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노래하는 가수 이소라 [이소라 콘서트 리뷰]

입력 2014-07-03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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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포춘엔터테인먼트 제공)

인사는 없었다. “난 너에게 편지를 써 모든 걸 말하겠어.” 금발의 짧은 머리를 한 그는 하얗다 못해 창백한 얼굴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를 부르며 조용히 자신의 콘서트 ‘이소라 8’의 포문을 열었다. 노래를 마치고도 한참을 가만히 앉아있다 큰 결심을 한 듯 마이크를 잡았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겁게 보는 공연은 아니니까, 혼자 오시는 분이 많대요. 그래서 여러분 한분 한분과 같이 공감하고 느끼는 과정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일상생활 할 때는 특별한 느낌이 없잖아요. 공연은 많은 사람이 함께 같은 생각을 하는 시간이니까요. 짧게나마 그런 시간이 되길 바라면서 하나하나 제 노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6월 26일 저녁 8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블루스퀘어 홀. 그렇게 이소라의 공연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제발’을 부르는 그의 뒤로 검은 천막이 펼쳐지고, 그 위에 별빛이 수놓아졌다. 의자에 걸터앉은 그는 검은색의 풍성한 스커트를 움켜쥐며 노래를 불렀다. ‘처음 느낌 그대로’, ‘제발’, ‘봄’, ‘바람이 분다’를 부르는 그의 모습은 힘겨워보였다. 아니, 위태로워보였다. 그는 인상을 써 보고, 고개를 뒤로 젖히기도 하고, 몸을 비틀기도 하고, 옷을 꽉 움켜쥐기도 했다. 우악스럽게 소리를 내는 그는 음악에 취한 채 온몸으로 노래를 했다.

이소라의 노래에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소라 곡의 가사는 생선살이 잘 발라진 앙상한 가시 같다. 이소라 음악을 한참 듣고 있노라면, 생선살처럼 야들야들한 멜로디는 휘발되고 어느새 마음 깊숙한 저 곳의 폐부를 푹 찌르는 가사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그의 가사에는 멜로디를 눌러내는 강한 힘이 언제나 존재한다.

그런데 이번 공연은 여느 때와는 달랐다. ‘이소라 8’ 콘서트의 주인공은 노랫말이 아닌 사운드였다. 가사를 꼭꼭 씹으며 관객에게 노랫말로 대화를 건네듯 공연을 펼치던 이소라는 그날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하나의 악기처럼 다뤘다. 화려한 세션맨의 면모가 공연의 짙은 사운드를 증명했다.

(사진=포춘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승환, 홍준호, 이상민, 임헌일, 최인성으로 구성된 5명의 세션들 모두는 솔로 뮤지션으로서 또는 음악하는 팀의 멤버로서 각자 활동을 하고 있다. 때문에 다른 아티스트의 공연 세션으로 참여하는 일이 드물지만, 이소라와의 오랜 음악적 인연으로 흔쾌히 한 자리에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환은 이소라의 히트곡 ‘바람이 분다’의 작곡가로, 이번 공연에서 음악감독과 피아니스트를 맡았고, 최고의 녹음 세션을 자랑하는 홍준호는 ‘이소라 8’에서 기타리스트를 담당했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을 펼치는 드러머 이상민도 이소라의 단독 공연에 드러머로 참여해 힘을 보탰다. 이소라의 이번 앨범 수록곡 중 1번 트랙 ‘나 Focus’와 3번 트랙 ‘쳐’를 작곡하고, 앨범에 수록된 전 곡의 기타를 직접 연주한 임헌일도 ‘이소라 밴드’에 합류했다. 또한 베이시스트로 참여하는 최인성은 일전에도 이소라 공연 밴드로 참여한 경험이 있다.

그들은 각자의 소리를 켜켜이 쌓았다. 그리고 이소라는 차곡차곡 쌓인 악기들의 소리를 뚫고 목소리로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기교가 묻지 않은 그의 목소리는 불순물 없는 결정의 투명한 악기 같았다.

그의 7집과 8집 사이에는 긴 시간이 놓여 있다. 2008년에 7집을 발매한 이소라는 올해 8집을 발매하기까지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노래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집에서 그냥 누워서 뒹굴뒹굴하면서. 몇 년 동안 내가 아무것도 아닌 느낌 있잖아요. 빛이 난다거나,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는다거나,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거나,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그는 그렇게 몇 년을 며칠처럼 흘려보냈다.

(사진=포춘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탄생했던 노래가 8집 앨범의 노래다. 그는 8집 앨범의 곡을 만들어 놓고는 그렇게 묵혀두고, 묻어뒀다. 푹푹 삭은 노래를 뒤늦게 꺼내들은 이소라는 “요 근래에 앨범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마음이 많이 떠난 노래들이고, 내가 듣는 귀는 조금 더 달라졌다. 이미 8집은 내게서 끝났다. 생각이 별로 없다”면서 “다른 노래들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이번 공연에 열과 성을 다했다. 그렇게 모은 8집의 곡들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보이듯. 이번 콘서트의 타이틀이 ‘이소라 8’인 이유다. 이소라는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8집을 노래했고, 소리를 냈다. “쉬는 날에는 원래 노래 연습을 전혀 안 한다. 그런데 걱정이 됐다. 그래서 밤에도, 새벽에도, 낮에도 쉬지 않고 연습했다”면서 “그랬더니 목이 더 가라앉았다. 안 하던 짓을 하면 안 되나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1집부터 8집까지 조금씩 변화가 있었던 것처럼, 이소라는 그 동안 살았던 모습이나 자신의 생각, 정체성이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알 수 있게 9집 앨범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냥 흘러가게 9집 앨범을 만들겠다는 이소라는 7집의 ‘트랙 9’과 8집의 ‘난 별’을 들려주며 공연을 마쳤다.

“모든 일의 처음에 시작된 정직한 마음을 잃어갈 때. 포기했던 일들을 신념으로 날 세울 때. 별처럼 저 별처럼. 삶과 죽음의 답 없는 끝없는 질문에 휩싸인 채 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에 빠져 혼자 괴로울 때조차 별처럼 저 별처럼.” 이소라가 부른 ‘난 별’의 가사처럼 그는 별처럼 반짝거리며 우리에게 9집으로 인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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