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 딱지떼기②] 금융부 적응기… “어서와, 여기가 꽃보직이야”

입력 2015-12-20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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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데이 9기 수습인 박규준(왼쪽부터), 김하늬, 이광호, 이새하 기자가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노진환 기자 myfixer@)

"어서 와, 여기가 꽃보직이야."

금융부 배치 첫날, 데스크는 엷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꽃, 보, 직. 반어법 같은 이 표현의 진의를 파악하느라 머리를 굴리고 있던 차에, 데스크가 바로 말을 잇는다. "보험과 캐피탈과 한국은행을 담당하게 될 거야. 사람은 적은데 일은 많은 곳이지."

설렘과 두려움이란 게 이런 걸까. 한국경제를 사실상 좌우지하는 한은을 맡게 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동시에 그 어려운 금리, 통화정책을 내가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앞섰다. 보험 역시 사실상 아무것도 모르지만, 잘만 해 전문성을 쌓으면 나만의 독보적인 분야가 될 거라는 섣부른 기대도 들었다. 이런 복잡스런 감정을 가진 채, 금융부의 ‘첫날’을 시작했다.

꽃보직임을 실감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침 금융부는 초대형 이슈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미국 기준금리 인상'.

데스크는 복선을 깔았다. "이제는 교육받는 인턴이 아니야, 즉시 현장 투입인력이야."

'현장투입인력', 이번에도 그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설마 1일차 새내기인 나에게 미 기준금리 인상 이슈 관련해 기사를 쓰라는 말은 아니겠지.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대로 첫 임무가 떨어졌다.

메신저 창이 눈 앞에 떴다. ‘미 금리인상, 보험업계 미치는 영향, 공시보고 처리할 것.’

▲서울시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한 보험업체 기자실. 보험사를 출입하는 기자들은 이곳을 비롯해 손해보험협회 등에 적을 두고 취재를 한다. (박규준 수습기자 abc84@)

머리가 하얘졌다. '왜 인턴교육 때 공시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았던가.' 버거운 임무였지만 능력껏 제대로 써보겠다는 오기도 들었다. 새벽까지 암호처럼 보이는 공시를 몇 번이고 들여다봤다. 선배들과 보험업계 관계자들한테 공시 보는 법에 대해 물으면서, 조금씩 기사를 완성해 나갈 수 있었다. 현장에서 부딪혀야, 가장 효율적이고 직접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걸 체감했다.

금융부 선배들 역시 '필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보험사를 직접 찾아가서 명함 돌리고 현안 물어보고 그래." "기자가 앉아 있어선 안 되겠지? 무조건 현장으로 많이 나가야 해."

'금융시장부'라 찍힌 명함을 들고 보험사를 찾아다녔다. 광화문 일대의 ‘00생명’, ‘00화재’를 찾아 홍보팀 직원들을 만났다.

홍보팀 직원들을 만나며 불현듯 ‘기자’에 대해 생각했다. 수습기자인 나로선 그들의 응대가 반갑고 고마웠으나, 마냥 그들에게 착하고 친절한 사람이어선 안 될 것 같았다. 기자는 좀 불편한 사람, 따질 줄 아는 사람, 때론 냉철한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취재원들을 많이 만나 인적 네트워크를 쌓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건 단순 인맥관리가 아닌, 더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한 용도일 때 의미가 있을 것이다.

▲16일 배부받은 금융시장부 명함. 그 뒤엔 한국기자협회서 매년 제공하는 '기자수첩'이 보인다. 새 명함과 수첩으로, 더 '뻔뻔한 기자'가 되기 위한 각오를 다진다.(박규준 수습기자 abc84@)

'겸손하되 뻔뻔한 사람이 돼라'는 전에 읽었던 책의 문구가 다시 떠올랐던 것도 이 때문이었을까. 난 그 '뻔뻔함'을 거침없이 묻고, 비판할 줄 알고, 끈질기게 따질 줄 아는 덕목으로 해석한다. 그렇다면 뻔뻔함은 기자의 핵심 자질이다. 전문적인 분야를 책임지는 금융부 기자라면 더욱 그 기질을 발휘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보험업과 한국은행처럼 전문적인 분야일수록 업계·관료들과 일반 시민 간 정보 불일치가 심하다. 기자가 더 뻔뻔하게 그 전문적이고 난해한 부분을 따져 묻고 파헤쳐야 하는 이유다.

난 꽃보직에서, 현장에서 부딪히며, 더 뻔뻔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건 더 '제대로 된 기자'로 훈련받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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