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철 논설실장
그러나 이듬해 대대적 규제개혁이 단행되면서 격렬한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팬암 등 대형 항공사를 포함해 100여개의 항공사가 쓰러진 반면 사우스웨스트 등 신생 저가 항공사들이 쑥쑥 성장했다. 이 덕에 전체 시장이 커지고 미국인은 더 저렴하게 항공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칸의 성공은 신자유주의 물결의 신호탄이 됐다. 곳곳에 남아있던 케인지안의 구시대 유산이 사라졌다. 위원회마저 1985년 해체됐다.
한국경제에는 아직도 이런 식의 가격 규제가 남아 있다. 통신요금 인가제가 대표적이다. 지배사업자(무선:SKT, 유선:KT)가 요금제를 출시하기 전 정부의 인가를 받는 제도다. 지배적 사업자의 가격 약탈로부터 후발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1991년 도입됐다. 그러나 정부가 자율 경쟁을 틀어막아 ‘통신비 상향 평준화’를 만들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가 공인 요금담합을 유도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0년대 미국 항공산업이 그랬듯 국내 통신 3사도 가격경쟁 대신 보조금이나 지나친 마케팅에 열중하고 있다. ‘호갱(호구+고객)님’은 관재(官災)였던 셈이다.
세계 237개국 가운데 정부가 이동전화 소매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이런 점에서 인가제는 국제적 추세와 동떨어진 ‘갈라파고스 규제’라 할 수 있다. 영국, 일본 등 정부가 소매시장에 개입했던 나라들도 시장경쟁이 어느 정도 활성화되면서 사전규제를 사후규제로 전환했다.
현재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당국이 추진 중인 가계 통신비 절감 방안은 크게 네 방향으로 요약할 수 있다. 9월 시행된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을 비롯해 알뜰폰 활성화, 제4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통신요금 인가제 개편 등이다
이 중 시행 보름째를 맞은 단통법이 공공의 적으로 몰리고 있다. 소비자가 보다 저렴하게 휴대폰을 살 수 있도록 해 통신비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 단통법의 취지였다. 하지만 법 개정 후 오히려 ‘똑갱(똑똑한 고객)님’을 포함한 국민 모두가 비싸게 사야 하는 불쾌한 상황이 됐다. ‘전국민 호갱님 법’으로 전락한 것이다.
여기저기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쪼그라든 보조금 탓에 그렇지 않아도 세계 최대 수준인 가계의 이동통신비 부담이 더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의 분노가 커졌다. 기업의 자유로운 영업활동을 방해하고 이동통신사의 배만 불린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단통법을 폐지하자는 시민운동이 전개되는가 하면 지난 5월 법안 통과에 동의한 야당은 급기야 재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어찌 보면 애당초 어설픈 방식에 너무 큰 기대를 건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상 요금 경쟁이 없는 3개 통신사의 과점 상태에서 보조금 상한제와 투명성 제고로 휴대전화 요금을 확 끌어내린다는 방안 자체가 과욕이었다. 운영을 잘하면 통신비 부담을 줄여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본질적 처방이라고 할 순 없다.
마침내 가격 경쟁을 가로막아 온 통신요금 인가제가 수술대에 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에서 인가제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일자 지난 2월 상반기 중 통신요금 인가제 개선 로드맵을 수립할 것을 지시했다. 미래부는 현재 발표 시점을 연장해 오는 11월께 중장기 통신정책 방향과 함께 공개할 예정이다. 인가제 보완이나 완전 신고제 전환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3대 통신사의 이견 등으로 방향타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인가제는 초기 항공산업을 보호하려던 미국처럼 걸음마 단계의 국내 통신산업을 보호·육성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이제 통신사는 거대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마당에 인가제를 유지하는 것은 다 큰 자식을 부모가 계속 업고 다니겠다는 빗나간 자식 사랑에 불과하다. 오히려 차제에 제4 이동통신사까지 적극 발굴하는 등 더욱 과감한 개혁에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