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천안함 백서’ 만들기만 한 정부

입력 2014-04-2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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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본 무능에 컨트롤타워 바꿔 혼선…재난대처 능력 한계 드러내 신뢰 추락

▲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2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다.(연합뉴스 )
“아이들은 대한민국을 믿고 여행을 가려다 죽었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숨진 단원고 학생의 아버지는 20일 오전 진도체육관 앞에서 경찰을 향해 이렇게 절규했다. 아버지는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청와대로 가려 했다. 그러나 경찰의 저지에 막혀 세월호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의 청와대행은 무산됐다.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장인 정홍원 국무총리는 이날 오후 1시 실종자 가족을 만나러 진도에 왔다. 그가 실종자 가족과의 비공개 면담을 마친 뒤 현장을 빠져나오기까지는 3시간이 걸렸다. 실종자 가족은 그에게 “생존 수색을 포기하지 말라”며 걸음을 막아섰다.

정부당국의 세월호 실종자 구조 지휘체계가 신뢰를 잃었다. 사고대책본부 관계자가 브리핑할 때마다 실종자 가족들은 격앙된 감정을 감추기 힘들어했다.

◇무능한 중대본, 뒤바뀌는 컨트롤타워가 혼선 원인=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에 대한 불신은 정부당국이 자초했다. 사고 당일인 16일 정부는 안전행정부 산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를 컨트롤타워로 세웠다. 그러나 다음날인 17일 정홍원 국무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를 꾸려 컨트롤타워를 바꿨다. 정부 스스로 중대본의 무능을 인정하고 이 조직의 존재를 유명무실화한 것이다.

중대본은 지난 2월 7일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시행으로 재난의 총괄 기능을 맡게 된 신설 조직이다. 중대본은 현재 현장의 인명 피해와 구조, 수색 상황을 전달받는 ‘식물본부’ 역할에 그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진도를 직접 방문한 이후 실종자 가족들이 20일 청와대행을 택한 것도 정부 대응체계의 한계를 드러낸 단면으로 해석된다. 다른 관료나 정부 재난구조체계는 이미 신뢰를 잃었다는 이유에서다. 실종자 가족은 박 대통령의 책임 있는 발언을 바라고 있는 상황이다.

안전행정부 소속 송모 감사관 일행이 20일 진도에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발언한 파문도 정부의 신뢰를 깎아내렸다. 송모 감사관의 이 같은 발언은 실종자 가족을 격분하게 해 팽목항 일대를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안행부는 물의를 빚은 송모 감사관을 즉각 직위박탈 조치했지만 한 번 쏟아진 물은 담아지지 못하는 법이다.

◇천안함 백서 망각한 정부, 재난관리 허점= 2010년 3월 승조원 46명의 생명을 앗아간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 정부는 재난·재해 발생 시 발 빠른 위기 대응을 위해 천안함 백서를 만들었다.

백서에는 △정확한 현장 상황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대응 조치에 혼선을 초래했다 △사건 발생 시각을 수차례 변경해 혼란과 불신을 야기했다 △생존자 구조를 위한 탐색 구조 및 인양 작전이 지연됐다 △범정부 차원의 통합 노력이 미흡했다 등의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정부는 4년 전의 반성을 망각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정부당국은 탑승자, 구조자 숫자를 시시각각 변경해 혼선을 초래했다. 해군 구조함은 선체가 완전히 전복된 이후인 17일 새벽에야 도착했다. 중대본, 해경, 교육청 간의 엇박자는 실종자 가족의 가슴을 까맣게 태웠다.

“내가 무슨 낯으로 자식을 볼까.”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던 어머니. 정부의 부재, 선장의 부재, 이번 사고가 인재라는 비판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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