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이코노미] 'PMC:더 벙커' 용병들도 피하지 못한 '비정규직'의 늪…'전쟁의 민영화' 그 이면의 이야기
입력 2018-12-20 11:12
[이투데이 나경연 기자]

▲에이헵(하정우 분)은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글로벌 민간군사기업 블랙리저드의 캡틴이다. 어떻게든 모든 동료들을 데리고 벙커를 탈출하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닥치면서 혼자만 살아 남게 된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Roger that(롸저 댓)."

군화와 방탄조끼, 총으로 무장한 건장한 사내들이 낮은 목소리를 거칠게 내뱉는다. 12명의 용병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총에 탄환을 채운다. 3명씩 팀을 이뤄 일사분란하게 목표물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은 인기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적과의 거리 3m 전. 대장의 한 마디에 용병들은 뛰기 시작한다.

"사냥 가자."

배우 하정우와 이선균 주연으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PMC: 더 벙커'는 제목 그대로 PMC(Private Military Corporation)를 소재로 다룬다. PMC는 무기를 제외한 모든 물품 및 용역을 군대에 공급·제공해 주는 민간군사기업이다. 넓게는 취사·운전·세탁 등 단순노동부터 기지 건설·첩보 활동·위험 평가·작전 지원·군사 훈련까지 광범위한 군사·안보 서비스를 계약자에게 제공하면서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업체다.

▲에이헵은 엄청난 현상금이 걸린 북한 요주 인물 '킹'을 잡아, 위험한 일을 그만두고 가족들과 평범한 삶을 꾸리는 소박한 꿈을 꾼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에이헵(하정우 분)은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글로벌 민간군사기업 블랙리저드의 캡틴이다. 그는 CIA로부터 의뢰받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DMZ 지하 30m에 위치한 비밀벙커로 내려간다. 에이햅은 현장에서 변경된 급작스러운 임무에 분노해 CIA 팀장 맥켄지(제니퍼 엘 분)에게 거칠게 대든다. 하지만, 맥켄지는 한 마디로 에이헵을 제압한다.

"블랙리저드와 계약을 끝냈어."

이처럼 민간군사기업은 일반적으로 정부와의 계약을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미국의 대표 민간군사기업 '블랙워터' 역시 미 정부와 업무 협약을 맺고 광범위한 분야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1년 미 중부사령부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이라크에 투입된 민간계약자수와 정부 소속 군인의 비율은 1.25대 1로, 민간군사기업 직원이 현역 군인 수보다 많다. 2010년 기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 중부사령부 예하 국방조직이 고용하고 있는 민간계약자의 수는 약 27만 명에 달한다.

정부가 국방과 안보 분야에서 민간군사기업과의 계약을 맺는 이유는 '비용 절감' 때문이다. 직원들을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고용해 전쟁 비용을 줄이는 것은 물론, 전쟁에 수반되는 윤리적 책임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인적자원 보호'를 추구하기 위해서다. 전쟁을 벌이는 국가들에게는 자국의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승리를 얻는 것만큼 중요하다.

▲포로로 잡힌 북한 의사 윤지의(이선균 분)는 "사람 살리는 데 이유가 필요하냐"며 블랙리자드 용병들을 돕는데 적극 나선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민간군사기업의 '통제되지 않는 사적 무력'과 '전쟁의 민영화'는 주된 비판의 대상이다. 현대 사회는 구성원 간 질서 유지를 조건으로, 합법적 폭력 행사권을 국가에 위임한다. 민간군사기업의 무기 사용은 현대 정치체제의 근본인 '사회계약설'을 무력화 시키는 사각지대이기도 하다.

이라크전 당시에는 민간군사기업 직원이 주민들을 학살하는 영상이 유튜브에 유출돼 큰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 민간군사기업의 성장은 정부의 협력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책임을 회피하기가 수월하다.

블랙워터와 다인코르 등 미국 내 주요 민간군사기업들은 미 정부와의 대규모 계약을 통해 군수품 병참과 시설물 경호를 맡고 있다. 정부의 의존도가 작지 않은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대학 학생군사교육단(ROTC) 프로그램까지 민간군사기업이 위탁 운영하고 있다.

▲CIA 팀장 맥켄지(제니퍼 엘 분)는 블랙리자드 용병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생각 뿐이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국내에서는 2010년 설립된 '불렛케이(Bullet-K)'가 무장 경비용역을 제공하는 최초 기업이다. 불렛케이는 현재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안보가 불안한 국가 내 건설업체의 현장경비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김종열 영남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는 '민간군사기업의 성장과 대비방향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냉전종식 이후 미국과 유럽의 안보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민간군사기업의 성장 환경이 한국에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남북 간의 군사력 대치가 상존하고 있어, 정부 소속 군 인력 삭감이나 방출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전 세계에는 약 600개가 넘는 민간군사기업이 존재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자국의 전쟁 비용과 사회적 비용을 줄이려는 국가들이 늘면서 민간군사기업 시장 규모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국내에도 글로벌 민간군사기업이 진출한 적도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민간인 피랍 사건이 일어나자 스웨덴의 민간군사기업 '다인세크그룹'이 2007년 한국지사를 세웠다가, 지금은 모두 철수했다.

▲전문가들은 자국의 전쟁비용과 사회적비용을 줄이려는 국가들이 늘면서 민간군사기업 시장규모가 점점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에이헵을 믿지마. 그는 돈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야."

블랙리저드의 적군은 포로로 잡인 북한 의사 윤지의(이선균 분)에게 이같이 말한다. 너무 당연한 말이다. 에이헵은 민간군사기업에 소속된 민간청부인으로, 자신을 고용하는 사람 혹은 고용인의 사적 시설을 보호하는 것이 직업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거친 야성미로 관객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블랙리저드의 용병들. 이들이 돈을 받고 민간인들에게 총구를 겨누는 '현실 직장인'으로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현재 미국 내 주요 민간군사기업들은 미 정부와의 대규모 계약을 통해 군수품 병참과 시설물 경호를 맡고 있어, 정부가 의존하고 있는 그들의 역할이 작지 않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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