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환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그리고 40년

입력 2014-07-0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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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4년 7월 3일 남아공 더반에서 WBC 밴텀급 세계챔피언에 오른 홍수환. 올해로 꼭 40년이 지났다.(사진=오상민 기자)

사각의 링이 술렁였다. 국적도 피부색도 다른 두 청년이 땀범벅 피범벅이 된 채 처절한 싸움을 이어갔다. “땡! 땡! 땡!” 경기 종료를 알리는 공이 울리고서야 처절한 싸움은 끝이 났다. 이날 경기의 승자는 지구 반대쪽에서 날아온 짧은 머리 청년이었다.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 새로운 세계 챔피언(WBC 밴텀급)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스물네 살이던 청년은 챔피언벨트 획득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홍수환이다. 작지만 꿈이 컸던 청년, 한 번 목표하면 절대 포기할 줄 몰랐던 청년, 그의 4전5기 신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1974년 7월 3일, 남아공 더반은 지구 반대쪽에서 온 짧은 머리 청년을 주목하지 않았다. 이름도 생소한 ‘코리아’에서 온 그는 무모한 도전자였다. 당시 남아공이 자랑하던 세계 챔피언 아널드 테일러는 1차 방어전 상대로 홍수환을 택했다. 테일러에게 홍수환은 그저 후한 타이틀머니(대전료)를 위해 30시간을 날아온 유색인종에 불과했다.

그러나 홍수환은 강했다. 1라운드 공이 울리자 재빠른 몸놀림으로 테일러를 견제했고, 전광석화 같은 두 주먹은 테일러의 안면을 강타했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 이어졌지만 홍수환은 떨지 않았다.

“1회전 끝나니까 느낌이 오더라고. (테일러는) 키가 크고 주먹이 강했지만 몸은 느렸어. 평상시 보디워크를 열심히 해서 이기겠구나 생각했지.”

홍수환의 예상은 적중했다. 1라운드와 5라운드에 각각 한 차례씩 다운을 빼앗으며 압도적인 경기를 이끌었다. 지구 반대쪽에서 온 청년의 선전에 경기장은 적막만이 흘렀다. 그러나 6라운드,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테일러의 주먹이 홍수환의 귀를 스치면서 상처가 생겼고, 출혈이 일어났다. 홍수환의 일방적인 경기였지만 출혈이 그의 발목을 잡는 듯했다. 11라운드 도중 심판은 홍수환의 귀고 상처 부위를 확인했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여기는 내 나라가 아닌데…. 심판은 경기를 더 이상 속행시킬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 거기서 모든 게 끝나는 줄 알지. 하지만 링닥터는 문제없다고 하더군(웃음).”

기세등등해진 홍수환은 경기 막판 맹공세를 퍼부으며 14·15라운드에서 연속 다운을 빼앗았다. 완벽한 승리였다. 총 4번의 다운을 빼앗은 홍수환의 승리에 이견은 없었다.

이날 경기 후 사각의 링 위에는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새로운 챔피언 홍수환과 그의 어머니 고 황농선 여사의 전화통화가 생방송으로 전파를 탔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김기수 선수 어머니가 그렇게 부럽더니만 네가 내 일생 소원을 풀었다.” “귀에 피는 얼마나 나오냐?”

“귀에 피 안 나와!” “잘 있어 금방 갈게!”

“어, 됐어. 대한국민 만세다!”

두 사람의 드라마틱한 통화 내용은 진한 감동이 되어 메아리친다. 그리고 꼭 40년이 흘렀다.

“당시 도박사들은 내가 7대3으로 진다고 했어. 사실 게임이 안 되는 거였어. 하지만 정신력은 내가 압도했지. 많이 준비했고, 준비한 만큼 자신감도 있었지. 못 먹고 못 입던 시절이라 더 간절했던 것 같아.”

전술도 전략도 없었다. 맞춤형 트레이닝도 컨디션 조절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도전은 위대한 기록으로 남는다. 1974년 7월 3일은 작지만 강한 나라 한국을 다시 한 번 세계에 각인시킨 날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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