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타 사업 500억→1000억원…예산낭비 방지 중앙정부 견제장치 약화 우려
정부가 국책 사회간접자본(SOC)의 사업성을 사전 검증하는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 기준을 총사업비가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지역 균형 발전에 대한 배점을 높이는 방향으로 예비타당성 조사제도 개편을 추진한다.
이같은 방안이 현실화될 경우 예비 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 수가 크게 축소되고 지역 대형 SOC 사업의 문턱이 낮아지게 된다. 하지만 예비타당성 제도가 완화되면 재정에 대한 관리·감독 차원에서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를 강화하는 기존 추세와 역행할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SOC 사업 예산 편성과 집행에 있어 정치논리가 경제논리의 우위에 서게 돼 경제성이 떨어지는 사업의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질 우려도 나온다.
20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 개편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는 예타 조사제도의 오래된 규정을 변화된 환경에 맞춰야 한다는 요구에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를 시행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조사기준이 개선되지 않아 여러 부작용이 나오고 있다”면서 “대상사업 선정 기준 및 수도권과 이외 지역의 불균형 등 드러난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앞서 8일 인사청문회에서 새누리당 조현룡 의원이 “예비타당성 조사 공사비 기준을 올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데 대해 “취임하게 되면 예비타당성 조사 기준 상향조정 등 예타 제도 전반을 검토해보겠다”고 언급했다.
최 부총리는 “공사비 인상 등 요인이 있는데도 1999년 도입된 예비타당성 조사 기준을 유지하다 보니 지나치게 많은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에 들어가고 지역균형 발전 문제도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기재부 내외에서는 김광림 새누리당 의원 등이 지난해 11월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 기준을 기존 500억원 이상이면서 국고지원 300억원인 사업에서 총사업비 1000억원이고 국고지원 600억원 이상인 신규사업으로 바꿔야 한다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기준선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예비타당성 조사 때 지역 균형발전에 대한 배점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수요와 공급으로 따지는 경제성 중심의 평가에서 지역균형 등 정성적 평가 부분을 늘리기 위한 차원이다.
이와 관련 최 부총리는 청문회에서 “철도나 도로 등 SOC는 전 국민을 이어주는 동맥 같은 역할을 하므로 단순히 경제성만 따져선 안된다”면서 “가능하면 지역균형개발이 되는 사업을 추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는 대규모 재정사업에 대한 경제성 분석, 정책적 분석, 투자 우선순위, 적정 투자시기, 재원조달 방법 등 타당성을 검토해 재정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이 제도는 지난 15년 동안 예산 낭비를 방지하고 재정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예산 편성의 한 과정으로 인식돼 무리한 사업 추진을 사전에 방지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제도 개편으로 적용 대상 사업은 줄고 평가에서 경제성보다는 지역균형발전 비중이 커지게 된다. 이는 이전보다 제도가 느슨해지고 경제성 이외 요인의 비중이 커져 정치 논리로 밀고 들어오는 지방 SOC 사업을 중앙정부가 막을 수 있는 힘이 약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예비타당성 조사 기준을 상향조정하면 견제하는 힘이 약해지는 문제가 있다”면서 “다만 조사 기준 등 부분이 15년이 지나도록 그대로 유지했으므로 상황 변화를 반영해 다시 한번 제도를 가다듬을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