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선 성별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상민의 현장]

입력 2014-08-04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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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선이 러시아로 떠났다. 그러나 박은선을 둘러싼 성별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진=뉴시스)

안현수(29)의 폭풍 질주는 누구도 막지 못했다. 안현수는 월등한 스피드와 코너워크로 일찌감치 선두로 치고나갔다. ‘쇼트트랙 황제’는 그렇게 귀환을 알렸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세 개의 금메달을 휩쓴 이후 8년 만의 금메달이다. 가슴 뭉클한 장면이다. 그러나 그의 손에 쥐어진 건 태극기가 아닌 러시아 삼색기였다. 그는 이제 빅토르 안이다.

뒷맛이 씁쓸한 감동을 안긴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지금 생각해도 씁쓸한 뒷맛이다. 당연한 일이다. 빅토르 안의 감동 드라마 뒤에는 국내 빙상계의 추접한 파벌싸움이 존재했다.

빅토르 안의 귀환은 소치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노메달에 그친 국내 빙상계를 발칵 뒤집었다. 국민과 정계ㆍ학계는 파벌 주도 인물 색출과 빙상연맹 부조리 뿌리 뽑기에 한목소리를 냈다. 이에 전명규 대한빙상연맹 부회장이 사퇴했고, 김재열 회장은 자성의 목소리를 내며 4년 뒤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할 뜻을 전했다.

▲지난 2005년 8월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동아시아여자축구대회 중국과의 경기에 출전한 박은선. (사진=뉴시스)

그리고 6개월이 지났다. 엄청난 파도가 체육계를 휘몰아쳤건만 추접한 파벌주의는 아직도 씻겨 내려가지 않았다. 이제는 빙상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체육계 파벌주의는 종목을 막론하고 버젓이 고개를 쳐들며 또 다른 성격의 파벌을 양산해내고 있다.

지난달 26일은 한국 여자축구의 대들보 박은선(28)이 러시아로 떠났다. 러시아의 신흥 명문 WFC 로시얀카 입단을 위해서다. 더 큰 무대로의 이적이지만 떠나는 박은선의 뒷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박은선은 지난해 WK리그 22경기에서 19골을 기록하며 10골을 넣은 비야(인천 현대제철)를 9골 차로 제치고 득점왕에 올랐다. 만년 중하위권에 머물던 소속팀 서울시청은 2위(11승 7무 6패ㆍ승점40)로 도약했다. 2005년 성인 무대 데뷔 후 8년 간 방황하던 박은선은 그렇게 한국 여자축구의 대들보로 우뚝 섰다.

그러나 이번에도 파벌주의가 고개를 들었다. 박은선의 소속팀 서울시청을 제외한 6개 팀 감독들이 담합해 박은선의 성별 논란을 일으켰다. 박은선은 지난 2003년 미국 여자월드컵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한국 대표로 출전, 이미 수차례 성별검사에 응해왔다. 더구나 6개 구단 감독들은 박은선을 어릴 적부터 지켜봐왔다.

▲우리 사회에 파벌주의가 존재하는 한 박은선의 성별 논란은 영원한 불씨가 되어 한국 사회를 위협할 수 있다. (사진=뉴시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WK리그 감독들에게 징계 조치를 권고했다. 그러나 축구협회와 여자축구연맹은 해당 감독에 경고 조치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박은선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긴 이 사건은 사실상 해프닝으로 일단락된 셈이다.

박은선은 이 같은 논란 속에서도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쳐보였다. 지난 5월 베트남에서 열린 2014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에서 6골을 몰아넣으며 득점왕을 차지했다. 올 시즌 WK리그에서도 14경기에 출장해 9골을 넣으며 득점 선두 유영아(인천 현대제철ㆍ10골)에 1골 차 2위에 올라 있다.

박은선은 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WK리그를 떠난다. 이제 지난 일은 잊고 세계무대에서 자신의 축구 열정을 불사르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박은선이 떠난다고 해서 박은선의 성별 논란과 추접한 파벌주의까지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존재하는 파벌주의가 존재하는 한 박은선의 성별 논란은 영원한 불씨가 되어 한국 사회를 위협할 수 있다. 그 불씨가 제2ㆍ3의 빅토리 안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그 끔찍한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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