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해수부에 투자하세요”

입력 2014-09-29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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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부가 달라졌어요.”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 위축됐던 조직 분위기를 추스르고 최근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그동안 해수부 공무원들은 조직의 해체와 부활을 겪으며 삼류 부처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 주무부처로서의 무거운 책임감과 내부 비리 수사, 잇단 직원 자살 등으로 위축된 조직 분위기로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하지만 이주영 해수부 장관이 세월호 실종자 수습뿐만 아니라 이달 초부터 정책 현안에도 본격적인 행보에 나서면서 다시 조직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9월 들어 해수부 사무실 불이 밤에는 물론 휴일에도 꺼지지 않는 점이다. 지난달 부임한 김영석 해수부 차관이 대표적인 ‘일벌레’인데다 꼼꼼한 성격 때문에 각 실국이 긴장하고 있는 점도 있다. 하지만 이 장관을 비롯한 이 차관이 침체한 조직 분위기를 추스르고자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보이면서 조직에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다. 특히 이 장관이 이달 초 각 실국에 해양수산 분야에 민간투자를 이끌어 내 사업화가 가능한 리스트 250여개를 만들라고 지시해 해수부 직원들이 밤낮없이 정책 마련에 집중하는 모습은 사뭇 기존의 해수부와 낯선 느낌이 들 정도다.

이렇게 마련된 정책을 이 장관은 29일 오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박진수 LG화학 부회장과 강영중 대교홀딩스 회장, 조현철 대명레저산업 대표, 김성회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등 26명의 국내 기업 CEO를 초청해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장관이 직접 부처 예산을 지원해 주겠다며 민간기업에 읍소하는 모습은 모든 정부부처를 통틀어도 처음 있는 일이다. 영원한 ‘갑’에서 직접 몸을 낮춰 ‘을’로 변신하는, 그것도 예산을 지원해주는 사업에서 정부부처가 낮은 자세를 취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 장관은 이번 설명회 준비를 위해 직원들에게 기업뿐만 아니라 청년들이 직접 창업할 수 있거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해양수산 분야도 모두 발굴해 이번 설명회 자료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 장관은 “일본의 낡은 중고선으로 운영하는 연안여객 분야, 불편해서 입지 않는 어선원 구명조끼,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수산가공 분야 등 지금은 낙후되고 형편없어 보이지만 꾸준한 투자가 있으면 주목받는 효자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원탁의 기사’에서 나오는 거웨인의 예를 들었다.

거웨인은 아서왕을 위해 마녀와 결혼하지만 진심으로 마녀를 사랑해 마녀의 마법이 풀린 얘기다. 젊은 시절 아서왕이 이웃나라 포로로 잡혔으나 “여자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답을 1년 이내에 찾아오는 조건으로 풀려나게 됐다. 아서왕은 이 답을 1년이 다가오도록 찾지 못하다가 북쪽에 사는 지혜로우나 욕심 많은 늙은 마녀에게 답을 구하게 된다. 늙은 마녀는 정답을 알려주는 대신 원탁의 기사 중 가장 용감하고 용모가 수려한 거웨인과 결혼을 시켜주는 조건으로 답을 알려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거웨인은 아서왕을 위해 흉측하게 생긴 늙은 마녀와 결혼했지만 진심으로 마녀를 사랑하게 된다. 첫날밤 거웨인이 신방에 들어가자 늙은 마녀 대신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녀는 “자신이 그 마녀라며 하루의 반은 추한 마녀로 나머지 반은 아름다운 미녀로 살게 됐다”며 낮에 미녀로 살지 밤에 미녀로 살지 거웨인의 선택을 기다렸다. 이에 대해 거웨인은 “그건 당신의 선택에 따르겠다”고 말해 결국 마녀는 마법이 풀려 아름다운 미녀로 살게 됐다.

이 장관은 거웨인의 예처럼 해양수산 분야 중 지금은 볼품 없지만 꾸준히 애정을 갖고 투자 지원을 해주면 충분히 효자산업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 장관은 기존 해수부 공무원이 정책 대안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기업이 충분히 사업을 검토할 수 있는 정책 리스트를 만들어 20조원의 민간투자를 이끌어낸다는 역발상을 보였다.

문제는 이번 민간투자 유치 설명회가 기획재정부나 타 부처의 협조를 이끌어내지는 못해 예산 지원에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장관이 “해수부에 투자하세요”라며 몸을 낮춘 모습은 타 부처에서도 시도해 볼 수 있는 좋은 정책이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답을 찾지 못했던 ‘창조경제’의 정답을 삼류 부처로 인식된 해수부가 그 모범 답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

이 장관의 해수부를 사랑하는 마음이, 늙은 마녀의 마법을 풀 듯 이번 설명회를 시작으로 해수부에 걸린 패배의식을 뛰어넘어 미녀 부처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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