시바메모리 우선 협상대상자가 선정되고 2시간 후 즉각 성명을 내고 “우리의 동의없이 제3자에게 매각할 권리는 없다. (우리는) 어떠한 거래에도 동의를 표시하지 않고 중재 절차를 통해 이익을 보호할 것”이라며 장기전도 불사할 뜻을 나타냈다. 내달 14일 예정된 미국 법원 판결에서 ‘매각 중지’ 결정이 나오면 협상은 한 순간에 백지로 돌아갈 수 있다.

◇도시바, 시간이 없다=도시바 입장에서는 속이 타들어갈 수 밖에 없다. 경영을 재건시키기 위해선 내년 3월 말까지 도시바메모리 매각을 완료하고 미국 원전 사업의 거액 손실로 인한 자본잠식도 해소해야 한다. 2분기 연속 채무초과 상태가 되면 증시 상장폐지에 내몰린다. 매각에 대한 반독점 심사까지 고려하면 시간은 빠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WD의 반발로 반도체 사업 매각이 무산되면 당장 2조 엔의 자금 확보도 물거품이 된다. WD가 노리는 것도 이것이다. 자금조달이 절박한 도시바로하여금 일단 매각 협상을 철회시키고, 자사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몰고가 결국 도시바메모리를 헐값에 넘기게 하려는 것. WD는 2조 엔에 훨씬 못미치는 액수로 도시바메모리를 넘기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WD는 21일 성명에서 한미일 컨소시엄에 SK하이닉스가 낀 것을 들며, 강한 반발을 나타냈다.

◇7월14일에 쏠리는 눈=도시바나 WD나 7월 14일에 시선이 쏠린다. 이날 미국 법원에서 WD의 도시바메모리 매각 중단 요청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는데, 여기에서 매각금지 가처분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 분쟁이 길어지면 도시바메모리는 원활한 매각이 이뤄지기 어렵다. 와세다대 하토리 노부미치 객원교수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매각금지 가처분 결정이 나오면 도시바는 우선 협상대상자 선정과 관계없이 WD의 요구를 들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상거래 전문가인 하시다테 겐지 변호사는 “매각금지가 인정됐을 경우 정식 매각 계약은 체결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법원에서 매각금지 가처분 결정이 내려지지 않으면 한미일 연합과 도시바 사이에 매각 협상이 진행될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SK하이닉스의 출자 비율이 낮으면 반독점 당국의 심사를 통과하는데 그다지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며, 매각이 속도를 내게 되면 WD도 꼬리를 내리고 도시바와 한미일 연합과의 관계 회복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욧카이치공장에서의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게 WD에게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미국 법원에서 WD의 매각금지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국제중재재판소의 판결이 남아있다. 전문가들은 국제중재재판소의 결론이 나오기까지 1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변호사인 스티븐 기븐스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국제중재재판소에서 계약 위반”이라며 WD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을 것으로 봤다. 그렇게 되면 도시바는 매각가를 대폭 깎일 가능성도 있다.

◇NAND업계 지각변동?=한미일 연합이 도시바메모리 매각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여기에 포함된 SK하이닉스가 최대 수혜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축포를 터트리기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다. SK하이닉스는 직접 투자에 나설 경우 독과점 심사가 지연될 것을 우려해 지분 인수 대신 3000억 엔을 도시바메모리 인수를 위한 특수목적회사에 융자해주는 방식으로 인수에 참여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선 도시바메모리가 경쟁사에 넘어가는 사태를 막아 일단 안도는 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도시바메모리 인수 컨소시엄 참여로 SK하이닉스가 당장 NAND 플래시 분야의 기술력과 시장점유율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을 것처럼 보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법원의 결정이 가장 중요하다. 경우에 따라선 독과점과 기술 유출 문제가 부상할 수 있는데다 매각이 완료되는 시기도 불투명하기 때문에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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