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설계 규제 변화해야… 대체투자 발목잡으면 역마진 심화
보험업계 가운데 생명보험업권은 ‘규제산업’이라 불릴 만큼 규제가 심하고 부처간 얽혀 있는 규제도 많다. 더욱이 시의성이 지난 규제가 아닌 이상 규제를 만든 본래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목적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규제완화가 쉽지 않은 상태다. 특히 생보사들은 저성장 저금리 기조로 장기 불황을 겪고 있어 실질적으로 와닿을 수 있는 규제가 변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상품 설계 규제 변화해야 = 생보사들은 천편일률적인 상품설계는 규제가 업계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한다.
‘100세시대’를 맞아 개인연금은 노후대비의 ‘필수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세수확보 차원에서 일부 연금상품에 대한 세제혜택을 축소하면서 연금상품의 매력이 절감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연금저축의 경우 세제지원과 함께 계좌 적립금의 일부 인출 등이 허용돼야 시장이 만개할 수 있다고 본다.
퇴직연금제도도 노후보장에 역행하는 일시금 형태의 수령이 많은 만큼 연금 수령을 강제화하는 방안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바꿔 말하면 규제 철폐에 따라 보험시장 자체에 격변이 가능하다는 해석을 할 수 있다.
A생보사 임원은 “상품 특성에 따라 역선택이 가능한 특정 질병에 대해서는 보험금 감액기간 및 감액비율 설정제한을 완화해줘야 한다”며 “세제지원이나 상품설계 등이 보다 자유로워져야 상품 출시도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체투자 발목잡으면 역마진 심화 = 금융당국이 자산운용과 관련해 대체투자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선보일 계획이지만 보험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그동안 보험사들은 크고 작은 M&A와 해외 부동산 등 대체투자에 직간접적으로 자금을 투자해왔다. 하지만 금감원이 보험사들의 리스크 강화를 목적으로 대체투자 규제에 관한 초안까지 마련하고 주요 생보사에 이를 전달한 상태다.
특히 생보사들은 300억원 이상의 대체투자를 리스크관리위원회에서 승인받으라고 하는 규제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리스크관리위원회는 통상 1년에 두 번 열리는데 자칫 투자 타이밍을 놓치거나 좋은 투자처를 뺏길 수 있다”며 “대체투자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보험사들은 자산운용을 극히 보수적으로 할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역마진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상품 신중히 출시해야 = 금융당국은 생보사들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장애인 전용 연금보험 등 다양한 상품을 출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보험사들이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다양한 보험 상품이 출시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생보사들은 장애인 연금보험 출시를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상품개발에 손도 못 대고 있고 심지어 4월은커녕 하반기나 돼야 출시가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장애인 사망률에 대한 명확한 통계가 없어 위험률 산출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보험개발원에서 위험률을 만든다고 해도 회사 리스크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상품이 만들어질 경향이 크다. 그렇게 되면 장애인들은 일반 연금상품보다 훨씬 더 적은 연금을 받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장애인전용 보험인 곰두리보험은 10년간 고작 8000건 판매되며 실패한 정책성 보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곰두리보험 출시 당시에도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며 보험사들에게 출시를 강요했지만 판매 성적은 초라한 실정이다.
◇RCB 규제는 보험사 자본확충 압박 = 생보사들은 금융당국의 재무건전성 강화 규제가 예고돼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내년부터 RBC(지급여력) 비율 산출시 적용하는 신뢰수준을 기존 95%에서 99%로 상향 조정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보험사가 ‘20년에 1번 파산한다’는 가정(신뢰수준 95%)을 했다면 앞으로는 ‘100년에 1번 파산할 확률’(신뢰수준 99%)을 갖고 RBC를 산정해야 한다. 그만큼 규제가 더 깐깐해진 셈이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규제가 강화될 경우 보험사의 RBC 비율이 큰 폭으로 하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생보사의 경우 RBC비율이 평균 64.2%포인트 급락하고, 손보사도 73.8%포인트 하락한다.
보험이 장기 상품이란 측면에서 보험사의 건전성 규제 강화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보험사의 경영실적과 무관하게 순전히 규제로 인해 RBC비율이 떨어지면 보험사는 자본확충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