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 흑진주 ‘트리시아 에비’가 노래하는 프렌치 보사노바

입력 2014-03-1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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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재즈페스티벌을 석권한 볼륨있는 보컬

제 3세계에서 발현했지만 어느덧 세계적인 음악 영역으로 자리 잡은 스타일들을 모두 그만의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완성형의 어법과 이미지를 구축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여간해서 새로운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도 사실이다. 예컨대 밥 말리를 모르면서 레게를 말하거나 장고 라인하르트를 빼놓고 집시 재즈를 얘기하는 게 가능하겠냐는 얘기다.

최근 들어 유럽 재즈와 월드 뮤직 시장에서 급격히 인지도가 상승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트리시아 에비(Tricia Evy)는 2010년에 첫 앨범을 발표한 신성이다. 중남미 서인도 제도에 위치한 프랑스령의 작은 섬 과들루프(Guadeloupe) 출신으로 자연스레 라틴 음악의 향취를 흡수해냈고, 2006년 프랑스로 건너가 재즈의 바다를 만나게 되면서 음악성의 폭을 넓히게 됐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작품은 최근 발표된 새 앨범 [Meet Me]. 그 안에 담긴 재즈, 보사노바, 라틴, 프렌치 팝 등 여러 음악의 흔적을 발견하며 한 번 놀라고, 그 다양한 어법들이 모두 한 사람의 목소리에 응축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또 한 번 놀란다.

트리시아 에비의 가장 큰 강점은 자신이 다루고 있는 '위대한 스타일'들의 위용에 압도되지 않고 능숙하게, 때론 뻔뻔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들을 요리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그녀가 부른 보사노바의 명곡들에선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그림자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음악적으로 상당한 성과라 할 만하다. 보사노바를 다룬 음악인들은 무수히 많았지만 그 중 절대 다수는 결국 원형의 뉘앙스를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았던가. 누구든 한 번쯤 녹음했을 법한 재즈 스탠더드를 부를 때도 트리시아 에비의 목소리는 그 계보를 짚어내기 쉽지 않을 만큼 독특하게 다가온다. 이는, 나무랄 데 없지만 딱히 개성도 없이 애매한 팝 재즈의 영역에 발을 딛고 선 여러 다른 가수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런 결과가 가능했던 것은 두 가지 요인 때문이라 본다. 먼저 작사, 작곡, 편곡 등에서 드러난, 트리시아 에비의 유연하면서도 쉽게 꺾이지 않는 자기 고집. 사실 앨범은 물 흐르듯, 매우 자연스레 이어진다. 언뜻 보면 모난 곳 없이 귀를 간질이기에 좋은 작품 같지만, 반복해 들을수록 적당한 타협으로 마무리된 곡은 단 하나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갖게 된다. 오래 준비하고 전체적인 조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피아노 트리오를 기반으로 좋은 앙상블을 선보이고 있는 프로젝트 밴드의 호흡도 매우 좋다.

두 번째는 다름 아닌 언어. 창작곡은 물론이고, 새롭게 가사를 붙이거나 재편한 여러 곡에서 트리시아 에비는 자신에게 익숙한 불어를 택함으로써 곡의 감성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었다. 앨범의 첫 곡인 'Nous Deux'는 재즈 기타의 거장 케니 버렐이 1960년대 초에 발표한 명곡에 트리시아 에비가 가사를 붙인 것이다. 접근 자체가 신선하기도 하지만 가볍게 이어지는 보사노바 리듬―주지하다시피 보사노바는 포르투갈어를 기반으로 한다―속에 불어를 통해 심어낸 감성이 묘하게 맞물리며 '새로운 발견'을 하게 한다. 앨범의 타이틀곡에 해당하는 'Meet Me On the Bridge'는 섹시하면서도 상큼한 프렌치 팝의 뉘앙스를 갖고 있지만 영어로 노래하면서 색다른 정취를 드러낸다. 실제로 이 앨범에 영어 가사가 자주 등장하진 않지만, 트리시아 에비의 이국적인 발음은 기대하지 못했던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싱어-송라이터로서 트리시아 에비가 갖고 있는 곡 쓰기 능력은 다시 한 번 강조할 만한 부분이다. 앨범의 중심을 이루는 곡들은 결국 그녀 스스로 작업한 경우들이란 얘기다. 앞서 거론한 'Nous Deux'과 'Meet Me On the Bridge'는 물론이고, 쇼팽의 마주르카를 차용해 완성해낸 'Regarde'나 앨범 후반부의 매력적인 넘버 'Lammou A' 등은 트리시아 에비의 음악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곡들이다.

처음 마주할 땐 미처 생각하지 못했으나, 소박하게 거울을 마주하고 있는 앨범 재킷의 타이틀 사진 또한 트리시아 에비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근거라 하겠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음악과 자기가 부르고 싶었던 곡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해냈을 때 그 결과물이 자신을 잘 대변하고 있다면 궁극의 목표를 달성한 것 아니겠는가. [Meet Me]는 트리시아 에비의 현재가 담긴, 매력적인 작품이다. 김 현 준(재즈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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