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석 “연기가 질릴 일은 없어요, 세상에서 가장 재미난걸요” [이꽃들의 사람들]

입력 2014-05-2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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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역린'에서 정조의 암살자인 을수를 연기한 배우 조정석.(사진=올댓시네마)

왕을 죽여야만 사는 남자, 조선 최고의 살수인 을수. 자신의 목숨줄을 쥔 노인 광백(조재현)의 앞에서 그의 눈빛에는 두려움과 분노가 서려있었고, 사랑하는 여인 월혜(정은채)를 향한 가슴 떨림이 어려있었다.

“어디를 보더라도 사람의 눈은 원거리, 근거리가 달라요. 이처럼 감정이 어디까지 뻗어가는가에 따라 연기의 디테일도 다릅니다. 을수의 감정과 상황에 따라 최상의 상태로 집중했지요.”

현빈, 정재영, 조재현, 한지민, 김성령, 정은채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큰 기대 속에 개봉한 영화 ‘역린’(이재규 감독)이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배우 조정석이 일약 돋보이며 스크린 관객의 마음을 훔쳤다. 여기에는 탁월한 눈빛과 목소리 연기를 선보인 조정석의 캐릭터 해석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을수가 자라온 환경, 정조를 죽이러 가는 명분 등 을수를 둘러싼 배경이 제겐 가장 중요했어요.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할 것인지 등 각 상황마다 을수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기초부터 차근차근 알아가야 했습니다.”

노인 광백은 어린아이들을 처참한 환경 속에 가둬두고 왕의 암살자로 키워냈다. 광백에 의해 ‘이백이십놈이’라는 이름을 피 맺힌 등에 새긴 을수는 그 곳에서 만난 형 갑수(정재영)와 우정을 나누지만, 여전히 광백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왕을 죽이는 악역이되 그만의 사연 탓에 관객이 공감하고 동정할 수 밖에 없던 인물 을수였다. 이에 걸맞게 조정석은 강렬한 눈빛을 표출하는 반면, 선한 목소리로 대사를 처리해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였다.

▲영화 '역린'의 조정석.(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가 생각했던 을수의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음성에 대해 무척 고민했습니다. 그걸 알아주는 분들이 진짜 고마워요.”

조정석은 “을수란 아이가 감정을 많이 분출하는 스타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파도 참아야 하는 일이 많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며 이재규 감독과 시나리오에 존재하지 않는 배경에 대해 많은 토론을 가졌다고 했다.

이재규 감독은 조선시대 정유역변을 밑바탕으로 한 ‘역린’에서 정조를 죽여야만 하는 자들과 왕좌를 지켜야 하는 자들의 대립을 내세웠다. 이 가운데 각각의 인물이 지닌 저마다의 에피소드를 표출하는데 애썼지만, 오히려 관객의 집중력을 분산시켰다는 혹평도 이어졌다. 이에 대해 조정석은 ‘인물 간의 관계성’를 강조한다.

“누구나 아는 소재인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번 ‘역린’은 정조와 갑수, 갑수와 을수 등 각 인물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중점으로 그려냈어요. 그리고 이를 풀어내는 구성력에 관전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에 집중하면 관객 분들이 더욱 재미있게 느끼실 거에요.”

인물의 관계가 주된 축을 이룬 ‘역린’에 대해 관객들은 을수와 월혜의 러브라인 분량에 대해 아쉽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조정석은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갑수와 을수 안에서 메시지가 나와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러브라인이 길어지다 보면 그 점이 흐려질 수 있고, 러브라인은 단지 왕을 죽이러 가기 위한 명분인 셈이니까요”라고 흔쾌히 언급했다. 또한 이번 ‘역린’은 사극물임에도 불구, 오히려 인물들이 현대 톤의 대사를 구사해 호불호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사극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뭐하느냐?’라고 실제로 당시 사람들이 얘기했을까요. 전라도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뭐한다고 그르냐’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영화 ‘관상’ 때도 그랬지만, 그 시대를 알기 위해 상상력을 더 넓히는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영화 '역린'에서 정조(현빈)와 결투하는 암살자 을수 역의 조정석.(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역린’을 3번 관람했다는 조정석은 이처럼 작품에 대한 애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한 겨울에 비를 맞으면서 존현각 결투 장면을 찍었어요. 그 결투 장면만 한 달 정도 걸려 ‘존현각이 뭐길래, 존현각 침입하가기가 이렇게 힘든가’라고 우리끼리 말한 적도 있죠. 지붕 위에서 주로 놀았고, 마지막 결투에서는 단지 팔이 짧다는 이유로 정조에게 져 아쉽기도 하네요. 그래도 MBC 드라마 ‘더 킹 투하츠’ 때 얻었던 ‘몸치’라는 오해를 이번 기회에 풀 수 있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유쾌한 면모를 내비친 그는 영화 ‘건축학개론’의 납득이 캐릭터를 통해 대중에게 널리 얼굴을 알렸다. 넘치는 끼로 개성파 조연을 소화해낸 조정석은 이후 MBC 드라마 ‘더 킹 투하츠’, KBS 2TV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 영화 ‘관상’ 등 출연한 작품마다 화제를 낳으며 주연으로 발돋움했다. 먼저 뮤지컬 무대를 통해 연기자의 문을 두드린 그는 탄탄한 행보를 이어가며 데뷔 10년을 맞이했다.

“하다보면 질릴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연기가 질리지가 않아요. 물론 쉬고 싶은 생각은 하죠. 체력적으로 지칠 때 여행도 가고 싶고요. 그보다 저는 연기가 무척 재밌어요. 연기가 지루해진다면, 저는 너무 불행해질 것 같아요. 세상에 재밌는 게 없을 것 같아요.”

▲영화 '역린'에서 조선 최고의 살수 을수(조정석)의 첫 등장.(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무대는 생생한 현장이고, 드라마와 영화는 앵글로 담아내는 미학이라며 조정석은 각기 다른 장르의 매력을 꼽았다. 그가 언급한대로, 유준상, 엄기준, 조승우처럼 뮤지컬 무대와 스크린과 TV브라운관을 종횡무진하는 차세대 스타 중 한 사람이다. 오는 6월 27일 개막하는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를 통해 무대로 돌아온 조정석은 뮤지컬계 내부의 시선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선배님들께서도 ‘더 열심히 해라. 네가 새내기 뮤지컬 배우의 대상이고 롤모델이니 책임감을 가져라’고 말씀하세요. 이번에도 새 뮤지컬 무대에 서기 위해 한창 준비하고 있는데요.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랍니다.”

‘역린’ 속 ‘중용 23장’이 건네는 메시지를 통해 지난 일들에 대해 다시금 되새겨보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조정석은 비단 작심삼일이라도 아주 작은 일에 대해 정성을 다하고 감사하려고 노력한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 주제가 최종적으로 던지는 ‘변화’에 대해 조정석은 “실제로 저는 마음이 좀 약한 편입니다. 그래서 그 약한 마음을 변화시켜보고 싶어요”라며 의외의 면모를 드러냈다.

“을수가 가짜 악역이라면 진짜 악역을 해보고 싶죠. 그리고 이순재 선생님이 하셨던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2010)와 같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 이야기도 언젠가 꼭 해보고 싶습니다. 제 스스로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효를 다룬 작품에 출연하고 싶습니다.”

이재규 감독이 ‘소년감성’이 엿보인다고 언급했듯, 조정석이 가슴 아픈 비극에 둘러싸인 암살자 을수를 연기해 합격점을 따낸 이유는 다름 아닌 여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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