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論]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다 -정흥모 이야기너머 대표

입력 2014-06-0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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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손이 가지 않는 정당과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후보자가 나란히 경쟁하고 제3의 후보자마저 없는 상황이라면, 이럴 때는 도대체 어떻게 투표해야 하는가.

투표 한 번 하기가 만만치 않다. 역대 선거치고 이번처럼 어려움을 겪어 보기도 처음이다. 3년 전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한 뒤 처음 치르는 선거여서 기초선거의 경우 우선 후보자들의 면면을 알아보는 일이 쉽지 않다.

그 흔한 의정보고서 한 장 받아 보지 못했다. 내 사는 지역의 시의원이 누구인지, 도의원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3년을 보냈다.

그나마 시장이나 도지사, 교육감 후보들은 대개 지명도가 높거나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아서 관심 갖고 보면 모를 일도 아니었으나 시도의원의 경우 달리 알 수 있는 방법조차 마땅치 않다. 결국 선거 공보물을 받아 보고 나서야 비로소 후보자들의 정보를 꼼꼼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런데 참 놀랍다. 웬 전과자들이 그렇게 많은가. 기초의원 후보자부터 시장, 심지어 교육감 후보자에 이르기까지 얼핏 보아도 대여섯 명 정도가 전과자다. 폭력행위와 위증, 사문서 변조, 명예훼손, 정치자금법 위반, 음주운전 등 전과 기록도 가지가지다. 아뿔사,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떤 후보자는 음주운전 3진 아웃에 걸리고 무면허 운전으로 또 걸렸다. 기초의원 후보 중 전과 3범 이상의 전과자가 595명에 이른다는 통계가 눈에 들어온다.

사전투표가 시작되던 날, 동사무소 앞까지 갔다가 투표를 포기하고 돌아섰다. 이후 다시 공보물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나서야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공자님 말씀을 따라 보기로 했다. 먼저,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는 법(朽木不可雕), 전과자부터 제외하기로 했다.

거리를 오가며 군데군데 붙어 있는 현수막과 벽보들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또 놀라게 되는 한 가지는 고학력자들의 존재다. 단체장, 광역, 기초의원 후보를 가리지 않고 박사들이 줄줄이 포진해 있다. 불과 몇 년 전, 고등학교 중퇴자이던 한 후보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표기했다가 당선 무효판정을 받았던 사건이 떠오른다. 당시 한 선배가 했던 말이 기억에 또렷하다. “비록 그때는 가난해서 공부를 많이 못했지만 열심히 살아서 공직선거에 출마하게 됐다면 오히려 득이 되련만 고졸 갖고 저런 낭패를 겪다니….”

후보자들은 역시 조급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몇 년 새 이렇듯 높아진 학력으로 보아 공직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의 노력이 한편으로는 치열하고 한편으로는 치밀해졌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후보자들의 학력을 놓고 설전을 벌이는 광경이 종종 눈에 띈다. 어쩌면 갈수록 늘어날 수 있는 논쟁거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방선거에 출마할 고학력자의 숫자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참견할 생각일랑 추호도 없으나 학력을 둘러싼 논쟁은 위태로워 보인다. 타인의 노력을 근거 없이 폄훼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자칫 학벌주의를 조장할 위험성을 내포하게 된다. 좀 더 세밀하게 옥석을 가려야 한다. 최근 한 지역에서 실시한 후보자 초청토론회를 방청석에 앉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어떤 후보자가 동문서답으로 일관하다 사회자로부터 잘 듣고 정확하게 답변하라는 질책을 받는다. 시민단체가 요구하는 정책협약서에 보내온 같은 후보자의 답변서를 꼼꼼히 들여다봤다.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지역의제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박사였다. 오로지 출마를 위해 학위 취득에 매달렸으리라. 박사냐 석사냐가 문제가 아니다. 공부가 부족한 박사를 무엇에 쓰랴. 두 번째 원칙을 세웠다. 거름흙으로 쌓은 담장에는 흙손질을 할 수가 없다(糞土之牆). 내용 없이 포장한 고학력자를 제외하기로 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유독 독재자도 눈에 띈다. 전과자는 쉽게 식별이 되는데 독재자는 그렇지 못해 평가가 분분하다. 기초단체장이 독재를 하면 정치적으로 무슨 독재를 얼마나 하겠는가. 하지만 독재자는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3선, 4선 하면서 자기 확신이 지나쳐 시민들과 전혀 소통이 안 되는 후보자, 지방에서도 이런 독재자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만한 자, 독재자도 일단 제외하기로 한다. 국정에 대한 책임을 따지는 것도 그 다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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