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R&D에 ‘B’를 더하자 -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입력 2014-03-2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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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나라는 연구개발(R&D)에 들어가는 비용을 꾸준히 늘려가며 선진국의 기술을 빨리 따라잡는 ‘패스트 팔로어(fast-follower)’ 방식으로 성공가도를 달려왔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기업의 연구개발비 비중 세계 2위, 출원인 국적별 특허 출원 등록수 세계 4위 등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하지만 이 기술들이 제대로 활용되어 가치를 낳고 있는지 살펴보면 얘기가 다르다. 한 연구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2013년 우리나라의 성공한 R&D 결과물 중 사업화로 이어진 비율은 약 20% 수준으로 나타났다. 결국 80%는 사장된다는 뜻이다.

기술사업화의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많은 돈을 들여서 개발한 기술들을 연구소에만 묵혀두지 말고 시장으로 연결시키는 것, 이를 통해 국가 R&D사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기술사업화의 취지다.

그런데 R&D 성과물과 기술 사업화 성공 사이에는 건너기 쉽지 않은 간극이 존재한다. 기술이 활용될 제품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이를 시제품으로 만들고, 실제 만든 제품을 시장에서 판매하여 매출로 연결하기까지 곳곳에는 다양한 장애물과 불확실성이 있다.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다. 특히 비용은 R&D 단계에서 투자하는 비용보다 10배 내지 100배가량 많이 들어간다고 한다. 따라서 기술사업화를 개별 기업의 능력이나 시장의 영역에만 맡겨둔다면 시장 실패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필자가 몸 담고 있는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R&D 성과물의 사업화를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위임을 받은 ‘기술사업화 총괄 전담기관’으로서 사업화연계기술개발사업(R&BD; Research and Business Development)을 시행 중이다.

R&BD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일반적인 R&D 지원사업과 구분된다. 첫째는 사업화가 유망한 기술에 대해 추가 R&D나 시제품 제작, 제품의 성능 인증 등 사업화 영역을 집중적으로 지원한다는 점이다.

많은 중소기업들은 어렵사리 기술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이를 제품화해 시장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더 큰 비용 부담과 위험을 호소하고, 아예 사업화 자체를 포기하기도 한다. R&BD사업은 바로 이러한 정책적 요구를 반영했다.

두 번째, R&D 시작부터 사업화 기획을 염두에 두고 하도록 기술 개발과 사업화 기획을 종합적·유기적으로 연계 지원해준다는 점이다. 기술사업화전문기관(BA; Business Accelerator)은 시장 동향을 분석해 유망한 아이템을 발굴하고, 해당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사업화 기획 결과를 사업화 개발 지원과 연계시켜 ‘타임 투 마켓’을 단축시켜준다.

사실 기술을 개발해 놓고 그 다음에 시장 진출을 하려는 방식은 실패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이미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고 기술이 낡아버리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선 사업화 기획, 후 필요기술 확보’라는 시장 친화적 사업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세 번째 특징은 벤처캐피털과 은행 등 민간투자기관의 투자유치와 연계하여 지원한다는 점이다. 사업화에 필요한 자금을 미리 확보할 수 있으며, 민간투자기관의 검증을 거쳐 시장의 요구가 반영될 수 있다. 지난해까지 정부지원금 대비 1.6배 이상의 민간투자를 유치해 설비투자, 운전자금, 마케팅 등에 활용하고 있다.

R&BD 사업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선정 경쟁률도 2011년 5.1대 1에서 2013년에는 6.4대 1을 기록하는 등 매년 높아지는 추세다. 지원성과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원받은 기업의 사업화 성공률(지원과제의 매출 발생률)은 80% 이상이었으며, 정부지원 금액 대비 과제 매출은 7.8배, 지원 전후 대비 과제 매출은 18배 향상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제는 R&D만으로는 부족한 시대가 왔다. ‘시장(Business)’을 중심에 둔 R&D, 즉 R&BD는 선택이 아니라 숙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침 KIAT가 다음달 초까지 R&BD 사업공고를 진행 중이다.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중소·중견기업들이 자금을 지원받아 기술사업화를 추진하고 중요한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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